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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짐 진 어른들 대신 소녀상 세운 ‘장한’ 제주 대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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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대학생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위안부 소녀상(평화비)이 19일 제주한라대학교 맞은 편 방일리공원에 세워졌다. 평화상과 함께 밝은 미소로 사진을 찍는 대학생들. ⓒ제주의소리


19일 한라대 앞 방일리공원에서 평화비 제막식…대학생이 만든 평화비, 서울 이어 두 번째


일본 정부에게 아직도 사과 받지 못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응원하고, 일본제국주의의 만행과 평화의 소중함을 기억하기 위한 평화비(위안부 소녀상)가 제주에도 세워졌다. 평화비는 제주 대학생들의 손으로 만들어졌기에 더욱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제주 평화비 제막식이 19일 오후 2시 제주시 노형동 방일리공원 내 평화광장에서 열렸다. 제막식은 도내 대학생들이 모인 ‘2015 제주, 대학생이 세우는 평화비 건립추진위원회’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기 위한 제주지역 대학생 동아리 ‘제주평화나비(대표 이민경)’, 사단법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함께 개최했다.


평화상은 서울시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꾸준히 이어지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가 1000회를 맞이한 2011년에 최초로 세워지면서, 이후로 전국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과 일본에도 세워졌다.


대학생들이 만든 평화비는 지난해에는 이화여대 앞에 처음 세워졌고, 두 번째는 바로 제주가 됐다.


▲ 제주시 노형동 방일리공원에 세워진 제주 평화비. ⓒ제주의소리


▲ 평화비에 새겨진 문구. 평화비 제작에는 도내 대학교 총학생회, 동아리 및 후원단체가 힘을 보탰다. ⓒ제주의소리

▲ 평화비와 함께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의 모습. ⓒ제주의소리


도내 31개 학생회, 학생단체가 평화비 건립추진위 아래 뭉쳤고, 발로 뛰며 41개 후원단체를 모집했다. 그렇게 3300만원 상당의 제작비용을 마련했다. 주제주일본국총영사관 인근에 평화비를 세우기 위해 행정과 줄다리기를 이어가기도 했다. 제주 청년들의 ‘요망진’ 저력을 제대로 보여줬다.


아쉬운 점도 있다. 평화비 설치 장소를 논의하는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 결국 방일리공원으로 결정했다.


뜻 깊은 시간을 축하하기 위해 제막식에는 제주대학교, 제주관광대학교, 제주국제대학교, 제주한라대학교 학생들이 가득 자리를 채웠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평화비를 만든 김서경·김운성 작가, 김샘 평화나비네트워크 전국대표를 비롯해 강경식·현정화·김황국·위성곤 도의원, 홍기룡 제주평화인권센터장, 양성완 노무현재단제주위원회 상임대표, 송승호 민족문제연구소 제주지부장, 강은주 민주수호제주연대 대표, 고광성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대표, 홍리리 제주여성인권연대 대표, 정연일 보물섬 대안학교장 등 200여명의 인원이 참석했다.


제막식 순서는 대안학교 보물섬학교 아이들과 제주평화나비의 공연, 활동보고, 김샘 평화나비네트워크 전국대표 축사, 감사패 전달,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인사말, 김서경·김운성 작가의 평화비 설명, 김기태 제주한라대학교 총학생회장 발언, 평화비 제막, 청소년·대학생 합동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 제주 평화비 제막식 현장. ⓒ제주의소리


▲ 소녀상 아래로 동백꽃 장식과 제주돌로 만들어진 그림자가 눈에 띈다. ⓒ제주의소리

▲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 소녀상을 제작한 김서경(왼쪽), 김운성 작가. ⓒ제주의소리

▲ 위안부 소녀상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아이들과 청년들. ⓒ제주의소리


제주 평화비의 시작은 올해 3월 1일 평화비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한 콘서트 추진위원회 결성에서 출발한다. 이후 평화비 건립추진위원회 결성, 일본국총영사관 앞 건립을 위한 1인 시위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위안부 소녀’를 제주로 모실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는 제주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일본인들의 기생관광을 반대하는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세미나가 1988년 제주에서 열렸다. 이 세미나에 참석한 윤정옥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제주 세미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한 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이와 관련해 윤미향 상임대표는 “우리 세대 윗세대까지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과거를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했고 사실상 눈을 감고 있었다. 반성해야 할 일”이라며 “우리가 못한 숙제를 이렇게 미래 세대들이 푸는 모습은 참 고맙고 부끄럽다. 제주 평화비를 계기로 제주의 많은 청년과 도민들이 다른 공동체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현재 평화비는 제주를 포함한 국내에 25개가 세워졌으며, 미국에 9개, 일본에도 1개가 있다.


제주 평화비는 다른 지역의 그것과 차이점이 있다. 김서경·김운성 작가는 “평화의 섬, 제주에서 평화의 바람이 불라는 의미로 제주 위안부 소녀상의 머리카락은 조금 흔들리는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소녀 그림자는 ‘제주돌’로 만들어졌고 강요배 화가의 작품 ‘동백꽃 지다’에서 영감을 받아 동백꽃도 장식으로 추가됐다.


▲ 이날은 평화비 제작해 특별히 노력해준 단체, 인원에게 감사패가 전달됐다. 오른쪽부터 김운성 작가, 이민경 제주평화나비 대표, 김서경 작가, 윤미향 상임대표, 송채원 보물섬학교 학생, 원일권 제주대학교 총학생회장. ⓒ제주의소리


▲ 위안부 소녀상. ⓒ제주의소리

▲ 소녀상을 배경으로 제주평화나비 회원들이 손으로 ‘나비’ 모양을 만들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 평화비는 어른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제주 대학생들이 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처음에는 일본국영사관과 가까운 노형동 만남의 광장에 평화비를 세우려고 계획했지만, 엉뚱한 곳에서 발목이 잡혔다.


제주도나 제주시 등 행정기관이 ‘자신의 관할이 아니’라는 식으로 책임을 돌리거나, ‘찬반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등의 이유로 뜨뜻미지근하게 대응해 대학생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부끄러운 어른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젊은 미래 세대들이 주축이 돼 의미 있는 일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대학생들 스스로에게도 자부심을 안겨준다.


이날 제막식에 참석한 현수미 양(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1)은 “대단하고 커다란 역할이 아니더라도, 작은 관심을 함께 모아 평화비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우리가 사회 속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의 역할을 찾아서 행동한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될 것 같다. 서울, 제주에 이어 다른 많은 지역도 대학생들이 나서서 평화비를 만든다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형진 기자 cooldead@naver.com

<2015-12-19> 제주의소리

☞기사원문: 뒷짐 진 어른들 대신 소녀상 세운 ‘장한’ 제주 대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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