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가 주관한 3·1절 기념식에서 친일파 후손이 ‘독립 선언문’을 낭독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같은 주장은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일제 강점하 친일 반민족 행위자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2일)을 계기로 터져나와 지역 사회의 친일 논란 조짐을 낳고 있다.
시는 지난 1일 오전 10시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제85돌 3·1절을 맞아 애국지사와 광복회원 및 지역 내 주요인사 등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3·1절 기념식을 가졌다.
그러나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한 인사는 3일 “기념식에서 3·1 독립선언을 낭독한 이모씨가 지난 1938년 기독교계의 신사참배를 주도한 친일 행적으로 비난받고 있는 故이승길 목사(1887∼1965)의 직계 후손”이라고 밝혔다.
수년째 기독교계의 친일 행적 연구를 벌여온 백모씨(44·인천 계양구)도 “이 목사는 1936년 친일파 문인 오문환씨에게 회유돼 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을 맡으면서 친일파로 돌아서 1938년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열린 총회에서 교인들의 신사참배를 가결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이씨의 주장은 기독교 장로회 신학대학(장신대)이 펴낸 ‘한국기독교회의 역사’에 “친일파 목사 이승길과 평북노회장 김일선 등이 주동이 돼 신사참배 결의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고, 총신대학교의 ‘총신대 100년사’에도 “신사참배로 폐교당한 평양신학교를 이승길 오문환 강병석 등의 친일세력이 교권을 장악했다”로 각각 기술돼 있다.
故이승길 목사는 황해도 황주출신으로 1901년 외국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은 후 을사조약 반대투쟁과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체인 신민회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해오다 1910년 광복군 군자금 조달사건인 ‘안명근 사건’에 연루돼 7년간 옥고를 치른 것이 후손에 의해 입증돼 지난 77년 보훈처로부터 대한민국 독립장을 추서받은 인물이다. 그러나 이 목사는 학계와 교계로부터 활발한 독립운동을 벌인 것은 사실이나 1936년부터는 신사참배를 주도하는 등으로 노선을 바꾸면서 친일변절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목사의 후손인 이모(85) 씨는 “부친은 신사참배를 주도했던 것이 아니라 반대했던 분”이라며 “이는 여러 사료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고 말하고 “교계 내부의 갈등에 따른 반대론자들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씨는 특히 “부친은 기독교에 입문한 이후 줄곧 항일투쟁을 위해 애쓰신 분으로 해방 직전까지 목사 및 전도사들을 이끌고 황해도 황주의 정방산에서 독립운동결사체를 결성했다가 일본헌병에 적발돼 평양형무소에서 1년간 옥고를 치른 뒤 해방과 함께 출감하는 등 일관되게 항일운동을 전개해 왔다”고 주장했다. 후손들은 이를 근거로 “이 목사가 변절했다면 해방 직전까지 수감됐던 사실은 무엇이냐”고 반문하고 있다. 다만 학계는 “해방 직전 이씨에 대한 수감기록이 없다”고 맞서고 있어 당시 수감 사실에 대한 확인 여부가 독립유공자인지, 친일변절자인지를 가를 잣대가 될 전망이다. <박주성기자>jspark@incheo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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