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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화가가 그린 이순신 표준영정 하루빨리 교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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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발간 ‘친일 인명 사전’ 수록 장우성 작품

문화부 교체 거부에 시민단체 서명운동·거리전시회 나서

“국민 정서에 반할 뿐 아니라 선현에 대한 지독한 모독”

26일 충남 아산시 현충사 앞에서 ‘친일 화가 장우성이 그린 이순신 장군 표준영정 교체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는 가운데 시민들이 서명에 참여하고 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친일 화가’가 그린 이순신 장군의 ‘표준 영정’을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거듭 나왔다. 시민사회단체는 정부에서 표준영정을 교체할 때까지 서명운동과 거리 전시회 등에 나서기로 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와 천안아산지회는 26일 충남 아산 현충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순신 장군의 표준영정을 친일 경력이 명백한 화가가 그렸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대로 사용한다면 이는 국민 정서에 반할 뿐만 아니라 반교육적인 처사이며 궁극적으로는 선현에 대한 지독한 모독”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이 열린 날은 1909년 중국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 105년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현충사 안 본전과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에서 볼 수 있는 이순신 장군 표준영정은 월전 장우성(1912~2005)이 1953년에 그렸고 정부는 1973년 표준영정으로 지정했다. 표준영정은 역사적인 인물들의 여러 영정 가운데 국가가 특정한 영정을 지정한 것이며, 동상·지폐·우표 등을 제작하는 데 기본이 될 뿐 아니라 교과서에도 쓰인다. 장우성이 그린 이순신 장군의 영정 또한 옛 오백원권 지폐 도안 등에 쓰였다.

장우성은 1943년 조선총독부에서 주관한 22회 조선미술전람회 시상식에서 당시 조선인 수상자로는 처음으로 답사를 했다. 이튿날 <매일신보>에는 “결전하 예술가의 두 어깨에 지워진 임무가 중대함을 강조하는 열렬한 인사를 하자 일동을 대표하여 동양화의 장우성 화백은 감격에 떨리는 목소리로 총후(후방을 가리키는 말) 국민예술 건설에 심혼을 경주하여 매진할 것을 굳게 맹세하는 답사를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나아가 장우성은 1944년 3월 친일단체 국민총력조선연맹을 비롯해 조선총독부 정보과 등이 후원하고 일본어판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사가 주최한 결전미술전에서 작품 <항마>를 응모해 입선하기도 했다. <항마>는 ‘악마를 굴복시키는 날카로운 검’을 뜻하는 국민가요 <항마의 이검>을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이런 역사적인 기록 등을 근거로 장우성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2009년 펴낸 <친일 인명 사전>에 수록돼 있다. 장우성의 후손들은 이에 반발해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까지 모두 기각됐다.

장우성뿐 아니라 그의 스승 이당 김은호와 운보 김기창 등 친일 화가가 그린 표준영정은 모두 14편에 이른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정한 전체 표준영정 93편의 15%에 해당한다.(표)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들 친일 화가의 표준영정 모두를 교체해야 한다고 줄곧 요구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교체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이달 초 문체부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조정식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게 보낸 서면 답변서에서 “작가의 친일 논란은 문화체육관광부 ‘동상 영정 심의 규정’ 5조 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지정 해제 사유(멸실, 도난, 훼손, 기타 재제작 상당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문체부의 영정동상심의규정 5조 2항에는 ‘기타 지정을 해제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발생’하면 지정 해제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 작가의 행적이 역사 정의와 교육 가치 실현에 배치된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입증되면 당연히 지정 해제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장우성이 그린 표준영정들 가운데 유관순 열사와 논개 영정은 각각 충남 천안과 경남 진주의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로 교체되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 표준영정 교체가 늦어지면서 또다른 예산 낭비도 벌어지고 있다. 국회사무처는 5억5000만원을 들여 내년 초에 국회의사당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새로 제작할 계획이다. 2008년 국정감사에서 동상의 갑옷이 중국식이고 칼을 일본식으로 잡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 만들어질 동상 또한 장우성이 그린 표준영정을 기초로 삼게 돼 있어 앞으로 표준영정이 교체되면 동상을 또다시 제작할 수밖에 없다.

민족문제연구소 황운학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아산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일제 때 친일을 한 장우성이 얼마나 진실성을 가지고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그렸겠는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앞뒤로 현충사 앞에서는 이순신 장군 표준영정 교체를 촉구하는 시민 서명운동이 이어졌다.

아산/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2014-10-26> 한겨레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친일화가가 그린 현충사 이순신 영정 교체하라” 

※관련기사

뉴시스: “친일화가가 그린 현충사 이순신 영정 교체하라?

☞민족문제연구소: [보도자료] ‘친일화가 장우성이 그린 이순신 장군 표준 영정을 즉각 교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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