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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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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봄을 기다리며
 










▲표명렬 회원     ©민족문제연구소
‘참 군인’하면 주저 없이 떠오르는 자랑스런 한 후배가 있다. 우리는 1965년 파월 맹호부대의 같은 대대에서 근무했다. 그는 9중대 소대장으로 복무하는 동안 두코 전투 등에서 참으로 용감히 잘 싸웠고 아무리 어려운 전투상황일지라도 전장 윤리를 준수하려 노력하며 부하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감싸던 참 멋있는 군인 중의 군인이었다. ‘베트콩을 고문해서라도 무기를 찾아내라’고 독촉하는 대대장을 향해 “아무리 전장이지만, 무고한 사람을 어떻게 고문한단 말이야! 이 ○○야!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시원스레 욕설을 퍼부었던 그의 일화는 유명하다.
그가 동해안 어느 사단장의 전속부관을 하고 있을 때, 그 지역의 군수께서 사단장 면회를 왔다. 부관 실을 들어서며 목소리에 힘을 주어 “사단장님 계신가”라 했다. 쳐다보고 있던 전속부관이 벌떡 일어나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 군수가 위관장교보다 높지 않다는 사실을 몰라!” 하며 주먹을 휘둘러 혼을 내주었다.


얼마 전 ‘친일 진상 규명 법’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암흑의 일제시대 민족수탈과 고자질 등 대표적 악역의 행동책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던 면장을 부친으로 둔 한나라당의 한 국회의원이 이 법안 통과 여부의 열쇠를 쥐고서 본래의 입법취지와 완전 어긋나게 농단해 버렸다. 그의 집요한 계략이 주효하여 군국주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악랄하게 설치던 ‘장교와 하사관’을 친일분자 범위에서 삭제하고 중좌(중령) 이상 계급으로 수정함으로써 가장 심각하게 구체적 범죄를 저지른 부역자들의 작폐에 면죄부를 주는 결과가 되었다.


조국이 적의 침탈로 그 압제 하에 신음하고 있을 때 가장 분명하고 강렬한 국권회복의 저항운동은 무장 투쟁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래서 개인의 입신영달을 위해 적군의 간부로 솔선 부역하여 이런 숭고한 무장세력을 교란·토벌하고 밀정 노릇을 해온 자들은 어느 나라건 조국광복 뒤 가장 엄중하게 그 행적을 파헤쳐 반드시 처단해 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오히려 그들이 국가의 모든 주요 기관을 석권하여, 기득권의 철옹성을 단단히 쌓고 대물림까지 하여 큰소리치며 애국자인 양 국민을 속이고 세뇌시켜왔다. 오늘의 탄핵 정국은 바로 이들 세력이 만든 최고 걸작품의 장송곡이며 희망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개선의 팡파르인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소위가 무엇을 알았겠느냐”며 일그러진 얼굴로 위관장교를 비하·무시하던 그 의원이 국회 법사위원장을 따라 탄핵 문서를 들고 헌법재판소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측은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개인적 보신을 위해 위관장교를 우습게 여기는 그런 망언을 함부로 하던 그가 이 나라의 수많은 위관장교 출신 예비역과 현역들로부터 그 ‘군수님’처럼 주먹 뺨의 뭇매를 맞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아마 이미 그를 향한 마음의 주먹이 쏟아부어졌을 것이다. 그 위력은 여러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물론 그가 군대에 대해 무식해서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 군사독재시대 법무관을 했고 그 으스스한 5공의 ‘국가보위부’에서 독재를 합리화하는 올가미의 법을 만드는 일에 종사했던 분인데 군의 위관장교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몰랐겠는가.


내가 베트남에 참전하였을 때도, 대부분의 전투는 거의가 대위인 중대장과 소위인 소대장에 의해서 치러졌다. 대대의 작전장교나 정보장교도 모두 대위다. 5·16쿠데타 때도 차지철을 비롯한 위관장교들이 수류탄을 주렁주렁 달고 앞장섰다. 일제시대의 위관장교 및 하사관의 권한과 위세가 얼마나 막강하였는지에 대해 국회의원인 그가 몰랐겠는가.


4월이 되면, 친일세력들에 의해 빼앗긴 들판에도 진정한 광복의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다. 아니, 오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민족사의 부름이요 우리들의 염원이기 때문이다.


표명렬 군사평론가·예비역준장


http://www.hani.co.kr/section-001005000/2004/03/0010050002004031618017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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