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죽은 자를 위한 변호인가? 산자를 위한 호구책인가?

1165










▲복거일의 [죽은자들을 위한 변호]의 책 표지     ©민족문제연구소

이런 저런 이유로 복거일의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21세기의 친일문제-』라는 책을 읽어야만 했다. 읽으면서 문득 김완섭이 쓴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수준이나 세련도 면에서 김완섭의 책과 다소 격은 달리 하지만, ‘건시나 곶감이나 매한가지’라는 우리 속담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다만 김완섭이 ‘변명’하는 것과 달리 복거일은 ‘변호’ 즉 보다 적극적으로 ‘친일파’라 불리는 이들에 대해 법적․도덕적 복권을 꾀하고 있다. 그리고 복거일에게 그들은 ‘친일파’라기 보다는 ‘죽은 자’일 뿐이다. 어두운 지하에서 말 한마디 변명하지 못한 채 억울하게 후세에 매도당하는 그런 존재들인 것이다. 죽은 자들을 위해 산자가 아무런 대가없이 처절하게 변호하겠다는 21세기 인권변호사가 바로 복거일이다. ‘소수자를 위한 인권변호사’ 복거일이 결론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다.


 


복거일이 주장하는 것들


1) 당시 강한 나라들이 약한 나라를 합병하는 것을 극히 자연스런 과정으로 여기는 시대 조건 속에서, ‘한일합방’은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합법이었고 일본의 조선에 대한 지배 또한 공식적이고 실질적이었다.
‘한일합방’을 전후한 시기 일본은 조선인의 의병 투쟁을 잔혹하게 탄압했지만, 1920년대 이후 일제의 조선 통치는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며 안정화되었다. 조선 사람들 또한 식민통치를 합법적으로 여겼고 여기에 순응했다. 그리고 일본의 식민통치 아래 조선 사람들은 상당히 잘살았다.


2) 친일파란 사실상 성립하기 어려운 개념이며 그러한 개념으로 처벌할 수 있는 친일파란 존재하지 않는다. ‘친일’이란 개념은 일제 강점기엔 공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합법적 통치 아래의 ‘친체제’였다. 굳이 일제 식민통치시기 어떤 행위가 친일 행위로 비판되려면 그것은 불법적이고, 조선인에게 해로웠어야 한다. 그러나 흔히 친일 행위로 규정되는 행위들은 대부분 당시엔 일반적으로 애국적 발언으로 규정되었고 당연히 합법적이었다는 점에서 자동적으로 친일행위로 규정하기 어렵다.
그런 행위로 꼽을 수 있는 것들은 아마도 독립운동을 한 조선인들에 대한 고문과 여자들을 납치해서 ‘종군위안부’들로 만든 행위 정도인데, 이는 ‘친일 행위’로서가 아니라 ‘전쟁 범죄’나 ‘인류에 대한 범죄’로서 처벌받아야 할 성질이다. 1930년대 말 1940년대 초엽 더할나위없이 암울했던 시대에 덜 나쁘고 덜 어리석은 길을 고르려고 고뇌했던 식민지 지식인들의 모습, 절망적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최남선이나 이광수 같은 이들의 (친일) 동기에 대해서 이제 그들을 위한 변호인들이 서야 한다.


3) 결론적으로 친일 행위들은 또렷이 정의될 수 없으며, 친일 행위들을 한 사람들을, 즉 친일파 인물들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도 없다. 나아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친일 행위들과 친일파들에 대해 죄과를 묻고 판결을 내릴만한 법적․도덕적 권위를 지니지도 못했으며, 그런 판결은 우리 사회의 개선과 발전에 필수적이거나 적어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친일파 처벌론을 내세워 사회에 혼란과 부정적 효과만 가져오기 보다는 항일운동가에 대한 조사․현창을 통해 긍정적 부분을 살리는 게 낫다.


복거일이 주장하는 바는 이것 외에도 많지만 짧은 감상문으로는 다루기 어려워서 빼기로 하겠다. 우리 근현대사나 프랑스나 독일의 과거청산과 유대인문제에 이르기까지 ‘잡이부정(雜而不精)’하고 선별적인 그의 역사 해석, 그리고 이러한 해석의 전제가 되는 몇몇 역사․경제사 이론과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 또 그가 인용한 다소 편파적인 일련의 인용서들-대부분 영미 학자들의 일본근대사 연구서나 윤치호일기, 헐버트일기․그리고 조선총독부 관리들의 회고담-에 대한 사료 비판 또한 생략하기로 한다.
또 그가 제기하는 몇몇 주장은 경청할 가치가 있으나, 이것들이 자신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교묘한 장치로서 자리잡고 있어 무턱대고 수용하기 곤란한 점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서 그의 주요 결론을 검토해보자.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는 합법인가



먼저 복거일은 조선의 식민지화 과정에서 일제의 불법성과 폭력성보다는 주어진 상황의 정당성과 식민지화의 필연성을 더 주목한다. 강대국의 식민지 병합은 당시 열강들이 합법적으로 여겼다는 것을 들어 이를 일본의 조선 지배가 합법이었다는 주장으로 연결시켰다. 그리고 일제의 식민 지배가 과거 조선의 봉건적 통치보다 훨씬 나았다는 점을 들어 그의 합법론은 사실상 도덕적 정당성론으로 발전한다. 그는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는 게 호랑이들끼리는 당연한 이치라 할지라도 토끼에게는 부당하다는 점을 전혀 지적하지 않는다.
과거 강대국의 식민지 지배가 원천적으로 잘못이라는 점이 강조되지 않을 때, 21세기에도 강대국의 ‘나와바리 협약’에 의해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고 지배해도 합법적이고 정당하다는 논법이 성립된다(요즘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또 그는 조선조 말기 자본주의 맹아의 허구, 봉건 정부의 부패와 무능상, 갑오농민전쟁의 미숙성 등을 유달리 강조하고, 일제 식민통치의 합법성과 대다수 조선인들의 체제 순응 태도 그리고 식민통치 아래 조선인들이 살만했다는 이른바 근대화의 성과 등을 대비적으로 늘어놓아 식민통치란 게 뭐가 나쁜 것인지, 근본적으로 식민지 독립운동이 왜 필요한지를 아예 없애 버렸다. 이러한 식민통치 합법론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방법론이다. 그에 따르면 일체의 친일 행위는 합법이며, 항일운동가에 대한 조선인 군경들의 탄압-‘인류에 대한 범죄’인 고문만 하지 않으면- 또한 정당한 행위이자 애국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초 친일은 고사하고 항일조차도 개념이 성립하기 어렵다. 그의 견해를 확대하면 항일운동가는 소수자이며 범법자로서 규정되어야 한다.(그런데도 그는 독립운동가를 존경해야 한다고 한다.)


그는 일제가 아무래도 개발보다는 수탈의 측면이 더 강했다고 딱 한마디 하고는, 수탈의 실체와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역으로 일제 통치 아래 민생 안정의 효과만을 강조하는 편파적 기술을 통해 교묘하게 식민 통치를 옹호한다. 인구의 폭발적 증가를 주목하면서도 왠만한 나라 하나 세울 정도로 많은 조선인들이 해외에 유랑하거나, 이러저러한 형태로 전쟁터에 끌려 나간 것을 그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징병제가 실시되었을 때 대다수 조선인이 이를 하등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으며(설마?), 징병제는 참정권의 (부분적) 실시와 함께 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1937년부터 1945년 사이 조선인 비밀결사가 늘고 저항이 급격하게 늘어 감옥에 수용하기도 벅찼던 사실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는다. 전시체제 아래 극단적 삶은 조선인의 인구 증가와 일본인들도 살기 어려웠다는 점으로 덮어버렸다.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강간을 하기 위해 성병 치료를 했을 때 그는 성병 치료라는 근대적 의학의 개가만 보고 있다. 곰에게서 사탕을 주고 쓸개즙을 뽑을 때, 곰의 입장에서 ‘사탕은 개발이고 쓸개즙을 뽑는 것을 수탈’이라고 이분법적으로 사고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 개발과 수탈은 제국주의 착취의 순환고리로서 통일적으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복거일보다는 그 배후에 있는 일군의 경제사학자들이 더 큰 문제이니 여기서는 이만 하기로 하자.



양심수로 둔갑한 친일세력



다음으로 복거일은 친일파란 개념이 본질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우며, 당시로서는 일제 식민 통치가 합법이었던 만큼 친일파라는 용어 대신 ‘친체제파’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친일파란 개념에 대해서는 학계의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다소 용인할 수 있다. 또 누구를 친일파로 규정하느냐도 쉬운 일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런 데 있지 않다. 친일행위를 한 지식인, 특히 ‘지도층 인사’에 대한 그의 심오한 해석이 문제이다. 그는 예의 ‘합법만능론’으로 친일 행위란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친일행위를 한 자를 ‘친체제파’라고 불러야한다며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 민주적이고 바람직한 정권에 협력하는 것과 일제 파쇼정권에 협력하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그러나 복거일에게는 오로지 합법이냐 비법이냐는 기준만 있다. 그리고 그 합법은 힘에 의해서건 법에 의해서건 한 사회에 관철되고 적용된다는 것만 확인되면 그뿐이다. 그 법에 대한 성찰은 없다.


복거일은 최남선과 이광수 등의 ‘친체제행위’를 고뇌에 찬 결단이며 양심에 따른 극단적 선택으로 보며, 해방 후 이들이 반민특위에 의해 구속된 것을 ‘양심수’에 대한 수감으로 파악한다. 강제든 타의든 광적으로 전쟁 참여를 독려한 그들의 행위가 ‘양심의 발로’로 해석되고, ‘양심수’라는 말이 그렇게 확장되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과거 독재자들치고 구국의 결단과 고뇌에 찬 선택 아닌 게 어디 있었는가? 좋든 나쁘든 모든 확신범은 양심범이라는 기이한 법리를 나는 복거일에게서 처음 들었다.
또 대부분의 지식인(특히 문학예술인)은 강요에 의해 ‘친일 행위’를 했기에 이들 또한 ‘친일 행위’로 처벌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쟁과 혁명의 시기 또는 특별한 독재의 시기 선전 선동과 이데올로기 공작은 최고의 빛을 발한다. 조선의 친일 지식인들은 직역봉공의 논리에 따라 자신의 재능으로서 이데올로기로서 친일행위를 했고, 그 해독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해방 후 강요든 아니든 적어도 그 행위가 지나쳤고 해독 또한 큰 경우 법적 처벌이든 아니면 (더 바람직한 형태인) 스스로의 반성과 자숙이 있어야 했다.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탐구하는 지식인과 문학예술인이 응당 취해야 할 태도이다. 그러나 해방 후 그런 지식인은 드물었고 여기서 우리 사회 지성의 마비현상이 왔다. 복거일은 이러한 점을 지적하기는 커녕 이들 지식인은 강요에 의해 순응했을 뿐이니 그 누구도 도덕적으로조차 비난할 수 없다고 엉뚱한 데 논점을 둔다. 나도 이제는 복거일의 말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대신 그들에게 더 이상 지식인이나 문학예술인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지식인과 문학․예술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그들을 ‘친일 잡범’으로 부르기로 하겠다.
복거일이 처벌의 대상으로 문제삼는 부류는 조선 여인을 정신대(군위안부)로 납치하거나 독립운동가를 ‘고문’한 자-살상한 자, 체포한 자, 밀고한 자 등을 포함하지 않는 점을 유의하라, 합법이니까!- 정도이다. 그러나 이 또한 ‘친일 행위’가 아닌 ‘전쟁 범죄’나 ‘인류에 대한 범죄’로서만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식민지 지배가 왜 인류에 대한 범죄에서 빠져야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조선을 식민지화한 선행 범죄 위에서 ‘징병 징용 정신대(군위안부)’와 같은 추가 범죄가 이루어졌다고 파악하면 이 또한 민족주의의 광기란 말인가? 그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고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것만 주목하지, 반세기 가까이 우리가 일제와 싸웠다는 사실은 고려하지 않는다. 설령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1937년 이후 전시총동원체제 아래서 복거일이 그토록 옹호하는 친일 행위자들의 대부분은 바로 이 시기 ‘전쟁범죄․인류에 대한 범죄’에 전쟁 행위에 직․간접적으로, 적극․소극적으로, 능동․피동적으로 가담한 자들이다.



소수의 강한 자를 위한 변론



최후로 복거일은 준엄하게 우리에게 따진다. 과연 우리가 그 사람들을 단죄할 법적․도덕적 권위를 지녔는가? 당시 분명 합법이었고, 지금 우리가 자유로이 사는 상황에서 무슨 도덕적 권위로 어려운 상황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을 ‘기소’하고 ‘재판’하고 ‘처벌’할 수 있는가? 용비어천가를 지어 바치기를 감히 거부했던 언론인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우리 세대가 어떻게 비난할 수 있는가? 이쯤 되면 내가 되물어야 할 지경이다. 바로 용비어천가를 바친 지식인들이 친일 세력 옹호의 중추세력임을 몰라서 그러느냐고? 1970,80년대 어용 지식인들이 유신의 하수인으로 살아온 삶을 반성하기보다는 그 기득권을 이어오려는 지금의 후안무치야말로 과거 친일 지식인들의 행태를 답습한 것은 아닌지? 그러한 풍토의 순환을 우리는 계속 용인해야 하는가? 복거일, 당신은 그런 점을 왜 지적하지 않는지?
복거일은 더 나아가 친일파 청산을 해서 더 나아지는 사회가 되란 법도 없다, 프랑스는 그 이후 오히려 혼란했다, 북한도 친일파 처벌 때문에 많은 고급인력이 남하해 발전이 저해되었다, 반면 이들을 받아들인 남한사회는 오히려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이쯤 되면 암담함을 느낀다. 내가 알고 있는, 또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유력 친일 인물들은-대체로 대한민국 분야별 대표 선수급들인데- 해방 후 대한민국의 발전에 건설적으로 기여했다기보다는 해악을 끼쳤다. 그리고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그들의 친일 행위 때문에 부당하게 비난받았다기보다는 오히려 민족의 지도자로서 지나치게 존경받고 부와 명예를 누렸다. 더구나 최근 이들은 자신들의 후계 조직에 의해 과거 잘못을 은폐․왜곡하고 나아가 미화해 우리 사회의 존경받는 지도자로 어린 세대에게 재교육되고 있다. 우리는 친일 행위자를 법으로 처벌하자는 게 아니다. 진실을 밝히고 반성을 통해 화해의 길로 상생하려는 것이다. 이제라도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양심과 정의와 도덕의 한 귀틀이 마련되기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게 미래를 위해 현재인이 해야 할 과거에 대한 성찰이다. 이런 실천을 마치 마녀사냥이라도 되는 듯이 여기고, “지금 우리 사회를 억누르는 ‘순수하고 단순한 진실’의 압제를 이 글이 조금이라도 허물기를 감히 바란다.”는 복거일의 출사표는 자아도취 측면이 있다.


복거일은 이러한 자신의 글쓰기를 “소수를 위한 변명”이라고 자부한다. 그는 “죽은 자는 더 궁극적 소수다. ․․그들은 모두 홀로 누워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후대 사람들의 선고를 받는다.․․세상이 버린 사람들을 작가는 거둔다.”라며. 그러나 그가 옹호하는 소수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진 강자이다. 그리고 너무도 많이 존경받고 위세 높은 있는 부류들이다. 강자를 위한 ‘현자의 깐죽거림’을 나는 제일 싫어한다. 그의 영어공용화론에서도 드러나듯, 그의 사고하기와 글쓰기는 언제나 현실순응적이며 ‘상황 타고 넘기’에 접합되어 있다.
그에게는 부조리한 현실과의 치열한 투쟁, 그리고 그러한 대결 속에서 비로소 존재의의가 드러나는 지식인의 역할이라는 게 사라져있다. 주어진(압도하는) 현실에 순응하고 그 속에서 재능을 발하는 적당한 처세주의/개인주의가 하나의 전형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정의와 도덕이라는 관념은 상황론 속에 언제나 유보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그가 갑자기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것을 가진 소수의 변호를 자처했다. 혹시 산자의 그 무엇은 아닌지?



박한용(근대2분과,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