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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언론, 다시 완장을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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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언론, 다시 완장을 차다
[김광원의 세상열기] 친일진상규명법과 정체성 논란

 


김광원 칼럼니스트 kwkim@mediatoday.co.kr


 















   
▲ 김광원 / 본지 객원칼럼니스트·문화일보 논설위원
윤흥길의 80년대 장편소설 ‘완장’은 한국인의 권력의식을 매우 해학적으로 보여준다. 졸부 최사장은 널금저수지의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고 저수지 감시를 건달 임종술에게 맡긴다. 그날부터 임종술은 안하무인이 되고 만다. 그의 힘은 완장으로부터 나온다. 그 완장은 완벽하게 임종술을 최면에 걸만큼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작품에서 완장의 뿌리는 일본의 한국 강점기 시절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겐빼이(憲兵)’에 연결돼 있다. 작가는 임종술의 어머니를 통해 이 완장의 비극적 역사를 잠깐 스쳐지나가게 한다. 그 그늘의 어둠이 너무 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제(日帝)로부터의 해방 이후에는 또다시 이데올로기 대립과 전쟁을 겪으며 완장의 비극이 더욱 깊어진다. 임종술은 결국 완장을 저수지에 벗어던지고 떠난다. 그러나 그 완장의 힘은 여러가지 형태로 아직도 이 사회에 건재하고 있다.


친일에서 친미-반공-반북으로 이어진 완장의 역사


조중동 등 수구언론이 다시 완장을 찼다. 그 공격대상은 물론 노무현정부다. 그러나 그 공격의 배후에는 완장의 뿌리 이상으로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흐름이 존재한다. 그 흐름 역시 일제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해방정국 이후 권력을 향유해온 세력의 기득권의 유지가 그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친일세력의 권력독점으로부터 친미(親美)·반공(反共)·반북(反北)으로 이어지는 완장의 상징은 완강하고 위력적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여야간의 국가정체성 논란도 그 중의 하나다. 그 논쟁의 출발은 일련의 ‘과거사 문제’이다. 사실은 그 중심에 ‘일제 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친일진상 규명법)’이 존재하고 있다. 16대 국회에서 이 법만큼 죽을 고비를 넘기고 수많은 칼질을 당한 경우는 없다. 한나라당이 다수였던 시절이었다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울 정도다. 오죽해야 ‘친일진상 규명 방해법’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지난해 8월 155명의 의원서명으로 제출된 이 법안은 그해 12월 국회 과거사 진상규명 특위를 통과한 뒤 법사위에서 뭉기적거리다 반려되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당시 법사위 제2법안 심사소위원장인 한나라당 김용균의원이 이 법안 반려의 중심이었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중 친일행위로 걸리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법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 법안은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월2일 16대 국회 마지막에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 법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진상규명위의 활동기간은 5년에서 3년으로 줄어들고 조사대상도 특정한 목적으로 축소되는 등 껍데기만 남은 꼴이었다. 특히 문제는 그 조사대상이었다. 그중에서도 초점은 `일본군 장교’가 ‘일본군 중좌(중령)이상’으로 축소됐고 ‘문화·예술·언론·교육·학술·종교 등을 통한 친일행위’가 ‘문화기관이나 단체’로 바뀐 점이었다. 이는 사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동아일보 조선일보를 조사대상에서 제외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수구언론은 이같은 논의를 백안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반증이다.


친일진상규명을 놓고 장난치는 세력들


그러나 17대 국회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달 14일 여야의원 171명이 친일진상 규명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개정안은 제외됐던 일부 조사대상자를 복원한 내용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일본군 장교’와 ‘언론’이 다시 포함됐다. 수구언론의 일제사격은 그래선지 이성을 잃은 모습이었다. 16대 국회 내내 변변한 말 한마디 없던 이들은 개정안 제출과 관련, 정치공세이자 특정인과 특정언론을 겨냥한 것 일뿐 아니라 여당의 대선전략이라고 공격했다.


수구언론은 공격의 방법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곧바로 특별법 개정안이 ‘한나라당 박근혜대표를 겨냥한 것’이라거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겨냥한 것’이라는 구체적 표현이 등장했다. 박근혜 대표 역시 이에 화답했다. 그는 이를 두고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정치보복의 시작이다”고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박근혜 대표가 바람잡은 국가정체성 논란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 심지어 경제난과 행정수도 이전문제까지 연계시켰다. 이른바 총력적 맞불작전이다.


바로 이것이 수구언론이 펼쳐온 완장정치의 전형이다. 그 효과 또한 상당하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히 해둘 점은 더 이상 친일진상 규명법 개정안을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경고다. 최소한 국민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정치를 이용하는 세력을 분별할 수는 있다.


 

입력 : 2004.08.09 15:23:22 / 수정 : 2004.08.09 2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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