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국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의 올해 예산 5억원을 전액 삭감한뒤 사전 발간 비용을 우리 손으로 모으자고 첫 제안해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부산 동인고 철학교사 김호룡(43·부산시 동래구 사직동)씨.
김씨는 “인터넷 신문인 오마이뉴스에서 관련 기사를 보고 그냥 내 생각을 올렸을 뿐 별로 한 일이 없다 ”며 “이제 모금이 잘되고 있어 내 역할을 다했고 거론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지난 7일 그가 오마이 뉴스에 올린 ‘친일인명 사전, 발간비용을 모읍시다’란 글에는 조회 건수가 9일만에 2000건을 넘었고 이를 계기로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가 8일부터 실시하고 있는 모금사업에는 8일만인 16일 현재 1만6000여명이 참가해 4억원을 넘어섰다. 당초 3·1절까지 1억원 모금을 목표로 했던 것에 비하면 가히 폭발적인 반응이다.
김씨가 처음 모금운동을 제안한 글에는 “분개하다 못해 슬펐다.총선을 앞둔 선심성 예산으로 수천억원이 넘는 예산을 추가하면서 몇억원의 예산을 잘라버리다니. 그 몇억원의 돈은 수조원으로도 돌릴수 없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 국가기관인 입법부까지도 몰역사적인 부끄러운 상황이라면 남는 것은 국민의 힘밖에 없다. 제각기 분개하고 허망감만 느끼다가 또 잊어버리지 말고 소수일지라도 우리들의 손으로 친일인명 사전을 만들자”고 돼 있다.
386세대로 철학전공자인 김씨가 친일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1년 8월초, 문익환목사 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통일 맞이’행사에 참가해 독립투사들이 투옥됐던 서대문 형무소를 견학하면서부터다. 그는 민족문제 연구소 서우영 기획실장과 친일파 역사 청산 문제에 관심이 많은 재미동포인 최진환 (66·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의사개업)씨등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보름뒤인 9월 학교로 돌아오자마자 친일파 청산 사업에 대한 모금운동을 벌여 10여명의 교사로부터 일부금액을 걷어 민족문제 연구소에 송금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난 7일 우연히 오마이 뉴스에서 국회예산삭감 소식을 듣고 “어떻게 이럴수가 있나” 며 분개했다.
“친일의 역사를 지금이라도 정리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습니다. 해방이후 권력에 의해서든 민중에 의해서든 비슷한 문제를 청산하지 않은 나라는 우리밖에 없습니다. 너무 세월이 지나 현실적으로 처벌이 불가능하지만 후대를 위해 기록으로라도 남기자는 것이 이렇게 어렵단 말입니까.”
그는 민족문제연구소의 한 지방 지부에 호떡장수가 사전 발간을 돕고싶다며 몇만원의 돈을 놓고 갔다고 소개하며 감동에 차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김씨는 “두서없는 글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모금운동을 벌이는 것은 우리들 모두가 그런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고 반가운 동지를 만난 것 같아 눈물이 날 정도”라며 “이제라도 친일 역사 청산작업이 시작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모금계좌번호(국민은행 010901―04―036092,농협 031―01―436086 예금주 민족문제연구소)를 적어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 부산〓김기현기자
ant735@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