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인 1948년 국회에서는 반민법이 통과되고 이에 의거하여 반민특위가 설치되어 친일파 청산에 나섰다. 그러나 이 같은 친일파 청산 시도는 당시 가장 강력한 친일파세력이었던 경찰에 의해 실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반 세기 이상의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친일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지금도 계속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첨예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곤 한다. 지금도 한편에서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해 순식간에 3만 명 이상이 참여하여 7억여 원의 성금이 모이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국회에서 거부당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친일문제는 왜 지금도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인가? 시간으로만 본다면 먼 옛날의 일인 친일문제를 왜 우리는 지금껏 잊지 못하는가?
왜 지금도 ‘친일’이 문제인가
현재 친일문제의 핵심은 기억과 망각 사이의 싸움이다. 기억하고자 하는 측은 말 그대로 잊지 않기 위해 싸운다. 망각하고자 하는 측은 기억되지 않으려 안간 힘을 쓴다. 왜 누구는 기억하고자 하고, 왜 누구는 망각하고자 하는가? 전자는 친일이 정의롭지 못했고 그런 만큼 과거 청산 없이 그것이 잊혀져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것이며, 후자는 그것이 떳떳하지 못한 것이기에 빨리 잊혀지길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간에는 역사 인식에 있어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역사의 정의 실현에 대한 인식이다.
정의는 역사 속에서 실현되어야 하는가? 그래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인간 의지를 통해 역사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자신의 기득권이 유지되는 것만이 중요한 사람들에게 역사의 정의란 한낱 기성사회에 불만을 가진 불평분자들의 선동적 구호일 뿐이다.
역사의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면 그 실현의 최소 조건은 역사의 불의가 적어도 잊혀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역사의 불의를 잊지 않는 기억 투쟁이 요구된다. 불의를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란 사실 예종(隸從)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의 요체는 바로 역사의 불의를 기억하자는 것이며, 이를 위해 과거의 친일행위를 이제라도 조사하고 정리해 놓자는 것이다.
특별법의 법 제안 이유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에 관한 진상을 정부 차원에서 규명하기 위해 특별법을 마련하고 이에 따라 반민족해위의 진상을 조사한 후 그 결과를 사료로 남겨둠으로써 왜곡된 역사와 민족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고 이를 후세의 교훈으로 삼으려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특별법이 친일파 처벌에 관한 법이 아니라 친일행위 진상규명의 법이라는 점이다.
불의를 망각하는 역사는 예종의 역사
이처럼 친일파 처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단지 친일 행위를 ‘조사’하고 ‘정리’하여 역사의 교훈으로 삼자는 온건한 법인데도 불구하고, 이 법의 통과에 대한 반대는 매우 크다. 그 결과 국회 법사위를 거치면서 이 법은 ‘누더기’ 법이 되었고 그 ‘팔다리조차 짤린’ 법이 되었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지적처럼 특별법이 ‘친일진상 규명법’인지, ‘친일진상 규명 거부법’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특별법의 국회 본회의 상정은 자꾸 미루어지고 있다. 왜? 팔다리조차 짤리고 누더기가 되어 버린 법조차 통과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친일 문제를 새삼 기억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정의란 역사 속에서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밝히는 것, 그리고 그 판단을 통해 사람들이 정의라고 믿는 바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최소한의 전제는 역사의 불의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친일문제의 현재적 의미는 역사적 정의를 위한 기억 투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