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와 학생, 시민들이 백범 김구 선생 삼남 유랑길 답사 기행을 다녀왔다.
지난 2일 일요일 오전 7시, 차가운 가을비가 내리는 굳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백범 김구 선생의 삼남 유랑길을 직접 걷고 싶은 인천 시민 44명이 감리서 터(중구 내동 83-5) 앞에 모였다.
이민우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장(인천여고 교사)의 안내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감리서 터(인천) – 총무공 이순신 묘(아산) – 마곡사 경내 백범 유적답사(공주) – 우금치 전적지(공주) – 칠백의총(금산) – 인천의 코스로 꼬박 12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담사기행은 이 지부장의 감리서 터에 모여 삼남길 기행 일정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됐다.
을미사변 이듬해인 1896년 21살의 청년 백범은 외세 침략에 항거하기 위하여 일본 육군 중위 스치다를 응징한 ‘ 치하포 의거’ 후 체포, 사형 선고를 받고 사형집행 정지 중 새벽에 감리서를 탈옥한다.
삼남길 기행 출발과 동시에 비가 그쳐 충남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 산 2-1 어라산에 있는 충무공 묘를 찾아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고 기행을 시작하다.
마곡사 경전 내 백범 유적 답사(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에서 하심(下心)을 배웠다.
백범 선생은 젊은이들에게 ‘머리’가 되려고 싸우지 말고, ‘발’이 되려고 애를 쓰라고 강조했다.
한 서린 동학농민군의 성지 우금치 전적지(충남 공주시 금학동 327-2)도 찾았다.
1894년 9월,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의 경복궁 침범과 경제적 약탈을 규탄하며 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내걸고 재봉기를 했다.
일단 우금치를 장악하여 향후 전쟁을 이끌어 나가려던 동학 농민군은 우금치 점령을 위해 죽검(竹劍)으로 관군과 일본군으로 이루어진 연합군의 총칼에 맞서 싸우다 결국 거의 전멸하게 되었다.
이후 동학군의 넋을 달래기 위해 1973년 이 고개에 동학혁명위령탑이 세워졌으며, 우금치는 사적 387호로 지정되었다.
충남 금산군 금성면 의총길 40에 있는 칠백의총은 임진왜란(1592) 당시 1만 5천의 왜군과 싸우다가 수적 열세였지만 적에게 큰 타격을 입히고 장렬히 전사한 700 의승병들의 유해를 모신 호국영령의 성지이다.
기행을 마치고 인천으로 올라오며 소감을 말하는 시간에 기행에 참석한 한 여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을 인용하며 역사를 바로 아는 민주시민이 되어야겠다는 포부를 밝혀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한편 백범 김구 선생 삼남 유랑길 답사 기행은 인천민주평화인권센터와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가 공동주최한 행사로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올해로 4회째다.
센터는 지난 해에 이어 2회 연속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더욱 알찬 내용과 의미 있는 유적지를 추가로 편성해 내년에는 더 많은 인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2014-11-5> 인천뉴스
☞기사원문: 백범 김구 선생 삼남 유랑길 답사 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