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라고들 했다. 이회창씨가 대통령이 다 된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 정치경력도 일천하고 조직도 없는 사람이 그에 맞서 어떻게 거대야당의 비주류 선봉이 됐을까. 탄핵바람으로 난파위기에 처한 야당을 단숨에 기사회생시킨 비밀코드는 무엇일까. 살벌하고 천박한 언어가 판치는, 어떤 개가 짖어대면 너나할것 없이 짖어대는 개와 같은 존재들로 가득찬 정치판에서 나름대로 격(格)을 잃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절제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귀족적인 듯하면서도 소박한 행동거지로 놀라운 대중성을 확보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대통령의 딸’이어서 가능한 것인가. 그동안 대통령을 비롯한 유력 정치인의 2세들이 정치적으로 명멸해간 것을 뒤돌아보면 그게 정답은 아닌 것 같다. 기자들이 그의 뒤에 모종의 개인적 싱크탱크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하고 취재해봤지만 별무소득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눈물겨운 각고의 노력과 자기 연마를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는 얘기가 된다. 만만한 국회의원이 아닌 것이다.
그런 박근혜 의원의 평상심을 교란시키는 문제가 있다.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의원에게 박전대통령은 정치적 자산이자 후광이지만, 동시에 그의 장래를 옥죄는 덫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관찰해온 대로 박의원은 ‘박정희 문제’만 불거지면 그 특유의 차분함을 잃곤 한다.
-정치적 자산이자 덫-
가령 열린우리당이 추진중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에 대한 그의 반응은 꽤나 실망스럽다. 친일 조사대상에 박정희가 포함될 가능성이 제기되자 박의원은 관련법 개정 움직임이 ‘야당탄압’이라며 감정적 언사를 쏟아냈다. 친일규명 조사범위를 확대하는 것과 한나라당 탄압에는 아무런 논리적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공화당 정권 18년의 주역 박정희는 북한의 김일성과 함께 20세기 한반도에 가장 뚜렷한 흔적을 남긴 역사적 존재이다. 앞으로도 학문적·정치적으로 끊임없이 조명되고 재평가될 인물이다. 그것은 필연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의원이 개인적 인연에만 매달려 선친에 대한 포폄에 일희일비한다면 정치지도자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역사의식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박정희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나와 만주에서 일군(日軍) 장교로 복무했다는 것은 새삼 규명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기록에 다 나와 있는 사실이다. 흔히 친일분자들이 해방 직후 우익정당에 투신한 것과는 달리 박정희가 좌익 신민당에 가담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그가 무력으로 민간정부를 전복시키고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은 것은 굴절된 한국현대사의 단면일 뿐이다.
젊은 시절 개인적 돌파구로서 일군 초급장교 노릇을 했다고 해서 엄청난 친일 역적으로 몰고가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같은 20대의 장준하가 돌베개를 베고 독립운동의 장정(長征)길에 오르고, 청년 김일성이 두만강 일대에서 항일 유격활동을 벌인 것과는 분명 대비된다. 그러한 젊은날의 과오와 유신독재에도 불구하고 역대 대통령 가운데 박정희가 오늘의 한국인들로부터 제일 후한 점수를 받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세상만사에는 빛과 그늘이 있는 법이다.
-‘대통령의 딸’ 넘어서야-
원래 어느 나라나 민족정기를 세우는 일은 진보보다는 보수정당의 몫이다. 한나라당이 과거사 진상규명에 소극적인 것은 한국의 보수주의가 뒤죽박죽인 것만큼이나 모순된 일이다. 특히 박근혜 의원이 단순한 ‘대통령의 딸’ ‘독재자의 딸’을 넘어 진정 ‘시대의 자식’이 되고자 한다면 어금니를 깨물고 새롭게 역사인식을 다져나가야 한다.
스스로 박정희로부터 풀려나고, 그 또한 박정희를 풀어주지 않는다면 그의 정치적 장래는 협소해질 수밖에 없다.
입력: 2004년 07월 18일 18:21:44 / 최종 편집: 2004년 07월 18일 18:21:44
http://www.khan.co.kr/kh_news/art_view.html?artid=200407181821441&code=99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