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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태원 제단에 올린 한권의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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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제] 89년 만에 복원된 평북 사람 ‘김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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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평북 김태원 선생’ 신위 앞에 자료집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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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12월 23일 11시 
2015년 12월 23일 11시

1926년 오전 11시. 평양 형무소. 독립운동가 ‘평북 김태원'(金泰源, 1902~1926)이 사형됐다. 향년 24세.

2015년 오전 11시. 대전 NGO 지원센터(중구 선화동 삼성생명빌딩 2층) 선생의 추모제가 시작됐다. 89년 만이다.

그는 17살 나이에 무장 항일투쟁을 시작했다. 군자금 모집과 일경 및 밀정 처단을 위해 종횡무진 움직였다. 일제는 그에게 국경을 소란하게 한 혐의를 적용해 사형대에 세웠다.

‘독립운동가 평북 김태원 선생 추모제’에는 행사를 주관한 대전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첫 추모제는 젯상을 꼼꼼히 차리고 격식에 맞춰 진행됐다. 이규봉 대전민족문제연구소 전 지부장이 제주를 자임했다. 이른 나이에 항일투쟁을 시작한 김태원 선생은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11시 정각. 홍경표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이 “강신”(혼령을 모시기 위해 향을 피우고 술을 잔에 따라 붓는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외치며 행사가 시작됐다.

참석자들이 신위 앞에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섰다. 추모제는 초헌(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 아헌(신위에 술잔을 두 번째로 올림), 종헌(마지막 잔을 올림), 다헌 (숭늉을 차로 올림) 순서로 진행됐다.

제단에 놓인 ‘한 권’의 자료집

제단에 자료집 한 권이 놓여 있다. ‘독립운동가 김태원 공훈 의혹 관련 조사결과 보고서’다. 대전지역시민단체는 지난 4월 시민공동조사단을 구성했다. ‘평북 김태원’ 선생의 독립운동 행적이 이름이 같은 ‘대전 김태원'(金泰源, 1900~1951)이 한 일로 뒤바뀌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오마이뉴스>의 보도 이후 진상을 밝히겠다고 구성된 단체다.

국가보훈처는 1963년 ‘평북 김태원’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하지만 훈장은 ‘평북 김태원’이 아닌 ‘대전 김태원’과 그 후손에게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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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년 만에 처음으로 독립운동가 ‘평북 김태원’ 선생 추모제가 선생의 순국일인 23일 오전 11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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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공동조사단은 지난 6월 조사보고서를 통해 “‘평북 김태원’에게 추서한 서훈이 엉뚱한 ‘대전 김태원’과 그 후손들에게 잘못 전달돼 행사됐다”고 밝혔다. 국가보훈처 또한 지난 8월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대전 김태원’ 후손은 유족이 아니다”고 결론 내렸다.

제단에 올린 자료집은 대전 시민의 이름으로 ‘평북 김태원’ 선생을 역사에서 복원시켰음을 알리는 보고문이였다. 89년 만에 되찾은 진짜 독립운동가에게 바치는 반성문이었다.

아헌 의식에는 김영진 광복회대전충남지부 감사, 이순옥 대전민족문제연구소지부장, 홍경표 대전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이 주도했다. 이중 독립운동가 김해인 선생의 후손인 김 감사는 ‘평북 김태원’ 선생이 ‘대전 김태원’으로 뒤바꿨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이를 끝까지 파헤쳐왔다.

‘경주 김씨 송애공파’ “‘대전 김태원’ 선생의 후손을 대신해 사죄”

종헌 의식 때는 신위 앞에 한 사람이 홀로 절을 올렸다. ‘경주 김씨 송애공파 종친회’ 김찬경 총무였다. 그는 ‘대전 김태원’과 같은 문중 사람이다.

그는 “‘대전 김태원’ 선생의 후손을 대신해 사죄하러 왔다”며 “늦게나마 ‘평북 김태원’ 선생의 행적이 복원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평북 김태원 선생의 문중인 ‘법흥 김씨’와도 만나 사과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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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진 광복회대전충남지부 감사(왼쪽)와 ‘경주 김씨 송애공파 종친회’ 김찬경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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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가 끝나고 혼령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 사신 의식으로 지방과 축문을 태워 향로에 넣었다.

참석자들은 축문에서 “조국이 해방됐지만, 선생의 영전에 제사상 한 번 올리지 못했고, 선생이 사형 순국하신 지 37년이 지나서야 추서된 훈장은 대전에 사는 이름이 같은 유족에게 빼앗겨 빛을 잃고 있었다”고 사죄했다.

권선택 대전시장은 이날 보내온 조전을 통해 “김태원 선생을 추모하고 그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를 비롯하여 대전지방보훈청 관계자들은 참석하지 않았고 조전도 보내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매년 선생의 순국일에 맞춰 후손을 대신해 추모제를 거행하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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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평북 김태원 선생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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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문 전문] “늦게나마 선생의 빛나는 공훈을 되찾았음을 고합니다”


선생께서 평양형무소에서 순국하신 지 89년이 흘렸습니다. 선생께서는 일본에 강제로 빼앗긴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벽창의용단원으로 일 군경과 치열하게 싸우셨고,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활동하시던 중 일경에게 체포되어 1926년 12월 23일 11시 평양형무소에서 의연한 모습으로 사형, 순국하셨습니다.

선생께서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하셨던 해방된 조국은 민족 반역 친일세력들이 권력을 차지하는 바람에 선생의 영전에 제사상 한 번 올려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인하여 조국 산하는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또한, 선생이 사형 순국하신 지 37년이 지나서야 추서된 건국훈장 독립장은 이 지역에 사는 동명인의 유족에게 빼앗겨 훌륭하신 공훈이 빛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52년이 지난 후에 이 지역의 의로운 자들이 있어 늦게나마 선생의 빛나는 공훈을 되찾았음을 고합니다.

선생이 공훈을 되찾았다는 소식은 멀리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살고 계신 선생의 일가에게까지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형 순국하신 날을 기리며 기쁜 소식을 담아서 선생이 영전에 추모의 잔을 올립니다.

삼가 구천을 헤매셨던 선생이 의로운 영혼이시여. 부디 안식 하옵심을 추모위원회와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이 축원하옵니다. 상향.

2015년 12월 23일


심규상 기자

<2015-12-2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독립운동가 김태원 제단에 올린 한권의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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