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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만에 ‘평북 김태원’ 추모제 처음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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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사라진 평북 출신 독립운동가 삶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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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김태원 공훈 의혹 진실규명 시민 공동조사단'(공동대표 이순옥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 이하 공동조사단)가 지난 6월 24일 오후 2시 대전지방보훈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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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훈장을 받았음에도 역사 속에서 사라진 독립운동가 ‘평북 김태원'(金泰源, 1902~1926)의 첫 위령제가 그가 사망한 지 89년 만에 처음 열린다.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독립운동가 김태원 공훈 의혹 진실규명 시민 공동조사단'(아래 시민 공동조사단)은 23일 오전 11시 대전NGO지원센터(중구 선화동 삼성생명빌딩 2층)에서 독립운동가 김태원 선생의 89주기이자 첫 추모식을 한다고 22일 밝혔다. 23일 11시는 그가 사형당한 일시다.


그는 1902년 평북 의주에서 태어났다. 17살(1919년)에 중국 관전현에서 독립단 관남지부에서 활동했다. 이어 1920년 벽창의용단에 가입해 군자금 모집에 주력했다. 벽창의용단은 평북 벽동과 창성의 경계지점에서 양승우(楊承雨)와 함께 평안남북도 지역의 군자금 모집과 일경 및 밀정 차단을 목적으로 구성된 무장항일단체다. 이 단체는 친일부역자와 일경을 찾아 응징했다.


최후진술 “죽는 것 아끼지 않지만 다른 민족에게 사형, 오직 통분할 따름”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던 그는 1925년 신의주 경찰에게 체포됐고 이듬해 5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첫 재판을 받았다. 일제는 그에게 ‘평북 일대를 횡행하며 국경을 소란케 한’ 혐의를 적용됐다. 당시 <조선>은 ‘경계가 엄중했지만, 방청객이 물밀 듯이 몰려들어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고 보도했다. 또 “근래에 보기 드문 큰 재판”이라고 밝혔다.


김태원은 최후변론에서 “오직 대한민족의 독립을 위해 각오하고 한 일로 죽는 것을 아끼는 비열한 내가 아니지만, 대한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에게 사형선고를 받는 것이 오직 통분할 따름이다”고 진술했다.


그는 1심과 같은 해 9월 2심 법원인 평양 복심법원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다. 평양형무소에 갇혀 있던 그는 그해 12월 23일 오전 11시 사형됐다. 향년 24세.


그의 노모는 자식을 잃은 비보를 접하고서도 “슬프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죽은 것이니 원통하지는 않다”고 밝힐 만큼 절의를 보였다. 정부는 1963년 3.1절을 기념해 그의 치열했던 독립운동 행적을 높이 평가하고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하지만 정작 훈장은 ‘평북 김태원’이 아닌 이름이 같은 ‘대전 김태원'(金泰源, 1900~1951)과 그 후손에게 주어졌다. 정부는 대전 김태원 후손이 훈장을 신청하자 세밀한 확인 없이 ‘평북 김태원’과 ‘대전 김태원’을 동일인으로 판단했다.


뒤바뀐 공적, 52년 만에 바로 잡다


‘대전 김태원’ 후손에게 유족 자격을 부여, 수십 년 동안 연금 등 각종 보훈혜택을 부여했다. ‘평북 김태원’은 1926년 평양 감옥에서 사형됐지만 ‘대전 김태원’은 ‘평양감옥에 갇혀 사형집행을 기다리던 중 천우신조로 탈옥에 성공’한 것으로 기록했다. ‘평북 김태원’의 독립운동 행적이 ‘대전 김태원’ 공적으로 뒤바뀐 것이다.


국가보훈처는 <오마이뉴스> 보도와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의 문제 제기로 진위확인에 나섰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8월 김태원의 후손으로 등록돼 약 50년 가까이 보훈연금 등을 받아온 ‘대전 김태원’ 후손은 “유족이 아니다”고 결론 내렸다. 독립유공자 명단에서 ‘대전 김태원’을 삭제했다. 정부가 훈장을 추서한 지 52년 만의 일이다. 확인결과 ‘평북 김태원’ 선생은 후손이 없었다. (관련 기사: ‘대전 김태원’ 후손, 독립운동가 유족 아니었다?)


시민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보훈처의 엉터리 보훈행정으로 독립유공자가 뒤바꿨다”며 “첫 추모식을 계기로 선생의 후손이 돼 지속해서 추모제를 열고 잊히고 사라진 삶을 복원해 내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어 “대전지역의 많은 시민의 참여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심규상 기자

<2015-12-22>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89년 만에 ‘평북 김태원’ 추모제 처음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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