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기념관 논란 이젠 끝내자 (한겨레 8월 7일 사설)
허성관 행정자치부장관이 박정희기념관 건립에 대한 국고지원을 재고할 뜻을 밝혔다고 한다. 사업 만료기간인 금년 10월말까지 국고지원을 뺀 사업비 500억원의 국민모금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국고지원을 거둘 수 밖 에 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사필귀정이다.
박정희 기념관을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한 것은 순전히 지난 정부의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개발세력’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기념관 건립의 총대를 멘 것이다. 자신이 박정희기념사업회 명예회장으로, 측근인 권노갑씨를 부회장으로 내세우고, 국고에서 200억원을 대고 500여억원을 국민모금해, 2002년 2월말까지 기념관을 건립한다는 것이었다. 역사학자와 역사교사 등 수많은 전문가들이 반대성명을 내고, 250여개 시민단체가 박정희기념관건립반대국민연대를 구성해 반대를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러나 2002년1월 서울시로부터 상암동 평화공원 땅 650여평을 기증받아 착공된 공사는 그해 6월 중단되고 말았다. 당시까지 모금한 27억원에 국고 지원금 3억원을 쓰고 나니 공사비가 바닥난 것이다. 국가보조금의 반은 모금이 되어야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 이상의 지원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사업만료기간을 앞두고 추진자들은 전경련 등으로부터 뭉칫돈을 받아 100억 가까운 돈을 만들고, 그것을 근거로 국민의 정부는 임기 만료를 코앞에 둔 2월 중순, 기념관 건립 기한을 올 10월까지로 연장해 준 상태다.
앞으로 석 달 안에 500억원을 채우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이제 국고로 박정희 기념관을 짓느냐 마느냐는 논란은 끝내야 한다. 국민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업임이 명백해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족과 추종자들이 기왕에 모금한 돈으로 땅을 사서 기념관을 세우는 것이야 누가 말리겠는가. 그러나 국가가 나설 일은 아니다. 상암동 땅도 원래대로 시민공원으로 되돌림이 마땅하다.
http://www.hani.co.kr/section-001001000/2004/08/001001000200408061717114.html
시민단체 “박정희기념관 국고지원 취소 당연”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이 박정희기념관 건립과 관련해 국고지원 취소를 내비친 것(<한겨레> 6일치 1면)과 관련해, 시민단체들은 환영을 나타냈으나 정치권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6일 “늦은 감이 있지만 당연한 조처로 환영한다”며 “박정희기념관은 국민모금이 아닌 일부 기업의 지원으로 이뤄진 ‘그들만의 사업’으로 국민적인 합의를 모으기 힘든 사업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역사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인물에 대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사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곽태영 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이는 마당에 박정희기념관을 세우게 되면 민족적 모순을 드러내는 꼴”이라며 “정부가 직접 나서 지원한 국고를 전액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종석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엄혹한 유신독재 치하에서 고초를 겪은 이들이 두 눈 부릅뜨고 있는 상황에서 유신체제에 대한 찬양일색일 것으로 예상되는 기념관 건립에 국민의 혈세를 지원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필요하다면 역대 대통령들의 공과를 함께 평가할 기념관을 지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도 논평을 내어 “박정희 기념관은 전면 백지화돼야 한다”며 “국민적 동의도 받지 못하는 사업에 국고를 지원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박 전 대통령을 기념한다는 것은 역사 바로잡기와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임태희 대변인은 “당 차원에서 논평을 낼 생각은 없다”며 “다만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애초 시작한대로 좋은 결실을 맺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규양 자민련 대변인도 “지난 정부에서 결정된 기념 사업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번복하거나 박 전 대통령의 공적을 폄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지만, 국민 다수의 인식은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기념관은 서울 상암동 택지개발지구내 600여평의 서울시 땅에 연건평 1600여평,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로 건설돼 내부에 박 전 대통령 재임 때의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근대화 작업과 관련한 자료가 비치될 예정이었다.
이에 앞서 허 장관은 지난 2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오는 10월말까지 500억원 국민 모금 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되면 국고 200억원 지원 취소 여부를 다시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정광섭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03000000/2004/08/0030000002004080617559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