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화해와 친일파 청산
한국전쟁이 끝난 지 50여 년이 흘렀지만, 화해와 일치의 길은 멀기만 하다. 휴전상태에서 남북의 군 수뇌부가 만나서 긴장완화를 위한 몇 가지 조처를 취하고, 내 자동차로 금강산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우리사회의 도처에는 냉전적 사고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게 사실이다. 룡천역 폭발사고를 계기로 극우세력의 대변인 격인 한나라당과 조중동마저 북한동포를 도와야 한다고 말하며 유화적인 제스처를 쓰고 있지만, 그들의 본질이 바뀐 게 아니라 단순한 전술의 변화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보는 없다.
왜 그들은 국가보안법을 시작으로 호주제까지 생명을 다한 빈 껍데기를 붙들고 있는가? 도대체 그들이 바라는 게 무엇일까?
이런 문제를 오늘 민족화해와 일치를 위한 날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싶다. 실제로 우리민족이 갈라져 싸운 게 한국전쟁부터였었나? 분명히 아니다. 해방 무렵부터, 아니 대한제국 말기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화 정책이 분명해졌던 1904년 한일의정서와 1905년 을사조약으로부터 그 갈라져 싸우는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싸움은 표면적으로는 일본군과 정부군이 한편이 되어, 농민의병(동학이후로 시민의식이 높아졌던 농민들)을 소탕하려는 싸움이었다. 그러나 이 싸움의 본질은 조국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조국은 상관없이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사람들과의 갈라진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어져 사회주의 운동으로 연결되었고, 결국 독립군과 친일파의 갈라진 싸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친일파들이 해방 후에도 역시 자신들의 안위와 재산을 지켜냈고, 남북분단으로 갈라져 싸운 한국전쟁을 계기로 반공이데올로기 속에 자신들의 배를 불려나갔고, 군부독재와 손을 잡고 결국은 독립군들의 후손들을 말살시키는 갈라진 싸움을 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자신들의 안위와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늘 갈라져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오랫동안의 싸움에서 한번도 져 본 일이 없다. 그들이 싸웠던 이유는 민족도 조국도 아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갈라놓은 것도 그들이었고, 갈라놓고 싸움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도 그들이었다. 이제는 그들이 싸움에서 지고 역사에서 물러날 차례가 되었다.
이제 시민의식이 높아졌고, 냉전적 사고가 사라지면서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지자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세력으로 더욱 강하게 결집하면서, 마지막 기득권 수호를 벼르고 있다. 이런 상황이기에 그들은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각종 반민주악법들, 한미동맹과 소파, 주한미군을, 심지어 호주제마저도 붙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화해를 모른다. 더군다나 일치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다. 더 불행한 것은 그들 중에도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있다는 사실이고, 성직자들도 그 대열에 참여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면 그 길은 넓은 길이고, 즐거운 길이고, 위로를 주는 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갈라져 싸우면서 자기들끼리만 뭉쳐서 우정을 나누고, 서로 뒤를 봐주는 조폭의 생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화해를 위한 자기 고백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17대 국회에서는 하루빨리 친일반민족행위조사가 명백하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자신들이 스스로의 행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명명백백하게 밝혀서라도 부끄러워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처벌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그래야 더 이상 친일파의 후손이 땅을 찾으려는 소송이 없어질 것이고, 그래야 더 이상 우리 후손들이 갈라져 싸우게 되는 원인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오늘, 입으로는 화해와 일치를 말하면서, 가슴과 행동으로는 전혀 그럴 태도를 보이지 않는 그들을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고 싶다.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온다면…….
장마가 시작되었다.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과 뜨거운 태양을 보고 싶다.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 소식지 [빛두레](제675호) 중에서
http://www.sajedan.org/ 2004-06-24 09:4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