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중근, `신병 러시아 인도’ 기대 하얼빈서 거사
= 송병준, "비싸지 않다" 침탈 대가 1억5천만엔 요구
=이봉창 의거 배후 김구 지목, 체포실패 `사살명령’=
(도쿄=연합뉴스) 이해영ㆍ신지홍 특파원 = 일제 식민통치 시절 안중근(安重根)이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저격장소로 하얼빈(哈爾濱)역을 선택한 것은 당시 하얼빈이 중국 주권이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착안, 러시아에 신병이 인도될 것을 기대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통역관으로 시작해 후일 간도(間島) 일본 총영사관 경찰부장을 지낸 아이바 기요시(相場淸)는 가쿠슈인(學習院)대학 동양문화연구소가 펴낸 ‘미공개자료 조선총독부관계자 녹음기록’에 수록된 증언에서 안중근은 "이토 살해범은 국사범(國事犯)이고 국사범은 처형되지 않는다"는 전례까지 계산한 끝에 하얼빈을 범행장소로 택했다고 증언했다.
연합뉴스는 최근 가쿠슈인(學習院)대학 동양문화연구소가 조선총독부에 근무했던 전직 관리들의 증언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정리한 "미공개자료 조선총독부관계자 녹음기록" 전편을 입수했다.
동양문화연구소는 이 녹음기록을 2000년부터 4년여에 걸쳐 별권(別卷) 또는 자체 연구지인 `동양문화연구’에 게재하는 형식으로 정리했으며 금년 3월에 별권으로 펴낸 `미공개자료 조선총독부관계자 녹음기록(5) -조선군ㆍ해방전후의 조선-‘을 끝으로 1차 정리를 마쳤다.
총독부 관리 또는 한국어 통역으로 일했던 사람들의 육성녹음을 풀어 정리한 이 자료는 사실관계에 일부 오류도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 조선 민중과 직접 접촉했던 관계자들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사료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증언에 따르면, 조선의 국권을 일본에 넘겨주는데 앞장섰던 친일파 송병준(宋秉畯)은 이토 히로부미와 가쓰라 다로(桂太郞) 일본 총리에게 "넓은 땅과 2천수백만명의 인구를 모두 일본의 손에 넣을 수 있다. 조금도 비싸지 않다"며 국권 양도의 대가로 1억5천만엔을 요구했다.
송병준은 일본의 조선 병탄 후에는 "합병시 일본이 한국측에 지불한 돈이 너무 적다"며 100만엔을 추가로 요구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총독부 재무국 사무관 후지모토 슈조<藤本修三> 재무국 사무관. 경기도 경찰부장 치바료<千葉了>)
또 총독부는 1932년 요요기(代代木) 연병장 관병식(觀兵式)에서 당시 히로히토(裕仁) 천황을 향해 이봉창(李奉昌) 의사가 폭탄을 던진 사건의 배후로 백범 김구(金九)를 지목, 막대한 인원과 비용을 들여 ‘생포’에 나섰으나 실패하자 군경에 생포 대신 ‘사살’을 명령했다.(함경북도 경찰부장 쓰쓰이 다케오<筒井竹雄>)
이밖에 ▲이승만과 안창호 등 상해 임시정부 내 요인 간의 반목과 대립 ▲독립운동을 하거나 문제를 일으킨 이른바 `불령조선인(不逞朝鮮人)’ 단속을 둘러싼 총독부 경무국과 일선 경찰의 불협화음 ▲민족주의자 윤치호의 변절 ▲민족대표 33인의 연행과정과 독립선언서를 살포하는 돌발행동 ▲`김일성’이 북한의 고(故) 김일성 주석과 동일인물인지를 둘러싼 논란과 신출귀몰한 그의 행적 등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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