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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근현대전시관에 ‘가짜 독립운동가’ 전시·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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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3.1절 앞두고… 전시관 엉터리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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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시 근현대전시관에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독립운동가 명단에서 제외한 ‘대전 출신 김태원’이 대전출신 독립운동가 전시 공간에 올려져 있다.
ⓒ 대전근현대전시관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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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가 지난해 독립운동가 명단에서 제외된 ‘대전 출신 김태원'(金泰源, 1900~1951)을 근현대전시관에 여전히 독립운동가로 전시, 홍보하고 있어 눈총을 받고 있다.


3.1절을 하루 앞둔 29일 찾은 대전근현대전시관(대전시 선화동, 구 충남도청)내 ‘대전 출신 독립운동가’ 전시공간에는 ‘대전 김태원’의 사진과 함께 그의 독립운동 행적이 올려져 있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는 광복 70주년을 앞둔 지난해 8월 5일 보훈심사위원회의를 열고 ‘대전 출신 김태원’을 독립운동가 명단에서 삭제하기로 했다. ‘평북 출신 김태원'(金泰源, 1902~1926)에게 수여한 훈장이 이름이 같은 ‘대전 출신 김태원’의 후손에게 잘못 주어졌다’며 ‘대전 출신 김태원의 후손은 독립운동가 유족이 아니다’고 밝힌 것이다.


대전 시민사회단체 “1년 가까이 ‘대전 김태원’ 기록 삭제 요구했는데…”


이에 앞서 대전지역 수십여 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해 상반기부터 ‘독립운동가 김태원 공훈 의혹 진실규명 시민 공동조사단'(공동대표 이순옥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장, 이하 공동조사단)을 구성하고 자체조사를 통해 “건국공로훈장 독립장(3등급)을 받은 ‘대전 김태원’은 이름이 같은 ‘평북 김태원’의 행적을 가로챈 것”이라며 시정을 요구했다. 시민단체는 물론 국가보훈처 또한 ‘대전 김태원’의 독립운동 행적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대전시는 지난해 9월 국가보훈처로부터 심의 결과를 통보받고 시 문화재자료(제41호)로 지정(1997년) 관리해온 대전 김태원의 생가 유허(터)를 문화재자료에서 제외했다.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지 18년 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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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시가 지난해 독립운동가 명단에서 제외된 ‘대전 출신 김태원'(金泰源, 1900~1951)을 근현대전시관에 여전히 독립운동가로 전시, 홍보하고 있다.
ⓒ 임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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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조사단은 지난해 12월, 평북 출신 김태원 선생의 기일에 맞춰 추모제를 열었다. 독립운동가 ‘평북 김태원’ 선생이 평양감옥에서 사형당한 지 89년 만에 그를 역사에서 제대로 복원시키는 상징적인 자리이기도 했다.


그런데 대전시가 운영하는 ‘대전 근현대전시관’에 지금까지 자랑스러운 대전 출신 독립운동가로 ‘대전 김태원’의 명단을 올린 후 삭제하지 않은 것이다.


대전시는 ‘대전 김태원’의 독립운동 행적으로 ‘임시정부 충청지역 특파원’,’벽창의용단 조직’ 등을 적시했다. 하지만 ‘벽창의용단’은 ‘평북 김태원’의 주된 독립운동 행적이다. 또 ‘임시정부 충북지역 특파원’은 또 다른 독립운동가인 ‘안성 김태원'(金泰源, 1896~1975, 충북 보은 출생)의 공적으로 알려져 있다.


대전시. 지난해에는 ‘대전 김태원 생가 터’ 문화재자료에서 제외


공동조사단 관계자는 “지난해 8월 국가보훈처 결정 이후 대전시에 수차례 공문과 전화를 통해 ‘대전 김태원’에 대한 기록 삭제를 요청해 왔다”며 “대전시민이 많이 찾는 ‘대전근현대전시관’에 아직까지 ‘대전 김태원’을 독립운동가로 올려놓고 있는 것은 전시물을 엉터리로 관리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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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8월 12일 오전 10시. ‘독립운동가 김태훈 공훈 의혹 진실규명 시민 공동조사단’이 김태원 유족 허위등록 보고 및 김정필 유족 양심선언에 따른 사실확인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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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대전시 도시재생정책과 관계자는 “관련 내용을 잘 알지 못했다”며 “사실 여부를 확인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대전 김태원’에 대한 전시물을 철거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평북 김태원’ 선생은 1902년 평북 의주에서 태어났다. 17살(1919년)부터 중국 관전현에서 독립단 관남지부에서 활동했다. 1920년에는 무장 항일단체인 벽창의용단에 가입해 양승우(楊承雨)와 함께 평안남북도 지역의 군자금 모금과 친일부역자와 일경을 찾아 응징하는 활동을 벌였다.


대전시 관계자 “사실 여부 확인 후 전시물 철거할 것”


하지만 그는 1925년 신의주 경찰에게 체포됐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듬해인 1926년 12월 23일 오전 11시 사형됐다. 향년 24세.


그는 최후변론에서 “오직 대한민족의 독립을 위해 각오하고 한 일로 죽는 것을 아끼는 비열한 내가 아니지만, 대한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에게 사형선고를 받는 것이 오직 통분할 따름이다”고 진술했다. 그의 노모는 자식을 잃은 비보를 접하고서도 “슬프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죽은 것이니 원통하지는 않다”고 밝힐 만큼 절의를 보였다. 정부는 1963년 3.1절을 기념해 그의 치열했던 독립운동 행적을 높이 평가하고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하지만 정작 훈장은 ‘평북 김태원’이 아닌 동명이인인 ‘대전 김태원'(金泰源, 1900~1951)과 그 후손에게 주어졌다. 정부는 대전 김태원 후손이 훈장을 신청하자 세밀한 확인 없이 ‘평북 김태원’과 ‘대전 김태원’을 동일인으로 판단했다.


심규상 기자
<2016-02-2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대전시, 근현대전시관에 ‘가짜 독립운동가’ 전시·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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