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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청산, 결코 마녀사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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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한 교수(서양교회사)     ©수도침례신학교
17대 국회에 새로 제출한 ‘친일진상법’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개정을 반대하는 의견을 내는 사람들은 이 개정법이 마녀사냥이라고 선동하고 있다. 친일 청산을 유럽의 마녀사냥과 비교하는 것은 한마디로 상식 이하의 일이다.
 
16, 17세기 유럽에서 ‘마녀’라는 굴레를 뒤집어쓴 여성들은 실상 민중문화의 전달자였고 의녀 또는 산파로서 농촌사회에서 교구사제와 맞먹는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마녀사냥은 지배자들의 지배력이 취약한 곳에서 더 심하게 자행되었는데, 자신들의 위상에 불안을 느끼던 교회 지배자들이 정치적인 적들을 악마의 대리자로 몰아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다. 친일 인사들이 유럽의 ‘마녀들’처럼 일제시대 농촌사회에서 민중을 위무하고 열악한 의료 상태에 놓인 농민들을 돌보았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들은 일제 지배 세력의 정치적 적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농민을 비롯한 동족을 후린 일제의 지배 파트너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친일진상법’을 두고 마녀사냥을 언급하는 것은 역사적 지식과 거리가 멀다.


친일 청산을 유럽의 마녀사냥과 비교하는 것은 상식 이하다. 용서와 화해는 중요한 덕목이지만 성역없는 진실 규명없이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것은 기만적인 자기 보호 책략에 지나지 않는다 ‘친일진상법’ 반대자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개정법 반대자들 중 어떤 사람은 “대량학살, 인종차별, 고문, 인권 유린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반인륜적 행위가 아니라 조국과 민족이라는 특수한 가치에 반하는 부역행위를 과거 청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타당한지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얼핏 들으면 고상하고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반민족 행위가 결국 일제의 고문을 비롯한 인권유린에 동조하고 나아가 침략전쟁을 미화해 대량학살에 가담한 것이라는 사실은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특수한 가치에 해당한다는 ‘조국과 민족’은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일제의 지배행위에 저항했을 따름이다. 반대로, 친일 인사들의 행위는 특수한 가치와 보편적 가치 모두를 부정한 것이다.


친일 청산을 유럽의 마녀사냥과 비교하는 것은 상식 이하다
용서와 화해는 중요한 덕목이지만 성역없는 진실 규명없이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것은 기만적인 자기 보호 책략에 지나지 않는다


2차대전 후 독일은 비교적 훌륭한 과거 청산의 선례를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은 곧이어 나타난 냉전체제를 맞아 동서독이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동독과 서독 모두 친나치 행위를 일부 묻어 두고 말았다. 동독은 인민을 성급하게 체제내화하려는 의도를 가져 나치 청산에 상처를 냈고, 서독의 경우는 서방에서 중요 역할을 기대하는 미국의 압력으로 특히 경제인들의 친나치 행위가 제대로 밝혀지지 못했다.


다행히 지금 우리는 친일행위 진상 규명에 외부의 압력을 받지 않고 있으며, 북한과의 체제 경쟁을 명분으로 이를 덮어두어야 할 시기도 지났다. 용서와 화해는 중요한 덕목이지만 성역 없는 진실 규명 없이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것은 기만적인 자기 보호 책략에 지나지 않는다. 친일진상법 개정에 정치적 저의가 있다는 야당의 주장은 그들이 친일세력의 후예거나 그 비호세력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개정법의 요체는, 예컨대 군인의 경우 중좌(중령) 이상의 지위에 있던 자에서 소위 이상으로 그 범위를 확대하고 ‘전국ㆍ중앙’이라는 단서 조항을 삭제해 지방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이루어진 친일행위를 규명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 나아가 야당 대표를 겨냥한 것이라거나, 야당을 두둔하는, 친일행적이 있는 언론을 겨냥하고 있다는 시각은 바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장수한/수도침례신학교 교수(서양교회사), 〈역사 에세이〉 저자


http://www.hani.co.kr/section-001062000/2004/07/0010620002004071822411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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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룡 대표권한대행은 14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일반 문관은 군수 이상 그리고 경찰은 지방경찰청장급 이상만 대상으로 하면서 군인만 유독 소위 이상으로 확대하려는 것은 비판세력을 겨냥한 것으로 순수하지 못한 마녀사냥식 법 개정”이라고 비판했다.
CBS 정치부 두건율 기자
www.nocutnews.co.kr 노컷뉴스   2004-07-14 10: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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