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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단계의 친일연구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한국 근현대사와 친일파 문제]. |
테마북-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 추천 친일 바로알기
‘친일’을 화두로 대한민국이 뜨겁다. 특히 경남은 항일의 전통이 강하고 또렷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 전통이 우리 지역에 독보적인 친일 연구가들을 잉태했고, 내림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앞서 <친일문학론> <실록친일파> 등 기념비적인 친일 연구 업적을 남긴 임종국(1929~1989·창녕) 선생을 비롯해 우리 문학사 연구 사상 처음으로 카프(KAFF)의 실체를 정리해 일제시대 항일운동의 새 맥락을 짚어낸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1936~· 김해) 또한 우리 지역 출신이다. 친일 혐의를 받고 있는 문화예술인을 선양하려는 자치단체의 무책임한 사업을 가장 치열하게 성토하고 있는 곳도 우리 지역이며, 친일·친독재 청산을 위한 전국 규모의 연대를 가장 먼저 제안한 곳도 우리 지역이다. 지역 학계는 친일(親日)보다는 왜에 빌붙었다는 뜻으로 부왜(附倭)라고 완곡하게 표현하며 이 문제를 엄격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비단 항일 전통 때문만은 아니다. 상처의 문제이기도 하다. 김윤식 교수는 “경남지역은 항일의 전통과 맥을 연결시키고 있는 해방 전후, 부산 경남의 좌파활동이 ‘친일’한 사람들을 포함한 우파 정권에 의해 철저하게 궤멸된 상처가 뿌리깊은 곳이다”고 말했다.
친일은 어떠한 시대적 맥락 속에 잉태됐으며,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지금에 와 어떠한 기준을 갖고 친일을 볼 것인가 하는 ‘친일’에 대한 궁금증이 깊어 졌다면 다음의 책 세 권을 권한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33) 사무국장이 책을 추천하고 내용을 소개했다.
■<친일문학론>(임종국 지음/민족문제연구소/2002) = 일본 패전 당시 열 여섯의 나이로 고향에서 해방을 맞은 소년 임종국은 곧 일본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인 어느 일본인 경찰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지금은 우리가 전쟁에 패해서 돌아가지만 20년 후에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20년 후 1965년, 임종국은 엄청난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한일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창녕에서 태어나 고려대 정외과에 입학하지만 감수성 예민한 청년 임종국은 일찍이 문학에 뜻을 두어 당시 모교에 있던 시인 조지훈을 스승 삼아 문학도의 꿈을 키워나간다. 그의 주요 연구 대상은 시인 이상. 김윤식 교수는 당시 일제시대 자료가 풍부했던 고려대 도서관에서 알게 된 임종국을 ‘지독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일주일이 넘도록 도서관 서고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임종국은 당시의 자료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1차 자료는 거짓이 없다고 했던가. 자신이 평소 흠모하던 문학계 어른들이 저지른 친일의 글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그는 문학도의 꿈을 접고, 어느 누구도 가지 않은 친일 연구자의 외로운 길을 걷게 된다. 그의 첫 작품이 바로 <친일문학론>이다. 철저한 원자료를 바탕으로 한 실증주의적 접근 방식은 다른 사람의 논문 베끼기가 일상화된 우리 학계가 크게 반성할 계기를 마련해 준다.
독재시절 민주화 인사들의 옥중 필독서였던 그의 책은 이제 반민특위를 다시 계승하려는 최근의 친일진상규명법을 이끄는 역사의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1966년 당시 평화출판사에서 세로 쓰기로 낸 것을 2002년 민족문제연구소가 가로쓰기로 읽기 쉽게 다시 펴냈다. (02)969-0226으로 전화해 주문하면 된다. 책 가격은 2만5000원.
■<친일파 99인>(3권/반민족문제연구소/돌베개/1993) = 친일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선생의 뜻을 이어 받아 만들어진 민족문제연구소가 낸 첫 번째 친일 문제 대중서이며 앞으로 발간될 <친일인명사전>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제목 때문에 그해 출판계는 물론 사회에 큰 파장을 던졌다. 국내 대표적인 재벌 창업자까지 포함되면서 그를 빼달라는 해당 기업의 비공식적인 요구는 그 당시 충격을 짐작하게 한다.
을사조약부터 1945년 해방 때까지의 주요 친일파를 분야별로 묶어 이해를 도왔다. 당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용기를 내 집필을 담당해준 여러 명의 집필진은 그대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의 주 구성원들이 되었다. 대표적인 집필자로는 강만길 현 상지대 총장, 한상범 의문사위원회 위원장,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장, 강창일 현 국회의원 등이다.
친일파 99인은 해방 이후 우리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생존 인사까지 언급하는 다소 위험한 모험을 벌이며 이듬해 발간한 <청산하지 못한 역사>(전3권/청년사)의 출판에도 용기를 주었다. 1994년 출판 당시 생존했던 인사로는 현재는 고인이 된 진의종 전 총리를 비롯해 신현확 전 총리, 최규하 전 대통령, 백선엽 전 장군 등이 있었다.
■<한국 근현대사와 친일파 문제>(민족문제연구소/아세아문화사/1999) =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92년부터 99년까지 근 10년 동안 관련 학계 중진급 학자들을 위촉, 각자의 전공 분야에서 친일문제를 검토해 발표한 논문과 토론회 내용을 묶은 책. 현 단계의 친일문제 연구의 수준을 한 눈에 가늠해 볼 수 있는 전문서적으로 좀 더 깊이 있는 친일연구서를 원하는 사람에게 적당하다. 독립운동가 심산 김창숙 선생의 뜻을 기리는 제16회 심산상 수상단체로 민족연구소가 선정되게 된 근거가 바로 이 책 <한국 근현대사와 친일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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