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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규명’이 필요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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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될 대로 다된 나라에서 역사니 민족이니 지껄여서 뭘 하랴 싶어진 지도 꽤 오래됐다. 평생을 역사니 민족이니 하고 지껄였지만 검부러기 하나 못 건지고 기진맥진 하다보니 이제 남은 것이라곤 늙은이의 노망과 심술뿐이다. 그래서 얼마 전에도 모 대학신문에 우리나라의 사학자들, 특히 독립운동 전공학자님들을 “독립운동을 망쳐놓은 장본인들”이라고 몽땅 배신자 군상처럼 매도해서 그 속에 낀 몇몇 분들에게는 지금도 미안해진다.


국회에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이란 게 제출됐다. 초장부터 벌어지는 찬반의 힘겨루기를 보면서 친일문제 하면 입 다물고는 못배기는 내가 떠올랐는지 신문사 데스크가 그 문제에 대한 글을 요청해왔다. 나도 바로 그 문제로 열이 달아 오르고 있을 때인지라 주저 없이 한판 끼어들기로 한다.


친일파-그것은 옛날 얘기라고 한다. 아니다. 바로 이 문제가 바로 우리 민족의 목을 조이고 민족이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민족 최대 현안이다.


친일파는 다 죽었다고 한다. 아니다. 눈가리고 아웅하지 말라. 하나도 안죽었다. 아니 어쩌면 일제 때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죽은 것은 몇몇 육신뿐이지 그들이 공들여 키워놓은 후계세력들, 그들 덕분에 부귀권세와 영화를 누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친일파는 최고의 존경과 추앙의 대상이다. 바로 그들이 죽은 친일파 뺨치는 충성스런 오늘의 친일파들이다. 그래서 그들을 처벌 하자는 것도 아니고 진상을 조사하자는 데도 팔을 걷어붙이고 가로막고 나서지 않는가. 그렇듯 그들에게는 민족보다도 죽은 친일반역자들의 망령이 절대로 소중한 것이고 그것이 그들의 필생의 유업이다.


-죽은 친일파 뺨치는 충성-


그렇다. 친일세력과의 싸움-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감내해야만 할 오늘의 독립운동이다. 자신들의 죄악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역사에 기록되어 더러운 오명이 후세에 전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일제에게서 물려받은 통치의 칼자루를 흔들어대면서 민족의 미래를 가로막고 있는 친일반역세력들에게 더는 기회를 줘서는 안된다.


가질 것을 다 가진 그들에게 맞서 민족혼 하나로 싸워야하는 우리의 싸움이 힘겨울 수밖에 없지만 지금이 아니고는 다시 기회가 없다. 게다가 양지를 좋아하는 이 나라의 학자님들은 열심히 친일논리를 개발해서 그들을 감싸주고 국민을 호도해가며 저들에게 아늑한 안식처를 제공하고 공격을 가로막아주는 호위병이 되어주었다. 그 바람에 서슬 퍼런 저들의 오만으로 온 나라가 친일반역자들의 기념물 조형으로 뒤덮이고 여기저기에서 친일반역자들의 기념사업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어 전국은 온통 친일 악취가 코를 찌른다. 그래서 ‘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박도 지음)’가 되어 세상에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이런 민족을 두고 뭐라고 해야 하나. 넋빠진 민족이라고 해야 하나.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민족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건 아니다. 넋빠진 민족이면 잃은 넋을 빨리 찾아야 하고 잠에 빠졌으면 빨리 잠에서 깨어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민족을 포기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콱콱 가슴팍에 꽂힌다. 그러면서 깨어난 그들에게 민족문제 해결의 근원은 친일청산 이외에는 없다는 것을 일깨워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친일파문제 연구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조그마한 민간단체에 몸을 묻고 젊은 일꾼들과 함께 애처롭지만 열심히 계란으로 바위치기 하고 있는 데 하늘이 민족을 버리지 않으신 건가. 연이어 번쩍번쩍 서광이 비추어온다.


-민족혼 일깨우는 기회로-


전국 네티즌들의 열화같은 성원에 지지부진하던 사업이 활기를 띠고 자신에 넘쳐있는 데 조금은 답답해보이던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2기 출범을 계기로 아연 활기를 띠면서 우리 일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2기 의원모임 창립식에서 축사를 하면서 나는 의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의원 여러분은 국회의원이자 친일파하고 싸우는 오늘의 독립운동가들이오. 아직은 친일세력에게만 후계세력이 있어 국사를 농단했지만 당신들은 독립운동을 대물림한 우리의 후계세력임을 명심해주십시오”.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저절로 신명이 났다.


입력: 2004년 07월 18일 18:13:29 / 최종 편집: 2004년 07월 18일 18:13:29
http://www.khan.co.kr/kh_news/art_view.html?artid=200407181813291&code=9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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