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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청산 어떻게 해야 하나-한겨레(04.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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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강제전향에 맞서다 숨진 비전향장기수 3명의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인정한 뒤 시작된 논란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이 나오면서 ‘국가 정체성’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면서 어두운 과거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홍세화의 마주보기’는 지난 5일 한상범 의문사위 위원장을 만나, 어떤 과거를 어떻게 청산해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을 나눴다. 한 위원장은 의문사위 위원장을 맡기 전에는 친일 문제를 앞장서 파헤쳐온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여느 대담과는 달리, ‘손님’인 한상범 위원장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의문사위의 결정 이후 벌어진 사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모양이었다. 1960년대 한일협정 반대투쟁을 하고 80년대 반독재민주화 투쟁으로 검거된 적이 있으며 김영삼 정부 때도 안기부에 끌려가며 법학 교수 생활을 40년 동안 했지만 ‘빨갱이’ 소리를 들은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한상범=2기 의문사위는 6월말로 활동이 끝났는데 조사시한 만료를 앞두고 비전향장기수 3명에 대한 민주화운동 관련성 인정 결정을 했습니다. <중앙일보>가 빨치산과 간첩을 민주화 인사로 둔갑시켰다는 단순 논리로 보도하면서부터 여타 신문들도 일제히 공세를 취했죠. 민주화운동이라 함은 1969년 8월7일, 그러니까 3선 개헌 발의 이후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케 하고,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해, 한마디로 군사정권에 항거해,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이라고 규정돼 있습니다. 의문사위의 결정에 반대하며 주로 두 가지를 내세웠어요. 전력이 빨갱이, 간첩, 전향을 거부하는 이들인데 무슨 민주화와 관련이 있느냐는 거죠. 공개적으로 항의하는 쪽과 토론하면서 그랬어요. 전력이 빨갱이든 흰둥이든 검둥이든 이미 처벌을 받았고, 전력이 어떻든 사람이라는 겁니다. 인간의 권리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거죠. 또 대한민국 법률의 보호 안에 있는 사람이고, 대한민국이 법치·민주국가라면 그에 따라 처우해야 한다는 거죠. 김영삼 정권 때 내무장관이 ‘공산당은 고문해도 좋다’고 했는데 이것은 아니죠.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거죠. 그 뿌리는 생각하는, 믿거나 믿지않는 인격의 이성적인 자유를 보장한다는 겁니다. 자유민주주의 원조격인 존 밀턴의 ‘사상표현의 자유론’에서도 사상, 양심, 신앙에 대해서는 국가권력이 심판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개인이나 논쟁에 맡기라는 것이고, 자유로운 논쟁에서 진실한 것은 살아남고 잘못된 것은 도태된다는 겁니다. 사상의 자유시장론이라고 하죠. 20세기 최고의 헌법학자인 칼 슈미트도 국가권력이 도덕적인 권위를 가진 심판자가 아니라고 했죠. 자유주의 법치국가론에서는 권력을 필요악으로 보고, 권력이 간섭하는 것은 질서유지와 복지증진에 한하는 것이지 신앙과 학문적인 논쟁 사항을 심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이 상식이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입니다. 전향제는 세계적으로 공인된 악법인데 세 사람은 이에 항거하다 숨졌습니다. 민주화에 의도적으로 기여했다기보다 전향제라는 악습에 항거했고 사회적 파장을 줘서 인정한 겁니다. 민주투사이고, 민주제도 수립에 기여한 게 아니라 인권에 질곡이었던 제도의 폐지에 직접, 간접 영향을 줬다는 거죠.

홍세화 “친일 청산 말만 꺼내면
박정희 논쟁으로 변질”

홍세화=의문사위 결정에 반발하는 측에서도 세 분에 가한 국가폭력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특징은 지난 일에 대해선 아주 쉽게 말한다는 점입니다. 무자비한 반인륜행위가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졌음에도, 다시 말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스스로 부정한 행위에 대해선 아주 간단히 ‘그건 잘못되었던 일’이라는 한마디 말로 넘어갑니다. 그러면서 분단된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법체계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 남한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유지하기 위해 전향을 거부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한=설득력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내심에 대해서는 추단을 할 수 없습니다. 외부에 표현돼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있을 때 규제하는 거죠. 전에 빨갱이였으니까 이럴 것이라는 것은 추단 금지 원칙에 어긋납니다. 내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그런 추단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면 추단을 하게 되면 국가권력이 심사를 하고,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17세기 이래 국가와 종교가 분리되고, 국가가 개인의 내심을 추단하지 말라는 원칙이 세워진 것이죠. 범죄를 한번 저지른 사람이 또 범죄를 저지를 거니까 처벌하거나 징벌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홍=국민들도 의문사는 반드시 규명해야 할 것이라는 데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를 청산하는 작업이 막중한 과제임에도 쉽지 않은 이유는 과거사 청산이 지금까지 반세기 이상 기득권을 유지해온 세력과 정면으로 부닥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의문사위 결정은 너무 첨예한 부분을 건드려, 나중에 해도 좋을 것같은 문제를 일찍 던져 정면 돌파를 시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홍/비전향장기수 ‘민주화’ 결정 첨예한 부분 성급하지 않았나
한/대통령은 괜찮고, 누군 안되고 빨갱이도 인간, 법으로 판단해야


한=보는 시각에 따라 조금 미룰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의문사위 위원들도 토론을 많이 하고 고심도 많이 했죠. 결과적으로 이런 면도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이른바 빨갱이는 어떤 점에선 사실상 법의 보호권 밖에 있습니다. 그 금기와 잘못을 깬 것이라고 볼 수도 있죠. 일제와 분단, 냉전을 거치면서 좌익이나 우익, 가족 가운데는 좌도 있고 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현대사의 상처죠. 좌와 우를 함께 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박정희도 그랬죠. 그러면 누구는 대통령이어서 괜찮고 누구는 안 되고, 이런 식이면 안 된다는 거죠. 인간으로, 법의 형평성으로 본다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홍=동의합니다만 레드 컴플렉스가 아직 강하게 남아 있고 특히 조·중·동 같은 신문이 ‘간첩이 민주인사냐’, ‘간첩이 군 장성을 조사한다’ 등 선동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가는 사회이기 때문에….

한=좌경 노이로제는 100년에 이른 겁니다. 빨갱이다, 그러면 모두 침묵하죠. 무서워서. 이 벽을 누가 치워도 치워야 해요. 이번 일을 겪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의문사 위원처럼 신분이 확실한데도 빨갱이로 매도를 당하니, 보통사람은 오죽 하겠느냐는 거예요. 동네 목욕탕이나 이발소에 가면, 빨갱이다 빨갱이다, 제 귀에 들립니다. 하하하. 빨갱이를 편 든 사람이 아니냐고 하는 거죠. 과거에 좌경 용공 혐의로 몰렸던 사람과 그 가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대담은 청산해야 할 과거의 문제들로 옮아갔다. 한상범 위원장은 친일반민족행위의 문제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문제라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홍=의문사위와 같은 기구들은 부모·자식·형제의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담아온 유가족들과 관련 단체의 회원들이 눈보라를 맞아가며 천막에서 400일이 넘는 투쟁과 고생 끝에 얻어냈습니다. 의문사위는 3선 개헌 이후의 의문사만을 조사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규명해야할 과거의 문제들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죠. 그렇지만 예를 들어, 친일 청산의 문제가 현재의 정치 상황에서는 특정한 시대, 박정희를 둘러싼 논란으로 변질되는 문제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정부 일각에서도 특정한 사안 별로 과거를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규명하자는 입장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한=과거청산은 세 덩어리입니다. 우선 1910년부터 45년까지 일제 시대의 친일반민족행위와 식민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 있습니다. 일제 잔재로서의 제도, 의식, 법령 등이 있죠. 또 하나는 친일파 인맥입니다. 4·19 혁명 이후에 부정축재 환수법이 만들어졌었는데 지금도 참고가 됩니다. 그리고 45년부터 이승만 몰락 때까지의 기간으로 한국전쟁 전후의 양민약살 등이 있는데 이때의 큰 상처는 보도연맹사건이죠. 제주 4·3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등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박정희의 군부독재가 시작된 61년부터 94년까지 이어지는 기간이죠. 5·16 쿠데타 직후에 만든 특별법 등을 통해서 무수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죠. 사법 살인이나 간첩조작 사건도 있죠. 박정희 피살 이후의 전두환, 노태우 정권 당시의 의문사도 엄청나죠. 군 의문사의 경우 1995년 국회에 국방부가 낸 자료가 있는데, 전두환 노태우 집권기간 군에서 사망한 사람이 8951명입니다. 베트남전에 한국군이 참전해 10년 동안 5천여명이 숨졌습니다. 그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숫자죠. 유가족들은 진상을 밝혀내라고 하는데 청와대에 진정을 해도 우리한테 옵니다. 청와대는 우리가 현행법으로는 그것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몰라요. 이렇게 일제, 이승만 정권, 박정희에서 신군부까지가 과거청산 대상이죠.

홍=말씀처럼 친일파,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 군 의문사 등 우리가 규명하고 청산해야 할 과제는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도 친일 청산이 부각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문제들이 모두 일제 식민지배와 일제에 부역한 세력에 뿌리가 닿아있기 때문이죠.

 









   한상범 “친일·학살·군부독재‥
   단순 과거 아닌 현재진행”


한=48년 반민특위가 무산돼 친일파는 한 사람도 심판 받지 않았고, 재산도 고스란히 보전됐습니다. 재산, 관직, 명망가로서 기반을 다 가졌죠. 이승만 정권 때 친일파는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해서 조선반도를 무대로 활동한 친일파죠. 일본의 제국대학을 나온 이들이었죠. 61년 박정희의 등장은 만주 관동군 중심의 만주 친일파의 등장이죠. 만주괴뢰국가의 군관학교, 만주대동학원, 만주건국대학, 만주오족협화회라는 친일단체 출신이죠. 쿠데타를 하자마자 행정기관에 군을 보내 장악했는데 만주에서 일본이 괴뢰국가를 관리하던 방식이죠. 특히 박정희의 친일행적이 왜 지금도 문제가 되느냐면 박정희의 친일이 5·16 쿠데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는 겁니다. 만주 관료의 효시가 기시 노부스케였는데 박정희가 숭배했죠.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 기시가 일본의 수상일 때 만나서는 ‘조선놈은 다 믿을 수 없다. 대통령을 하게 믿을 수 있는 일본인 한두 사람 추천해 달라’ 기시가 ‘왜 그러냐’고 하니까 ‘장관급으로 자문을 받아야겠고, 또 한국은 더러워서 정치를 그만두면 돈이 필요해 돈 관리를 알고 싶다’고 했어요. 박정희가 제일 존경한 사람이 관동군 참모를 한 세지마 류조입니다. 그의 회고록이 있는데 박정희나 전두환, 노태우한테 ‘가르침’을 준 것이 나옵니다. 박정희한테 수출주도, 종합상사 아이디어를 줬죠. 전두환도 79년 12·12 쿠데타를 할 때 사전에 일본 대사에게 통보했고 나아가 세지마한테 ‘이러이러한 일이 벌어지니 놀라지 마라’고 알리죠. 세지마는 전두환한테 88올림픽과 86아시안게임을 주최하라고 하고 그런 대회로 애국심이 커지고 정권의 정통성이 보장된다고 했어요. 노태우는 퇴임할 때까지 세지마한테 묻는데 세지마는 ‘네 나라의 대통령 직선제는 낭비고 국론이 분열되니까 내각제를 하라’고 합니다. 친일파 인맥은 그대로 이어지고 세력도 강합니다. 보이지 않는 실세죠. 군사정권 청산도 친일인맥과 관련이 있죠.

친일반민족행위자나 불법적인 폭력을 사용했던 가해자를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가를 두고는 사람들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 대다수가 친일파의 후손들까지 처벌하는 ‘연좌제’에는 반대하지만 지금도 이들이 떵떵거리며 사는 게 친일에 따른 재산축적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홍=과거 청산과 관련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참조되기도 합니다. 남아공은 아주 오랫동안 백인에 의한 인종차별과 억압이 있었지만 국내 동력으로 흑인정권이 섰기에 그것이 가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남아공보다는 의문사 진상 규명이든 책임 규명과 처벌이든 지지부진한 남미와 비슷한 상황으로 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그래서 더욱 세밀한 준비와 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일제시대는 친일진상규명법이 나와 있고, 45년부터 61년까지의 경우, 제주 4·3사건이나 거창양민학살사건이 있는데 빠진 사건도 많죠. 보도연맹사건처럼. 61년 이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만 재심이 됐어요. 청산해야 할 것은 제도나 의식구조, 관습, 이런 것을 고쳐야 하죠. 제도는 개폐하면 되는데 일반 의식은 교육이나 계도가 필요하죠. 인적 청산이 있는데, 친일행위의 경우 이미 다 고인인데 처벌할 필요도 없고 역사기록을 바로잡으면 되죠. 후손한테 누가 되면 안 되죠. 다만 후손과 관련해서는 거금을 축적한 경우가 있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합방했을 때 2만3천~2만7천명의 양반들한테 천황의 이름으로 하사금을 주고 작위를 줍니다. 이들이 친일지주가 되고 친일파가 되는데 그 당시 만원은 엄청난 돈이죠. 그 돈을 땅에 투자했고, 이완용, 송병준 등 친일파의 재산이 몇 조원에 이릅니다. 이 재산으로 후손들은 선조를 미화하고 친일세력을 끌어 모읍니다. 친일파의 부정축재가 아직까지 이어집니다. 친일파 재산은 우리 헌법의 보호대상이 안 된다는 1심 판결이 나왔는데 상급법원에서 바로 뒤집어졌어요. 인적 청산에서 살아있는 사람도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죠. 시간도 지났고, 역사 앞에 사죄하고 제대로 기록되면 끝나는 거죠.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다만 반인륜범죄는 예외로 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예요.

홍세화 “과거청산 간단한 문제 아니나
참여정부 인식·추진력 기대이하”


홍=반인륜범죄에 대해선 공소시효가 없는 게 보편적입니다. 한국에서 저질러진 반인륜범죄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한=집단학살이라든지 고문으로 살해한 행위 등이 있겠죠. 사람들이 남아공 얘기를 많이 하는데 남아공에서는 참회하고 진실 앞에 겸허해지고 피해자도 용서했습니다. 우리는 친일파의 참회, 군사정권 때의 범죄행위에 대한 참회가 없어요. 친일과 독재를 합리화하거나 정당화시키려고만 하죠. 일부는 기득권을 누리고 호화생활을 하는데 반해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은 전과자 취급받고, 독립운동가는 낙오자가 되는 게 현실이죠. 민족정기, 정의를 말하는데 악인이 행세하는 사회는 윤리가 설 수 없습니다. 해방 후 친일파가 잘 살고 득세하니까 윤리가 없어졌어요. 이승만 말기는 ‘빽’의 시대라는 자조가 있었고, 5·16 뒤에는 일부 얼빠진 사람들이 군사쿠데타를 혁명이라고 떠들기도 했습니다. 정의가 뭔지 착각했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없었기 때문이죠. 매국노나 민족반역자가 행세하는 사회는 절망적이죠.

홍세화 기획위원은 참여정부와 여당의 과거청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한상범 위원장 역시 역사를 올바로 세우는 문제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홍=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이래로 이들이 사회의 기득권세력이 돼 나라의 공적 부분을 온통 장악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과거청산은 무척 어려운 문제로 보입니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과거청산에 대한 인식이 어떤가가 관건이고 중요하게 제기되는데 비전향장기수 민주화 관련성 인정 결정에 대해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은 ‘한참 나갔다’고 했죠. 그리고 대통령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의문사위의 소속을 국회로 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위원의 신분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국회의 동의를 받은 사람을 위원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거든요. 일부 언론은 의문사위를 대통령 ‘직속’이라면서 왜곡합니다. 대통령이 지시를 하는 것처럼 비치게 하는데 대통령이 의문사 조사나 심의, 결정에 대해 일체 간섭할 수 없고, 위원들은 법관에 준하는 신분이 보장됩니다. 금고 이상의 판결을 받기 전에는 면직되지 않고 신분이 보장되죠. 국회에서 탄핵을 할 수는 있겠죠. 교수나 변호사들은 상당히 온건하고 중립적입니다. 대법원 이상으로 중립적이고 공정하다고 봅니다. 국회 소속으로 하면 당파적 비율구성이 되고, 그러면 제대로 안 되죠. 의문사 진상규명이 힘들어 지고 표류할 것으로 봅니다.

홍=과거청산 문제에 대한 참여정부의 인식의 깊이나 진정성, 추진력이 너무 미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홍/수많은 억울한 죽음 규명 또 경제에 뒤로 밀리는 느낌
한/형사처벌·연좌제 불필요 학살등 반인륜범죄는 예외


한=정부에 직·간접적으로 말했어요. 당신들은 70년대 80년대 피눈물의 역정을 거치면서 닦아놓은 길에 무임승차해서 상당히 안이하게 덕을 봤기에 개혁을 가볍게 본다고 했죠. 역사를 올바로 정리하는 문제를 몸으로 절실히 느끼지 못한다는 거죠. 비장한 사명감을 갖지 않으면 국제관계나 남북관계에서 해결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방, 혈맹이라고 하는데 백일몽을 꾸지 말라는 거죠. 국가간 이해로 혈맹이 되는 나라는 없습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이 우리를 일본에 팔아넘기지 않았어요 국제관계가 원래 그런 거죠. 옛날 일이라고 하는데 자라는 세대한테도 교육을 잘못해서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러다간 그야말로 부평초보다 더 비참하게 되지 않겠느냐는 거죠.

홍=그래서 더욱 이해되지 않는 일인데요. 가령 칼기 사건 유가족들의 한을 풀어주는 일에 소극적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의혹에 지나지 않는다면 진실을 밝혀주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으니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죠. 그리고 허원근 일병 의문사 문제로 군과의 갈등이 있었는데 참여정부에서는 군의 사기를 생각해서 덮어둔 건가요.

한=정보, 경찰, 군, 이런 벽을 뚫으려면 관습을 뒤집어야 하는데 참 어렵습니다. 기관이 협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특정 부서책임자를 원망하지도 않고 감정도 없습니다. 법이 준 임무에 최선을 다 했고, 여기까지 했는데 안 된다, 여론에 호소하고 정치권에서 풀어야죠. 미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을 때 정부 자체에서 조사하고, 상하 양원에서도 합니다. 정보공작에 누가 돈을 쓰고 누구를 죽인 게 다 나오죠. 우리는 중앙정보부가 설립된 이래 한번도 그런 일이 없어요. 의문사는 국가권력의 범죄인데 범죄에 무슨 비밀이 있고 기밀이 있습니까 보여달라는 것은 범죄와 관련된 것이지 안보와 관련된 것이 아니죠. 전두환을 소환하려니까 어떻게 전직 대통령을 소환하느냐고 했죠. 그래서 쿠데타로 대통령을 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 사건에 관련해 소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군 장성을 간첩이 소환한다고, 장성이고 장성 할애비고 대통령이고 왜 못해요 법으로 하는 것인데.

어두운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다. 홍세화 기획위원은 이라크 파병이 과거의 길을 걷고 있다면서 정부·여당이 말하고 있는 과거청산과 충돌한다고 비판했다.

홍=이런 지점도 봐야될 것 같아요. 분단 전후, 전쟁 전후, 군사독재 시기를 관통하여 억울한 죽음이 수없이 있었는데, 이 억울한 죽음들을 규명하고 신원하는 일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되는 염치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바탕이 돼야 인권이고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데 오늘날 한국사회구성원은 인간성보다는 경제동물화한 부분이 강하지 않는가 합니다. 박정희를 먹고 살 수 있게 해줬다는 식으로 받아들이죠. 민족정기의 수립이나 정통성, 인도주의적 측면에서도 잘못된 과거를 청산해야 하는데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이 이렇고, 참여정부에서도 경제만을 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청산이 다시 또 뒤로 밀려나는 위험을 느끼시지는 않는지요

한=일반 국민의 사회의식이 후진적이라 하더라도 그대로 남겨두고서는 진보가 없습니다. 누군가 앞서가거나 끌고 가야죠. 군사정권에 대한 미화, 굶주림을 없앴다는 것은 신화죠. 아무개 때문에 우리가 밥 먹고 사는 것은 아니죠. 노동자나 기술자, 기업인의 노력의 댓가죠. 어떻게 특정인의 공로입니까 그런 것을 자꾸 주장하는 사람은 군사정권이 좋았다, 그리로 돌아가자는 얘기거든요. 국민이 용납 안합니다. 피흘리면서 싸울 겁니다. 경제 문제가 있어 개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상투적인 발목잡기죠. 경제문제가 있으니까 역사나 옛날 얘기는 그만하자, 그러면 경제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데요. 적반하장이죠. 다만 안타까운 것은 정부가 미흡하고 미숙한 것은 사실이죠.

홍=사회구성원이 경제우선주의, 실리주의에 매몰됐고, 수구세력은 지금 급한 것이 경제가 아니냐고 하는데 참여정부의 의지가 부족하니 결국 이런 것에 휘둘릴 수밖에 없으리란 우려가 있는 것입니다.

한상범 “민족정기 말하며 악인들 떵떵
이런 사회에 윤리가 설수 있나”


한=저도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좀더 확고한 입지를 세우고, 국민한테 좀더 직접 솔직하게 호소해야죠.

홍=일제 부역세력은 분단 상황을 타고 미국을 등에 업고 사회의 지배세력이 됐죠. 역사적 안목에서 볼 때 이라크 파병 문제가 결국은 과거청산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요.

한=국제관계 속에서 정부로서는 상당히 고민하고 결정을 했겠지만 좀더 시간을 두고 국민의 소리를 듣고, 미국한테 우리의 처지를 충분히 알리고 조정을 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죠. 우리 헌법상 해외에 군대를 보내 전쟁에 뛰어드는 데는 제약이 있잖아요. 근본적으로 미국과 일본에 연결되는 고리를 끊을 수 없는 현실태를 말하는 것이죠.

홍/잘못된 역사 답습 이라크 파병 정말 이해안돼
한/의문사위 국회로 가면 당파성에 휘둘릴 가능성


홍=반민족세력이 지배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민족적 정통성이 없으므로 외세를 필요로 했죠. 일본이 그랬고, 분단 이후에는 미국이 그 역할을 한 게 사실이죠. 빨갱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극우세력인데, 모든 나라에서 극우파는 그 나라의 민족과 국가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대변하는데 오직 남한 만은 예외입니다.

한=여기서 극우세력은 친미세력이고 친일세력이죠. 민족세력이 아니죠.

홍=그렇죠. 이렇게 왜곡된 것을 바로 세우는 것이 과거청산인데 이라크 파병은 지금까지의 잘못된 역사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니냐는 거죠. 결국 과거청산과 정면에서 충돌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이번 의문사위 결정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세력일수록 이라크 파병에는 적극적으로 찬성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한=제한된 시간에 얘기할 입장이 아니라고 보는데, 민족의 장래나 국가의 처지를 봐서 진지하게 고민할 과제라는 점은 틀림없습니다.

정리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사진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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