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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예술영화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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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도 극장 개봉용 포스터     ©시오리 엔터테인먼트
영화 기획사 [시오리 엔터테인먼트]와 연구소는 민족예술영화 1호인 춘사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을 70여 년 만에 리메이크로 복원해 전국 상영에 돌입했다. 그 첫번째 행사로 6월 22일 오후 일곱시 삼십분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무료 상영회를 갖는다. 관람을 원하는 회원은 6월 21일 오후 5:00까지 신청게시판으로 관람신청을 하면 된다.


영화로 일제에 저항한 진정한 문화적 영웅 춘사 나운규의 영화 정신은 한마디로 말해 ‘피압박 민족의 저항 정신’이었다. 우리는 영화 ‘아리랑’을 통해 남북이 항일과 자주독립 성취라는 역사를 공유함으로써 통일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나아가 ‘아리랑’이 갖는 ‘저항’과 ‘대동’의 민족 정서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문화 브랜드로 자리매김 하고자 한다.


영화 ‘아리랑’은 전국 어느 곳 어느 단체에서나 원하는 곳에서 무료로 상연을 할 예정이다.
상연을 원하는 단체는 시오리 엔터테인먼트(02-592-3546)로 연락을 하면 된다.


<현재까지 예정된 전국 상연 일정>
5월 02일 17시 밀양시청 아리랑축제
5월 04일 20시 성북구 아리랑 시네센터 개관기념
5월 18일 18시 서울대 축제기간
5월 19일 18시 서강대
5월 20일 17시 경희대 대동제
5월 21일 20시 국제연대회의(서울여성프라자) VTR 상영
5월 27일 20시 서울교육문화회관 전국상연대장정 발대식
5월 28일 19시 울릉도
5월 29일 10시 독도


6월 06일 정선군 (잠정)
6월 20일 전주시 (잠정)
6월 28일 해군사관학교 (잠정)


7월 06일 부산시
7월 28일 제주도(문예진흥원)


8월 15일 서울시청 / 일본


<보도자료>


1. 변사극 ‘아리랑’에 대하여


우리는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는 생생히 기억한다. 지난 여름, 전국을 붉게 물들인 뜨거운 함성과 태극기를…
그리고 그 속에서 우렁차게 울려 퍼지며 온 국민을 감동의 물결로 이어준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한의 노래’로 기억된 그 노래가 ‘승리의 노래’ 로 다시 태어났을 때, 오랫동안 닫혀있던 우리의 가슴도 활짝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4년 흑백무성변사극 ‘아리랑’이 찾아온다.


1926년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던 나운규의 ‘아리랑’을 70여년 만에 리메이크했다.
나운규의‘아리랑’ 이후 몇 번의 리메이크 작품들이 있었지만 그 당시 흑백무성영화로 원작의 매력을 살리고 변사를 나오는 흑백무성변사극은 처음이다.
그리고 그 당시의 느낌을 살리는 극을 차용하여 현대인의 정서에 맞는 웃음과 눈물, 해학을 우려냈다.


이 영화가 선사하는 웃음은 어떤 코미디영화보다 웃기다.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내는 슬픔은 어떤 멜로드라마보다 진하며, 배우들이 보여주는 완벽한 연기는 얼큰한 된장국처럼, 때로는 개그콘서트처럼 상황이 주는 코믹함이 있다.
‘웃기면 실컷 소리내어 웃고, 화가 나면 큰소리로 화를 내고, 눈물이 나면 참지 말라!’
영화의 오프닝에 순사와 변사의 대립과 구수한 변사의 입담과 함께 울고 웃고 화내다 보면,
가슴에 응어리가 완전히 녹아든 자신을 발견할수 있을 것이다.


2. 아리랑 전국순회 상연과 나운규


이제 그 아리랑이  독도에서 울려 퍼진다!


그 아리랑의 의미를 그리고 아리랑의 감동과 재미를 홍보하기 위해서 전국상연 대장정에 들어갔습니다.
대학교를 돌고 울릉도, 독도를 거쳐 옛날에 그랬듯이 전국에 변사가 필름을 들고 상연을 합니다.
2004년 5월 28일 아리랑이 독도에서 역사적인 상연을 한다.
흑백무성변사영화인 ‘아리랑’이 춘사 나운규선생의 혼을 불러내어 독도에서 상연을 한다.
현재 일본의 망언으로 국민들의 가슴이 답답한 이 즈음에  ‘아리랑’을 상연하여
일본의 그릇된 역사관을 바꾸어 놓는 귀중한 시간을 마련하고자 한다.
아리랑은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 문화이자 심성이다.
그 중에서도 춘사 나운규선생이 만든 민족영화 ‘아리랑’은 일제의 감정기에서 우리민족에게 희망을 주고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였을 뿐만이 아니라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일제의 강점기에 문화를 가지고 그 역경을 극복하는 힘을 가지게 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이 문화에 대한 우수성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이제는 춘사 나운규 선생의 혼을 불러 내어 우리 국민들에게는 의연한 문화대국의 힘을 일본에게 보여줘야 할 때이다. 독도에서…


영화로 일제에 저항한 진정한 애국지사 나운규


나운규가 활동하던 시절의 영화계는 자본과 시설, 장비 어느 것 하나 변변하지 못했던 한국영화 초창기에 해당한다.
그는 뛰어난 감독이었고 시나리오 작가이자 배우였으며, 일제의 감시와 통제에 저항하던 애국지사였다.
영화 ‘아리랑’으로 일제 암흑기에 나라를 빼앗긴 민중에게 민족적 자긍심과 정체성을 일깨워준 것은 물론, 한민족 고유의 예술적 감성을 대중에게 널리 퍼뜨리는데 일조했다.


영화로 일제에 저항한 진정한 문화적 영웅 춘사 나운규의 영화 정신은 한 마디로 말해
‘피압박 민족의 저항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아리랑의 상연과 함께 하는 문화운동 3가지


첫째 – 아리랑 원본필름에 관한 진실규명과 필름반환운동
둘째 – 사라진 변사의 부활
셋째 – 아리랑 전용관 추진


필름 반환운동, 밝혀야 할 진실 – 강조


민족예술영화 1호인 춘사 나운규선생의 ‘아리랑’은 하나의 영화이기 전에 우리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그 만큼 이 영화의 힘은 대단했다. 신화라고 불리어지는 영화 ‘아리랑’…
영화 ‘아리랑’을 만든  춘사 나운규선생은 모든 영화인과 문화인의 심볼로써 존재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원본 아리랑 필름은 국내에는 없다.
일본으로 넘어간 필름은 사라지고 만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아리랑 필름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일본은 한결같이 계속 미룬다.  “있지만 줄 수없다. 나중에 주겠다… 통일되면 주겠다… ”라는 말로써 그 말의 진실여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관련자료가 빈약하고 구심점이 되는 단체가 미약한 단계로 원본필름 반환운동은 아직까지 별다른 실효를 보지 못했다.
이제 진실은 밝혀야 한다. 그리고 필름이 있다면 당연히 반환받아야 한다.
김치가 그랬듯이 아리랑도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할수 있는 현실이 되버릴수 있는 가정을 떨쳐버릴 수 없다.
전국을 순회 하면서 ‘아리랑’ 필름반환운동에 불을 지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변사, 영화에 빠져들게 하는 구수한 입담의 천연기념물! 이제는 살려야 한다. 


1910년경부터 대중화된 ‘변사’는 유독 한국에서만은 유성영화가 발달한 1960년대까지 인기를 끌었는데, 이는 한국영화에서 변사가 가지는 위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입증해 준다.
단순히 영화를 설명하는 데 그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식 정서와 화법으로 풀어낸 또 하나의 독특한 문화로 자리매김한 변사는 그야말로 영화사의 천연기념물이자 우리 문화유산이다.
현재 변사 영화는 완전히 사라지고 변사로 활동한 사람도 한국에 단 한명밖에 남아있지 않다. 일본에서는 ‘변사 아카데미’까지 세우고 후계자까지 기른다는데, 한국적 특색이 반영된 영화문화였고 한국인의 정서를 지배해온 공연 문화를 보존 계승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이제 아리랑과 함께 변사의 부활이 시작된다.


관객의 마음을 휘어잡은 새 시대, 새 변사 … 그리고 영화 중간의 극


관객의 마음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가진 젊은 변사.
1대 양택조, 2대 최주봉, 그 뒤를 이어 드디어 젊은 변사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도올 김용옥을 능가하는 특이한 목소리로 젊은 감성을 이야기 한다.
3대 변사 주광회는 거칠것이 없다. 화나면 욕을 하고 슬프면 관객보다 먼저 울고 어쩔때는
혼자웃고 신나하기도 한다.
우리가 그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오버한다고 할수도 있지만 젊음의 열정이 담긴 목소리와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영화에 빠져든다.


서슴없는 그의 말과 행동에 순사는 영화를 제지하고 때리지만 독도 이야기가 나오면서
꼭지가 돌아 버린다. 통쾌한 그의 행동에 지금의 독도 문제에 대해 가슴이 후련할 것이다.


세계 문화 브랜드 ‘아리랑’


세계에 아리랑이라는 민족을 대변할 문화를 가진 나라는 거의 없다.
그만큼 우리민족에게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우리 민족은 아리랑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아리랑이 불리지 않는 곳은 없다.
하지만 아리랑은 시대를 대변하기도 한다.  그러한 예가 월드컵에서 보여주었던 신명나는 아리랑이다. 월드컵을 통해 세계는 우리가 부르는 아리랑을 부러워했다.
우리는 여기서 멈춰 서지 말아야 한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세계적인 아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민족의 문화를 보여 주어야 한다.


시오리와 아리랑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리랑 전용관을 위해 인고의 세월을 보내면서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몇 번의 공연의 실패로 깊은 좌절, 외로움 등.. 
아리랑 고개를 넘듯이 힘겹게 넘어왔다. 이제 우리는 아리랑을 세계적인 문화 브랜드로 만들어 갈 것이다. 지금 수 없는 외국공연들보다 훨씬 더 신명나게 만들 것이다.
아리랑에 대한 열정은 계속 될 것이다.


4. 남북의 아리랑


2002년 10월 변사극‘아리랑’이 남북역사상 최초로 북한에서 공식 시사회를 가졌다.
이날 시사회에는 북한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 리종혁 부위원장과 조찬구 문화부상등 고위관계자와 조선예술 영화 촬영소 고학림 연출소장, 북한영화 ‘림꺽정’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최창수 단장과 평양 시민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1대 변사 양택조씨의 “필름 돌려요” 라는 말로 시작되자 평양 관람객들은 변사의 말에 따라 웃기도 하고 눈시울을 적시면서 남측에서 만든 ‘아리랑’과 호흡을 같이 했다.
아리랑을 상영하는 동안 북측 관람객들이 웃고 우는 모습을 보면서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년 후 아리랑은 다시 남북대학생동시개봉을 추진했다.
다시 아리랑은 평양을 향했고 북쪽의 대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아리랑이 끝난 후
일일이 느낌을 이야기했다. 더 많은 북쪽의 주민들이 보기를 희망했고 남쪽에서 필름을 더 보내 주기로 했다.


아리랑으로 남북의 벽을 허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리랑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 아리랑은 계속해서 남북의 문화교류에 이바지 할 것이다. 


5. 포기하지 않는 아리랑에 대한 열정
 
  – 아리랑 상연 전 변사의 멘트 중 –


저희 아리랑 가족들은 아리랑에 미쳐 산 지  벌써 5년이 흘렀습니다.
5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힘든 가시밭길을 걸어왔습니다.
처음 아리랑을 만든다니 다들 우리를 미친 사람들 취급하더군요. 그러나 시작했습니다.
여름 태풍과 싸워가며 촬영을 하고, 남북역사상 처음으로 평양에서 시사회를 하기 위해 중국을 한바퀴 돌고, 극장에서 빛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하루만에 내리고…
참으로 한 많은 아리랑 고개 길을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결코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수 없는 악조건 속에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아리랑’ 제작을 완료하였고 남북역사상 처음으로 평양국제영화린鰥【?아리랑을 시사하였고 대학생 남북동시상연도 하였습니다. 또한 ‘아리랑’ 공연 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러분 곁에 가까이 가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다시 한번 아리랑을 시작합니다.
 그 당시 그대로 변사영화 ‘아리랑’을 가지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지금 독도에서도 울릉도에서도 대학교에서도  영사기를 들고 변사와 함께 전국을 순회하면서 상연하고 있습니다.
아리랑은 민족예술영화 이지만 변사와 함께 한 아리랑은 현재의 어떠한 영화보다 재미있고 감동적일 것입니다.
손님 여러분, 여러분들이 아리랑을 보시고 이 아리랑이 이 변사가 항상 여러분 곁에 있도록 성원해주십시오.
이변사와 아리랑 가족들은 아리랑 전용극장을 지어 변사를 살리고 아리랑을 더욱더 새롭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 아리랑 살리기 운동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을 가슴에 새기어 힘든 아리랑 고개를 넘어 넘어 아리랑전용관 까지 갈 것입니다.
손님 여러분, 아리랑이 가는 길에 이 변사와 함께 같이 동참해 주시길 바랍니다. 꾸짖어 주시고 바로잡아 주시는 참 사랑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그리하면 아리랑은 국민 여러분 곁에 한민족 곁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끝으로 안으로 밖으로 항상 저희를 도와주시고 이 길을 같이 걸어가는 민족문제연구소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지금부터 이 변사 목이 쉬고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분 곁에 항상 같이 있을 것입니다.
손님 여러분 감사 드립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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