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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 대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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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 대 ‘친일파’
[곧은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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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희/언론인


“왜인들은 상선(商船)을 타고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이 오면 ‘남만(南蠻)에서 사신(使臣)이 왔다’고 나라에 큰 경사가 난 것처럼 떠듭니다.”

이것은 강항(姜抗·1567∼1618)이 선조 31년(1597) 정유재란 때 왜군의 포로가 돼 일본에 끌려갔다 풀려서 돌아와 승정원(承政院)에서 임금에게 올린 보고서에 적혀있는 것이다. 별시(別試)에서 문과에 급제, 공조와 형조의 좌랑을 거친 그는 정유재란 때 고향인 전라도 영광에서 의병을 모아 싸우다 왜군의 포로가 됐다. 그가 돌아온 것은 3년 뒤인 선조 34년(1600)이었다.

그가 체험한 일본은 ‘왜구’로 불리는 해적활동을 통해 한반도나 중국대륙과 접촉할 뿐, 동북아문명권의 일원으로 참여한 일이 없는 섬나라였다. 그래서 남만(=동남아)에 근거를 둔 서양 상선이 들어오면 왜인들은 마치 외국 사절단이 온 것처럼 법석을 떨었다. 장사꾼과 외교사절을 분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이 동북아의 어느 나라보다 먼저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우세한 군사력으로 동북아를 유린할 때에도 문명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잔인한 만행을 저질렀다. 문명세계의 일원으로 참여한 역사적 경험이 없는 왜구의 나라다운 만행이었다.

예를 들어 종군위안부라는 성(性)노예제도로 집단강간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야만인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패전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그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세계의 경제대국이지만 왜구의 문화, 왜구의 심리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해적 후손 일본의 정치 꾼들


그래서 일본의 정치 꾼 들은 끊임없이 한국을 모욕하는 망언을 일삼고 있다. 작년 5월말 일본의 집권 자민당 정조회장(政調會長) 마쇼다로(麻生太郞)가 “조선의 창씨개명은 조선인들이 원해서 한 것”이라고 말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다시 아홉 달 뒤인 지난 2월에는 고이즈미 총리가 “다께시마(=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하더니, “해마다 계속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고 말했다(2월27일).

이에 대해 노무현대통령이 이틀 뒤 3·1절 기념식에서 “우리 국민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발언을 적어도 국가적 지도자의 수준에서는 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일간의 외교적 마찰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치꾼 들의 망언은 반세기 동안 계속돼 왔다. 이런 망언을 입에 담는 일본의 저질 정치꾼들 집안 내력을 조사해 보면 아마 대부분 왜구의 후손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처럼 한·일간에 공개적인 설전이 오가고 있을 때, 이 나라에서는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으로 한바탕 공방이 벌어졌다. 지난 해 8월 발의된 이 법안은 반년동안의 진통 끝에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 동안 법안은 조사대상에서 언론·예술·학교 등을 통한 친일행위를 제외하고, 고문·학대 등을 했더라도 판·검사가 아니면 제외했다.


친일규명법 새 국회가 개정해야


특히 군인의 ‘장교’를 ‘중좌(中佐=중령)이상’으로 축소했다. 일제의 괴뢰 만주군 장교 출신으로 독립군토벌에 참가했던 박정희를 위한 망발로 지목되고 있다.

‘친일파는 살아있다’는 것은 이 법안심의가 진통을 겪고 있을 때 MBC가 세 차례에 걸쳐 내보낸 <PD수첩>시리즈의 주제였다.(3회분 3월2일밤). 이 법안심의과정을 보면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한 조사자료를 보면 1948년에서 6·25가 터진 1950년까지 활동했던 반민족행위 특별위원회 각 도(道)조사부가 체포한 피의자들 중 가장 많은 부류는 ‘고등계 형사’였다.

경남에서는 체포된 58명중 27명, 경북에서는 38명중 15명, 강원도에서는 20명중 14명, 전남에서는 35명중 13명, 전북에서는 18명중 11명이 고등계 형사였다.(이강수씨·정부기록보존소 학예연구사).

물론 이것은 거물급 친일파를 다룬 서울과는 다르지만, ‘군인’을 ‘중좌 이상’으로 축소한 국회의 몰지각한 행동이 제2의 친일행위 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미 당대의 친일매국노들이 죽어 없어진 지금 우리는 다만 그들의 이름을 기록함으로써 펜으로 징벌하는 필주(筆誅)를 가하자는 것이다.

앞으로 4월 총선 뒤에 새로 구성될 국회가 다시 손질해서 56년전 반민특위법의 정신과 걸맞은 친일 반민족행위규명법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일제 강점 하에서 창간·유통됐던 조선, 동아 두 신문의 행적도 공식적으로 규명하고, 매국노 송병준의 막대한 유산을 몰수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입법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입력 : 2004.03.10 16:4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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