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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기업’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장 반려한 ‘이유 같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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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트집 잡으며 고의적 소송 지연”


▲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기자회견에에 참석한 김재림 할머니(2차 소송 원고,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가 미쓰비시의 3차례 소장 접수 거부에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그 옆에서 1차 소송 원고인 양금덕 할머니도 함께 눈물을 훔치고 있다.ⓒ김주형 기자

“요양병원에서 왔습니다. 어린 시절 미쓰비시로 끌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렸습니다. 황금이 탐나서 그런 것(소송)이 아닙니다. 사죄를 받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겠습니다”


휠체어 앉아 힘들게 말을 뱉어내는 김재림(86) 할머니가 오열했다. 김 할머니 발언을 옆에서 듣고 있던 양금덕 할머니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초등학교 졸업 뒤 미쓰비시 근로정신대로 끌려갔던 김재림 할머니는 2014년 2월27일 광주지방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양금덕(85)·이동련(86)·박해옥(86)·김성주(87) 할머니와 유가족 등 5명이 2012년 10월24일 미쓰비시 상대 첫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나선 뒤 2번째다.


2차 소송에는 김 할머니를 비롯해 양영수(86)·심선애(85) 할머니와 고 오길애 할머니 유족인 오철석(79) 할아버지가 참여했다.


기가 막히는 소장 반려 이유:‘대중교통 이용’ 양해문 번역 누락


▲ 전범기업 미쓰비시는 2014년 2월27일 김재림 할머니 등 원고 4명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소장을 3차례 반려했다. 피고 미쓰비시측이 소장을 반려한 이유는 소장 번역문 1페이지 누락, 원고들의 주소 누락(개인정보이므로 생략한다는 취지 설명됨), 옆 사진처럼 ‘주차시설이 협소하니 대중교통일 이용해 주기 바란다’는 내용 번역 누락 등 ‘이유 같지 않은 이유’다.ⓒ김주형 기자


하지만 소송이 제기된 이래 미쓰비시측은 3번에 걸쳐 소장을 반려했다.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공동대표 이국언 이상갑, 시민모임)에 따르면, 미쓰비시는 2014년 12월8일 첫 소장을 접수하지 않고 반려했다. 소장과 소장 번역문(16쪽) 가운데 번역문 한 쪽이 누락됐다는 이유였다.


미쓰비시는 2번째도 소장을 반려했다. 지난해 5월15일 미쓰비시측은 한글 소장과 일본어 번역 소장에 차이가 있다는 이유를 댔다. 한글 소장에는 원고 주소가 시, 구, 동, 번지까지 모두 기재돼 있었지만 번역 소장에는 원고의 시 이하 주소가 누락됐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번역문에는 ‘이하 상세한 주소는 개인정보이므로 생략’한다는 별도 설명이 돼 있었다.


그리고 지난 17일 미쓰비시측은 3번째 소장도 반려했다. 소장에 첨부된 변론기일 소환장 가운데 ‘주차시설이 협소하오니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시기 바란다’라는 부분이 번역돼 있지 않고, ‘한글본 12쪽이 11쪽과 13쪽 사이에 있지 않고 23쪽과 24쪽 사이에 있다’는 이유였다.


시민모임은 첫 번째와 3번재 반려 이유에 대해 “미쓰비시가 고의로 위치를 변경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면서 실제 누락이나 위치 변경에 대해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실제 담당 재판부와 원고측 소장에는 누락되지 않았고, 순서대로 있었다고 했다.


시민모임 “소장 반려로 재판 지연…또 하나의 반인륜적 범죄”


▲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31일 오후 광주광역시청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김재림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 2차 손해배상청구소송 소장을 3번째 반려한 전범기업 미쓰비시를 규탄하고 있다.ⓒ김주형 기자


시민모임은 이같은 미쓰비시측의 소장 반려를 ‘악의적인 소송 지연’으로 봤다. 시민모임은 31일 오후 2시 광주광역시청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송을 제기한 지 만 2년이 넘도록 재판은 시작도 못해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민사소송은 소장이 피고에게 송달되어야만 변론 또는 판결 절차를 정식으로 진행할 수 있는데, 미쓰비시가 터무니없는 핑계를 내세워 소장 수령을 거절하며 고의적으로 소송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맹비판했다.


나아가 “미쓰비시는 후안무치한 짓을 당장 그만 두고 하루 빨리 자발적인 사죄와 배상에 나서야 한다”면서 “구십을 바라보는 피해 할머니들이 힘겹게 법정에 나서도록 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반인륜적 범죄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라 경고했다.


끝으로 정부에 “더 이상 미쓰비시가 오만하게 나오지 못하도록 이제라도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광복 71년이 넘도록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피해자들 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고 촉구했다.


소장 송달에 6개월 기다려야…올해 재판 시작될 수 있을까?


▲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국언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상임대표가 김재림 할머니(가운데)를 안자 통곡하고 있고, 그 옆에서 양금덕 할머니도 함께 눈물 흘리고 있다.ⓒ김주형 기자


변호사인 이상갑 공동대표는 “미쓰비시가 어떻게 시간을 끌어 소송을 제기한 할머니들이 포기하시거나 돌아가시거나 아니면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같이 정치적으로 타협해서 피해당사자들의 의사와 권리구제 없이 사건이 종결되기만을 기다리느라 이렇게 고의적으로 지연하고 있다”며 “터무니없는 핑계를 만들어서 수령을 거절하는 것은 일본 최대 기업 중 하나로서 갖춰야 될 최소한의 도덕이나 양심도 없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2차 소송 원고인 김재림 할머니와 유족인 오철석 할아버지, 1차 소송 원고인 양금덕 할머니, 이국언·이상갑 공동대표, 김순흥(광주대 교수)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등 30여 명이 함께 했다.


다시 미쓰비시측에 소장을 송달하기 위해서는 6개월이 지나야 한다. 송달한다 하더라도 또다시 소장을 반려하지 않으리라 볼 수 없어 올해 안에 재판이 시작될 수 있을지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김재림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있다.ⓒ김주형 기자


김주형 기자 kjh@vop.co.kr

<2016-04-01>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전범기업’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장 반려한 ‘이유 같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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