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헌영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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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영 민족문제연구소장
현실참여 평론가
동포문학 정리 심혈
1941년 경북 의성 출신으로, 안동사범학교를 거쳐 중앙대 국문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다.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으며 <월간 다리> <월간 독서> <한길문학> <한국문학평론> 등 문예지 주간을 역임했다. 젊은 시절 한때 <약업신문> <경향신문> 등의 기자로도 활동했으며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과 참여사회아카데미 원장을 지내는 등 사회와 역사 문제에도 적극 참여하는 실천적 지식인이다. 중앙대 강사 시절인 1974년 유신반대 문인사건과 1977년 남민전 사건 등 두 차례 민주화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현재 모교인 중앙대 국문과 겸임교수로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으며, 20여 권의 저서와 500여 편의 논문을 썼다. 지금은 이국 땅에서 활동한 동포들의 문학작품을 우리 문학사상 처음으로 한데 망라해 한국문학의 외연을 획기적으로 넓히는 재외동포문학선집 발간 사업에도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선집은 2006년까지 50권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역사의 죄인 누군가
친일사전은 입 연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었다. 두 기관이 실시한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국민성금 모금 캠페인이 불과 열흘 만에 목표액 5억원을 넘어선 것이다. 각계각층의 국민과 네티즌 2만2500여 명이 참여했다. 애초 계획은 3·1절까지 1억원을 넘기고 8월15일 광복절까지 5억원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모금은 16대 국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올해 사업예산 전액을 삭감한 데 분노한 네티즌들의 제안과 자발적 참여로 시작됐다.
감사성명을 낭독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의 목소리에도 벅찬 감격과 희망이 묻어나왔다. 그는 “기득권층의 밥그릇 챙기기에 만신창이로 뜯겨나가고 휘청거리는 대한민국에 진정한 역사의 혼을 네티즌 여러분이 불어넣어주셨다”면서 “역사 앞에서 진정 산 자와 죽은 자가 누구인지 친일인명사전 편찬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모금 캠페인이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뒀다. 캠페인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놀라운 일이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사실 이런 호응은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번 국민들의 열기에는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이 있었다고 본다. 외부적 요인으로는 일본의 독도 망언과 신사참배 망동 등 제국주의적 행태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우리의 민족적 자긍심을 자극했다. 내부적 요인으로는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들의 부정부패와 무능력이 암담함을 넘어 국민의 생존권을 우려할 지경에 이르렀고 그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공감대를 이뤘다.
-그런 계기가 국민적 참여열기의 근본 동력인가
=김대중 정부 들어서서 국민들 사이에서 (민족주체성 회복의) 적극적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는 거의 방치하는 수준이었다. 정부 관련부처가 ‘민족문제연구소’라는 명칭조차도 부담스러워해 사단법인 등록은 다른 명칭으로 했다가 지난해 10월에야 제 명칭을 되찾을 정도였다. 박정희기념관 국고지원 방침도 참여정부 들어서야 철회되지 않았나 (친일문제 청산을 위한) 국민들의 열망이 그만큼 간절하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정부조차도 친일문제를 비롯해 잘못된 과거역사 청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뜻인가
=지역주의의 한계인데, 예컨대 박정희기념관을 지어줌으로써 보수기득권층이나 영남 민심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절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런다고 그들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 여력으로 다른 국민들을 설득해서 개혁을 함께 이뤄갔어야 한다. 욕을 먹어도 개혁을 하고 먹어야지 개혁도 못하고 욕을 먹어서야 되겠나.
-친일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한 데다, 식민강점기 당시 상황론에 따른 항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친일행위의 양태에는 글쓰기, 대중연설, 성금 등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상적 측면’이다. 일제강점기 친일은 네 가지 관점에서 분명히 잘못됐다. 첫째, 반민주적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전제주의 통치를 찬양하고 협조한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해방 이후 독재정권을 능동적으로 옹호하고 유지, 강화하는 데 친일파들이 앞장서 온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둘째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을 지지하고 합리화했다는 점이다. 과거 베트남전 파병이나 지금 이라크 파병에 찬성하는 것도 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셋째, 친일행위는 세계사적 보편성에 입각한 휴머니즘에도 위배된다. 넷째, 민족이나 자신의 운명공동체에 대한 애정은 인간이 지닌 가장 초보적인 미덕이다. 친일이 지탄받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행위에 대한 댓가가 아니라 그 행위에 깔린 사상적 불순함 때문이다.
-이제 와서 친일행위를 단죄하는 것에 어떤 실익이 있는가 하는 주장도 있을 수 있는데
=친일청산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친일문제 청산 없이는 정치개혁도 불가능하고, 온전한 의미에서의 동아시아·세계평화도 불가능하다. 세계적으로 우경화 추세라고 하지만 일본 내에도 양심세력이 많이 있다. 바로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도 우리가 열심히 제대로 함으로써 가능하다. 과거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민주주의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학계 일부에서는 탈(민족)국가주의, 탈역사주의를 주장한다. 친일 청산이 자칫 협소한 민족주의에 머무르는 것은 아닌가
=서구 역사관에서는 그럴 수 있다. 서구에서 민족국가 단위의 역사나 세계사는 1848년 이후에 형성된 개념이다. 1848년에 프랑스 2월 혁명,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선언>, 미국 캘리포니아 금광 발견이 있었다. 서구에서 그 이전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지역사다. 이 시기 강력한 국민국가와 제국주의가 형성됐고 한 세기 동안 식민지배에 유리한 학문과 문화와 종교를 전파해왔다. 왜 그들의 학문이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학문이어야 하는가. 민족주의를 없애서 우리 민족이 더 잘 살 수 있고 통일만 된다면 나부터 그리하겠다. 유럽연합 국가들 중에서 민족주의를 안 해서 일류국가가 된 나라는 하나도 없다. 아무리 ‘노마디즘’의 시대라 해도 아직까지 국가 단위를 넘어선 공동체를 이뤄본 적이 없다.
국민모금 열흘만에 목표액5억 ‘훌쩍’
일제협력자 추가조사뒤 마무리 집필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기구나 제도로서의 국가를 부정하면서도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공동체를 꿈꾸는 아나키즘도 있다.
=아나키즘은 정치적 운동으로서는 가장 강력한 형태이다. 역사적 격변기나 과도기에는 늘 주목을 받았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숙명적으로 수그러들 수밖에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세계정부’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민족국가, 국민국가 단위의 가치관과 생활공동체를 허무는 것은 아무리 이상세계를 꿈꾼다 해도 앞으로 다음 밀레니엄(천년)이 오기 전까지는 안 될 것이라고 본다. 다만, 아나키즘은 운동으로, 학문적으로 계속 추구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결국 민족주의적 가치관을 지켜가야 한다는 뜻인가
=어떤 민족주의냐가 중요하다. 독일 철학자 피히테는 방어적이면서 동시에 공격적인 민족주의는 올바른 민족주의가 아니라는 말을 했다. 우리가 지녀야 할 민족주의는 철저히 평화와 공존의 원칙에 바탕한 것이라야 한다. 진정으로 우리 민족을 위하는 것은 다른 민족까지도 배려할 때 가능하다.
-이완용의 후손들이 법적 소송으로 선조 재산을 되찾은 데 이어 최근 송병준의 후손들이 재산권 반환소송을 진행 중인데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것은 자본주의 기본 원리이다. 현행 법률로는 막을 도리가 별로 없다는 게 안타깝다. 하지만 이것은 법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왜 재산등기 결과만 보고 그 과정은 보지 못하나 사유재산 보호란 정당한 노동으로 받은 정당한 댓가를 보호한다는 뜻이지 강탈·사기·절도 등의 범죄로 얻은 재산까지 보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국가와 민족을 배반하고 핍박해서 얻은 재산이 정당한 사유재산인지, 과연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자문해본 적이 있는지 의문이다.
-북한도 우리 민족이지만 오랜 분단과 적대적 의식화교육으로 정서적 거리감이 있다. 통일 이후까지를 대비한 거시적 시각에서 우리 민족문제를 연구할 필요성이 있지 않나
=매우 중요한 과제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도 앞으로 그 분야에 대해 적극적 관심을 갖고 연구사업을 해나갈 계획이다.
-지금까지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 경과와 앞으로 일정은
=2002년과 2003년 각각 서울 지역과 만주 지역의 일제 협력단체 편람을 위한 자료조사와 입력작업을 마치고 국사편찬위원회에도 그 결과를 보고했다. 올해에는 국내 지방의 일제협력단체 편람을 위한 자료 조사를 한 뒤, 15명의 연구원이 각 분야별로 5개팀을 구성해 1차 집필에 들어가는 한편, 일제하 국내외 단체편람집을 발간할 계획이다. 또 내년에는 일제하 주요 친일인물 편람 자료조사를 거쳐 2차 집필을 시작하고 일제하 지방(친일)단체편람집을 발간할 계획이다. 2006년에 모든 자료를 통합전산화한 뒤 3차 집필에 들어간다. 사전은 4·6배판 500쪽 정도로 20권을 낼 계획인데 35억여 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
글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사진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09000000/2004/01/009000000200401282212383.html
한겨레 2004년 1월 29일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