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분열은 과거청산 안된 탓’ … 한국장로교연합회
친일파 광복후 자구책으로 ‘분열’ 선택
지방색·계파주의 등 겹치면서 상황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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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친일로 돌아섰던 한국 교회의 교역자들은 일본을 찾아 황국 신민의 서사를 외며 신사에 참배했다. 신사 참배 후의 기념 사진 모습. |
한국 개신교 장로교회의 교단은 100개가 넘는다. 그걸 두고 아무래도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그 분열을 넘어서고자 한국장로교연합회는 최근 서울교회에서 ‘한국장로교회 분열과 극복’을 주제로 학술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발표회에서 ‘분열’을 두고 언급한 촌평들이다.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불명예요,수치다'(양낙흥 고신대대학원 교수),’분열은 세상에 대한 교회의 도덕적 패배다'(연규홍 한신대 교수),
한국의 장로교가 분열했던 원인은 여러가지다. 그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과거사 청산과 관련된 것이다. 한국 교회는 1945년 광복 후 교회재건운동을 일으켰다. 신사참배에 무릎 꿇었던 교회의 친일파 지도자들의 공개적인 회개와 자숙이 시대의 당위로 요구되었다. 하지만 친일 인사들은 거부했고 이들은 시대의 대세에 맞서 교권을 장악하면서 별도의 경남노회를 조직했다. 1949년이었는데 ‘김길창으로 대표되는 친일적 교권주의자들이 신속한 변신을 통해 자구책을 강구했으나 여의치 않자 교회 분열의 길을 선택했다’는 게 이상규 고신대 교수의 지적이다. 요컨대 교회 분열은 친일적 인사들의 자기 보위를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첫 분열의 틈은 갈수록 벌어져 1952년 고신교단의 분열로까지 이어진다. 장로교총회가 묘하게도,물론 이미 친일파가 득세했던 남한의 정치적 상황과 연관있겠지만,재건파를 배제시키고 친일파 인사를 끌어안는다. 그 와중에 한상동 목사는 후일 고려신학교와 고신교단 운동의 중심적 교회인 부산의 삼일교회를 세우는데 장로교총회는 ‘고려신학교 인사를 완전히 배제시킨다’는 결정을 내린다. 이후 1952년 9월 경남 진주 성남교회에서 총노회(總老會)를 조직해 고신교단은 출발했던 것이다.
김성욱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교수는 ‘한국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의미에서 신사참배 가결과 시행에 대한 회개와 기도를 함께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청산’의 정도가 문제겠지만 교회의 분열을 넘을 수 있는 지렛점으로서 과거사 청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규홍 교수는 ‘오늘의 한국 교회는 영적 지도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한국 장로교회의 분열은 다분히 정치적인데 교권 문제가 핵심이다. 지방색,경제적 이권,주도적 인물 중심적인 계파주의가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교회 분열의 세속성이자,분열이 품은 지극한 아픔일 것이다. 이상규 교수도 분열에 교권 지연 따위가 크게 작용했다고 말한다. 친일 교권주의자들이 중도파의 후원을 얻어 반민특위를 없애듯 고신파를 몰아냈고(1952),중도파 인사들이 이제 교권주의자들을 내몰았고(1953,기장의 분열),다시 중도파는 통합과 합동으로 분열했던(1959) 과정이 세속적이었다는 것이다. 분열의 세속적인 속내보다 더 무거운 지점이 있다. ‘교회 통합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만 오늘의 한국 교회에서 현실성이 희박하다.’ 최학림기자 theos@busanilbo.com
http://www.pusanilbo.com/news2000/html/2004/0925/060020040925.1016094201.html
입력시간: 2004. 09.25. 0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