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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법은 폐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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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논단]반민법은 폐지돼야 한다


( 오피니언  2004-3-22 기사 )







 국회는 지난 2월 `일제 강점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통과시켰다.

 동법은 일제에 의한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14일까지 일본 제국주의를 위하여 행한 `친일 반민족 행위’의 진상을 규명하고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여 항구적 자유민주주의의 구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함을 선언하고 있다.

 이 법은 반민족 행위를 18개의 유형으로 세분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활동을 위하여 대통령 소속의 `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 및 자문위원회의 설치를 규정하고 있으며, 조사대상자의 선정, 출석 요구, 진술 청취 그리고 사실 조회와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아니하는 자에 대한 광범위한 벌칙조항을 두고 있다. 또 위원회에 대한 공무원의 파견 가타 중앙 또는 지방 정부 차원의 지원 의무도 규정하고 있다.

 역사의 진실을 밝혀 민족의 정통성을 드높이는 일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처해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이 법을 시행하는 것은 민족의 정통성을 높이기보다는 오히려 민족의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진실규명의 대상은 짧게는 60년 길게는 100여 년 전에 사회적인 활동을 한 인사들로서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분들이다.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의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자료나 증언을 토대로 진실을 밝혀내는 작업은 그 자체가 지난한 일이며, 자칫 편향된 자료나 증언에 의해 진실이 왜곡될 소지도 많다. 설사 일부 진실이 규명된다고 하더라도 친일로 낙인찍히게 될 인사들의 가족 친지 등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뜻밖에 겪어야할 상처와 이로인한 사회적 갈등의 심화 등 부작용에 대해서도 심각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 거의 모든 민주국가의 법체계가 채택하고 있는 시효(時效)제도는 사회정의도 중요하지만 민족사회의 안정이 보다 더 중요하다는 가치관에 기초를 두고 있다. 따라서 살인죄를 범하여도 국가변란죄를 범하여도 상당한 시일이 지나면 처벌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사회질서의 안정을 그만큼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수립 직후인 1948년에 이미 제헌국회가 2년간의 한시법으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반민족특위’까지 설치하여 민족반역자에 대한 처벌을 한 바 있다. 8.15 해방 직후 그러한 조치를 취한 것은 그 당시의 민족의 정서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이를 재론함은 시의성(時宜性)의 측면에서도 민족통합의 견지에서도 올바른 처사라고 할 수 없다.

 둘째, 동법상의 진상규명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의 공적기관이고 위원회의 활동을 위하여는 방대한 조직과 예산의 투입이 필요하다. 또한 공무원의 파견 기타 정부의 지원의무를 규정하고 있어 정부가 중심이 된 진상규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이 법의 목적이 어디까지나 역사적인 사실에 관한 진상규명에 있는 것이라면 이 일은 사안의 성격상 민간 차원의 역사가들이나 학문연구기관 등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기면 될 일이지 굳이 정부나 공적기관이 행정력을 동원하여 추진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더구나 국가재정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이 때에 국민의 혈세를 불요불급한 일에 방만하게 사용한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셋째, 민족의 정통성 운운하여 민족을 분열시키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찢어질대로 찢어졌고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된지 오래다. 특히 이 정부 들어서부터 연일 계속돼온 분열과 대결의 패싸움 정치에 국민들은 지쳐있다. 수구와 개혁, 통일세력과 반통일세력, 자주파와 친미파, 심지어는 좋은 학교 나온 사람과 별볼일 없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민족을 나누고 쪼개어 서로 적개심(敵愾心)을 가지고 치고받게 하는 이 살벌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격투가 아직도 부족하여 또다시 친일과 반일세력으로 편을 가르자는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민족의 통합은커녕 민족의 분열을 더욱 부채질하는 민족적인 자해행위(自害行爲)가 아니겠는가?

 넷째, 외교정책상의 관점에서도 이 법의 시행은 재고함이 마땅하다. 한국이 처해있는 오늘의 주변정세를 볼 때 국제협력의 중요성, 특히 한일 양국간의 우호협력의 중요성은 췌언을 요하지 않는다. 아무리 진상규명이라 하더라도 내년에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게 되는 이 시점에 와서 친일 반민족 운운하며 정부가 나서서 100년전의 전과(前過)를 밝혀야겠다고 하면 한국정부가 지금까지 천명해온 `미래지향적 한일 양국관계’의 다짐은 어떻게 될 것이며 상호신뢰에 바탕을 둔 진정한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민족의 정통성을 높이겠다는 법이 역설적으로 반민족적인 법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이재춘(한림대 한림과학원연구교수)


강원일보 2004년 3월 22일
http://www.kwnews.co.kr/view.asp?s=1101&aid=204032100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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