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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 사당에 친일 ‘박정희’ 현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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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 사당에 친일 ‘박정희 현판’이?
충남 민족문제연구소, 철거운동 본격화
  심규상(djsim) 기자   














▲ 윤봉길 의사 영정이 모셔진 충의사 본전에 걸린 고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
ⓒ2004 심규상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의사를 추모하는 사당(충의사,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 일제 때 일본군 장교와 소학교 교사를 지낸 故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가 걸려 있어 철거론이 일고 있다.

한편 3.1운동의 성지인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 정문에 걸린 `삼일문’ 현판이 박 대통령의 휘호로 밝혀져 지난 2001년 강제철거 된 바 있다.

충의사는 지난 1967년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진 것으로, 충의사 본전에는 윤 의사의 영정이 봉안돼 있다. 문제의 글씨는 사당 한 중앙에 내걸린 것으로 검은색 현판 바탕에 흰색 한자로 새겨져 있다.

박 대통령이 윤 의사의 의거일인 지난 68년 4월 29일 이곳을 방문해 준공식 겸 의거기념행사를 하면서 내걸었으며 ‘忠義司’라고 쓴 현판 우측에는 세로로 ‘1968년 무신년 4월 대통령 박정희’라고 적혀 있다.














▲ 충의사 본전 전경. 이 사당엔 추모객들이 매년 7-8만명이 찾고 있다.
ⓒ2004 심규상
이에 대해 양수철 충남민족문제연구소 지부장(45·뉴스서천 대표)은 “일제 때 일본군 장교로 있으면서 독립군을 탄압하고 학살한 박정희의 현판이 윤 의사의 사당에 걸린 것은 수치스럽고 민족혼을 짓밟는 일”이라고 말했다.

양 지부장은 이어 “일본군 장교의 현판이 윤 의사의 사당에 내걸려 있는 현실은 친일파가 마치 독립운동을 했던양 위장해 뒤섞여 있는 현실을 실증해 주고 있다”며 “관할 군청인 예산군에 현판 철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는 등 본격적인 철거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양 지부장은 “일정 시한까지 철거되지 않으면 회원들과 함께 직접 철거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사단법인 매헌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양병용 사업부장도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옳은 지적으로 (현판) 철거가 마땅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매헌 윤봉길 의사는?















▲ 충의사 사당에 모셔진 윤봉길 의사의 영정
매헌 윤봉길의사는 1908년 6월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태어났다. 12세때 일제의 식민지교육을 받지 않겠다고 보통학교를 스스로 자퇴 한학을 독학했다. 19세 때에 농촌부흥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져 1926년 중국으로 망명, 김구 선생이 이끄는 한인 애국단에 가입했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소위 일본 천왕의 생일인 천장절과 접하여 상해 사변의 전승을 기념하는 홍구공원 식당에 들어가 폭파, 상해 일본 거류민단장 가와바따와 일본의 상해 파견군 사령관 시리까와 대장등을 살해하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 제9사단장 에우다 주중공사 시게미스등에게 중상을 입혔다.

거사 직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오사카로 이송,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25세의 일기로 순국했다.
이에 대해 충의사 관리사무소 이재복(58) 소장은 “박 전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명 대통령이고 현판이 걸렸다고 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도 없다”며 “대통령 이전의 과거 행적을 이유로 현판 철거를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 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충의사는 1968년 사당이 처음 창건되고 1972년에 사적 제 229호 및 보물 568호로 지정 받아 수차의 정화 사업을 거쳐 현 사적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매년 7-8만명의 추모객들이 찾고 있다. 주변에는 7만여평의 부지에 윤 의사의 탄생가와 망명길에 오르기 전까지 살던 저한당(成長家), 기념관 등이 자리잡고 있다.

2004/01/10 오후 1:59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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