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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음악 연구 거울로 삼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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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음악 연구 거울로 삼았으면"












‘망명 음악, 나치 음악’ 펴낸 이경분씨

최근 홍난파와 현제명, 김성태, 이흥렬 등 음악인들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나치 치하의 어두운 음악 역사를 파헤쳐 친일음악의 범주와 성격을 가늠해볼 수 있는 ‘보고서’가 나왔다.

독일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충남대에서 음악학을 강의하고 있는 이경분(44)씨가 펴낸 <망명 음악, 나치 음악>은 ‘20세기 서구 음악의 어두운 역사’라는 부제답게 나치 독일에서 음악과 음악가들이 처한 상황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히틀러가 집권한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치하에서 음악가들이 강요받았던 정치적 선택과 생존의 흔적, 음악행위를 망명 음악과 집단수용소 음악, 나치 치하의 독일음악의 잣대로 되짚어보고 있다. 그는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나치 치하의 음악활동을 소개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친일음악 연구에 보탬이 되고자 책을 냈다”고 밝혔다.

나치 치하에서 12음 기법을 고안한 쉰베르크나 한스 아이슬러, 힌데미트 등은 유대인이거나 좌파적 성향, 현대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배척받아 망명길을 떠나야 했다. “낭만적이고 비밀스러운 운명의 힘을 과시하고 이성보다 가슴과 감정에 더 호소하는 독일음악에 해가 되기”(괴벨스) 때문이었다. 같은 죄목으로 피아니스트이자 재즈작곡가 슐호프는 독일내 소련 포로수용소에서 폐결핵으로 죽어갔으며, 빅토르 울만과 기디언 클라인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했다.

이씨는 특히 이 책에서 나치 치하에서 살아남은 음악가들의 음악행위가 자발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제3제국의 파시즘에 이용당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젊은 카라얀은 유대인인 브루노 발터나 오토 클렘페러, 프리츠 부슈 등 일급 지휘자들의 망명으로 음악계에 공백이 생긴 틈을 타 나치당에 가입한 뒤 출세의 기회로 활용했다. 순수예술을 선언했던 지휘자 푸르트뱅글러의 경우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나치의 극진한 보호 아래 베를린 필 하모니와 함께 왕성한 국내외 연주활동으로 ‘나치 외교관’ 구실을 했다.

“생존을 위협받고 정치적 선택을 강요받던 그 상황에서 과연 순수예술이 가능한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이씨는 “‘순수’와 ‘정치’라는 양자택일 중에서 ‘순수’의 선택은 애당초 정치적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치 정권은 베토벤과 바그너, 부르크너 등의 음악이 ‘영웅심’을 불러일으키고 감정을 격발시켜 민족공동체를 끌어낸다며 정책적으로 장려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934년 제국 당대회에서 히틀러가 등장할 때면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이 연주되었다. 특히 “모든 사람은 형제다”라고 노래하는 <교향곡 9번>의 ‘환희의 송가’는 독일인의 우월성을 암시하는 상징과 함께 나치의 호전성을 은폐하는 알리바이로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연주되었고, 심지어 집단수용소와 게토, 가스실에서조차 울려퍼졌다.

이씨는 “독일이 제3제국 멸망 후 수많은 전범들을 처단했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어용 음악가들의 경우는 변명할 구실이 많았기 때문에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나치 치하와 일제 강점기의 어용 음악인들을 비교하는 연구를 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책세상/5900원.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09100003/2004/06/0091000032004061115250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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