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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안목으로 본 탄핵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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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안목으로 본 탄핵사태



우리 공화주의 역사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가 벌어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는가, 그 원인이 반드시 추구되어야 한다. 당장에는 아무래도 정치적 측면의 원인이 많다고 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회·경제적 원인도 추구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역사적 관점에서의 원인이 밝혀지게 마련이며, 그것이 더 높은 객관성과 종합성을 가지게 된다. 흔히 역사적 관점의 원인 추구는 시간이 많이 지나야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게 마련인데, 역사 보는 눈만 제대로 가지면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승만 문민독재정권이나 박정희 등의 군사독재정권 시대는 그만두고라도 장면 정권이나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 때도 없었던 대통령 탄핵사태가 왜 노무현 정권에서 벌어졌는가. 그것도 민의의 전당이 난장판이 되면서까지.


-21C형 노무현정권 출범-


우리 근·현대사의 흐름을 근거로 해서 그 원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21세기적 정권이라 할 노무현 정권의 성립으로 20세기 내내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기득권세력의 위기의식이 한층 더 높아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중세적 기득권세력인 양반층에 대신해서 근대적 기득권 세력이 형성된 것은 일제강점시대부터라 하겠다. 그 때문에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전선의 우익전선까지도 민족의 해방은 토지와 대기업을 국유화하고 일제하에서 성장한, 그래서 일제지배체제가 계속되기를 원하는 기득권세력을 숙청하는 ‘혁명’이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해방전에 임정을 승인하지 않은 이유가 이 점에도 있었다.


8·15 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해방은 혁명이 되지 못했고, 일제시대의 기득권세력이 8·15 후의 이 땅에서도 모든 분야에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4·19는 기어이 혁명이어야 했으나 그 주동세력이 정권을 쥐지 못함으로써 역시 혁명이 되지 못했다. 뒤이은 30년 군사정권시기는 친일장교 출신 박정희로 대표되는 일제시대 이래의 기득권세력이 확대재생산되는 기간이 되고 말았다.


긴 군사독재 후에 성립된 김영삼 문민정권도 군부세력을 무너뜨리고 성립되지 못하고 그 세력과 야합하여 정권을 계승했기 때문에 군사독재에 기생한 기득권 세력을 뿌리뽑지 못했다. 뒤이은 김대중 정권도 구군부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과 연합해서만 성립될 수 있었다. 30년 군사독재 후의 민주화과정이 그만큼 비청산적이었으며, 그래서 군사독재정권과 유착했거나 그것을 밑받침한 반민주 기득권세력이 이번에는 보수세력으로 탈바꿈하여 제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다.


일제시대에 성립된 근·현대적 기득권세력의 주류가 미군정 아래서는 친미세력으로, 이승만 정권 때는 문민독재세력으로, 군사정권 때는 군사독재세력으로, 또 김영삼·김대중 정부 아래서는 이른바 보수세력으로 탈바꿈하면서 계속 온존했다.


그래서 우리 근·현대사의 청산성과 선명성이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옳고 그른 것이 뒤섞이고 심지어 ‘식민지 근대화론’까지 나오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8·15 전에도 그랬고 후에도 그랬지만 정치적 찌꺼기 청산이 없는 경제발전은 역사의 선명성을 떨어뜨렸고, 청산되어야 할 반역사적 요인이 온존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노무현 정권은 일제시대와 분단시대로 이어진 기득권세력과의 연계나 도움없이 성립된 최초의 정권이라 할 수 있다. 8·15와 특히 6·25를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닐 뿐만 아니라 그때로부터 이미 두어 세대 지난 제3세대, 네티즌 세대, 평화촛불 행진문화를 만들어낸 세대, 비정상적 한·미관계를 정상적 국제관계로 바꾸려는 반미라기보다 탈미(脫美)주의 세대, 북녘 사람들이 적이 아닌 동족으로 여겨지는 평화통일세대, 21세기 민족사의 주역이 될 새로운 세대의 지지를 받고 성립된 최초의 정권이라 할 수 있다.


-기득권 세력 위기의식 고조-


그 때문에 출범한 지 1년밖에 안되었지만 앞 정권들과는 상당한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서툴다, 거칠다, 덜 세련되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통제불능으로 여길 정도의 검찰권 독립 등에서 보는 것과 같이, 군사권 위주의 시대에 함께 정치를 했던 김영삼·김대중 정권의 ‘문민권위주의’마저 청산하려는 것이 노무현 정권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면서도 김대중 정권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계승·진전시킴으로써 기득권세력에는 불안감을 더해주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성립된 사실 자체가 지난 1세기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한 기득권세력의 퇴조를 뜻한다고 하겠다. 이른바 측근부패 등 노무현 정권도 20세기적 잔재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21세기적 인간형들의 요구에 의해 성립된 정권임은 분명하다. 탄핵사태 이후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대규모 촛불행진을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노무현 정권 지지운동이기에 앞서 일제강점시대와 민족분단시대를 지배한 기득권세력 퇴출운동이요, 21세기적 정권을 뿌리내리게 하려는 시민운동이라 할 수 있다.


-친일파 퇴출등 역사적 의무-


전국 시위장에 나타난 반대세력과 찬성세력의 수적 차이에서도 확연했지만, 탄핵사태는 어차피 퇴출될 수밖에 없는 일제시대 이래 기득권세력의 승산없는 몸부림 그것이다. 헌법재판소 판결이 ‘총선’ 전이냐 후냐에 관심이 높다해도 역사적 안목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총선’ 전에 각하인가, 기각인가, 인용인가 중 어느 쪽으로 되건 또 ‘총선’ 후에 어느 쪽으로 되건, 약간의 시간차가 있을 뿐 어차피 20세기적 기득권세력은 도태될 때가 되었고, 21세기적 정권이 자리잡아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안목에서 현실을 보는 경우 낙관적 관점이다, 당위적 관점이다, 이상주의적 관점이다 하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 조건에만 얽매어 보기보다 오류가 덜하게 마련인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우리가 대통령 탄핵사태를 보고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일제강점시대와 민족분단시대에 계속 자리를 보전했던 기득권세력이 이제 어쩔 수 없이 역사 현장에서 물러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도 막을 수도 또 되돌릴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강만길/상지대 총장〉
최종 편집: 2004년 04월 05일 19:04:55


http://www.khan.co.kr/news/artview.html?artid=200404051904551&code=9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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