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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댈 곳은 역시 시민운동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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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갈이’란 말에 온 국민이 희망을 걸고 있는 듯 하다. 불신이 고조될 때마다 정치권이 내세웠던 유인작전이 세대 교체니 새 인물 찾기니 젊은 피 수혈이니 등등의 처방전을 내곤 했지만 언제나 선거 후에 보면 고 모양 고 꼴이었다. 바탕은 두고 모양새만 약간 바꿔 신장 개업했다고 선전하는 게 정치활동이고 보면 이번의 물갈이도 단수 높아진 국민을 현혹시켜 표나 얻고 보자는 속셈이 아닌지 어벙벙해진다.
 
낡은 그릇에 썩은 물
 
진짜 물갈이를 하겠다면 그릇부터 새 걸로 바꿔야하거늘 곰팡이 쓴 항아리에다 심해수를 부어봤자 이내 썩고 말걸 단지는 씻을 각오도 않은 채 그냥 물타령만 하는 꼴이 어찌 미덥지 않다. 고작 이미 폐수 처리된 몇 바가지를 새물이랍시고 붓고는 박수와 환호성을 강요하는 모양새가 꼼수는 아닌지 진작부터 눈살이 찌푸려진다. 얼마나 속은 채 헛 박수를 보냈던가. 보다 못해 시민운동이 앞장서 아예 그릇부터 바꾸라고 덤비면 ‘불법’이니 뭐니 온갖 구실로 진짜 바꿔야할 부분은 ‘성역화’시켜 버린다. 바로 정당 지도급 인사들이다.
 
우리에게 정당이 있었던가. 정당이 대통령의 버팀목이 되기보다는 대통령이 정당의 창출력을 제공해왔기에 1대통령 1정당제(경우에 따라서는 다당제)가 거의 정착해 버려, 역대 집권당은 예외없이 제 목소리를 못 낸 채 행정수반에게 ‘지당’만을 연발하다가 불행한 퇴임을 자초케 한 후 공멸하고 말았다. 한번도 진짜 물갈이를 못한 저간의 내력이 이럴진대 ‘이번만은’ 다르다고 기대할 수 있을까. 현재 원내 의석을 가진 정당은 보혁 이념이나 의원 각자의 신선도에 따라 차이와 예외는 있지만 뭉뚱그려 보면 집권 경력을 가졌던 낡은 그릇에 썩은 물이란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까놓고 말하면 국민의 2할 안팎은 어떤 논리나 설득과 정당성을 들이대도 까딱 않고 DJ와 노무현 대통령이 싫다는 이유로 오로지 한나라당을 연연할 것이고, 그 반대의 2할 안팎은 전두환-노태우-이회창 노선이 싫어 주어진 상황에서 지지자를 선택토록 운명지어진 세력이며, 여기에다 1할 전후의 진보성향이 섞여있다고 볼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약간의 변동이 있겠지만 대략 국민의 절반은 정당 선호도를 지닌 주권자들이지만 소수의 열성 지지자를 제외하고는 전적인 신뢰가 아닌 비판적 지지자들이다. 


총선 전략이란 결국 비판적 지지조차 할 수 없는 절대다수의 국민을 향한 구애작전일텐데 분명한 사실은 얼마나 그릇과 물을 크게 갈이 했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벌써부터 철새정치인들이 이 정당 저 정당을 기웃거리는 한편에서는 ‘인물난’을 구실로 영입설이 난무하는 낯익은 풍경은 절반 가량은 이미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총선이 되지 않을까 출발 전부터 영 조짐이 불길하다.
마음 같아서는 지역에 따라 마땅한 후보가 없는 곳은 아예 선거를 보이코트하고, 참신한 인물이 둘 이상 있는 곳은 다 당선시키는 시민운동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 아닌가.
 
이번엔 진짜 바꿔보자
 
웬만한 소금물이나 방부제성 물갈이가 아니고서는 이미 썩어빠진 오폐수가 고인 정당체제 안에서 ‘역시나’로 전락하지 않을까 지레 염려된다. 기댈 곳은 시민운동밖에 없다. 차라리 어느 당이든 시민운동 단체에다 공천권을 넘겨준다면 그 당이야말로 가장 신선도 높은 물갈이가 될 테지만 고작해야 한 둘 정도의 저명 인사를 초빙하는 형식의 공천 심사제도 자체가 이미 맑은 물을 창출하려는 의지를 저버린 게 아닐까 그 속내가 내비친다. 총선연대는 각당 공천심사 위원들의 면면과 그 성향, 공천 기준과 심사 과정 등등 후보자를 만들어내기 이전의 모습부터 세세히 파헤쳐 주는 게 국민들에게 바람직한 선택을 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다. 과연 그들이 공천심사를 맡을 만한가부터 따져보면 거기서 창출된 인물이 어떤가를 판별하기에 한결 쉬워질 것이다. 


정치개혁법이 썩은 물을 걸러낼 정화조 역할을 다하도록 개정되기를 바라지만 이미 정수기나 각종 용기가 오염되어버렸다면 대체 개혁법인들 무슨 조화로 새 물을 담을 수 있을까. 총선연대의 강력한 방부 역할과 정화 기능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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