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끼고 적진 돌진하는 황군 운보 김기창(1914~2001)의 친일 행적을 보여주는 1944년 ‘결전 미술전람회’ 출품작(그림)과 이 전람회 참가자와 출품작을 보여주는 ‘결전 미술전람회 목록’이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해 처음 발굴됐다. 결전 미술전은 일제 군국주의를 찬양하고 ‘황국신민’의 영광을 고취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의 후원을 받아 경성일보사가 주최한 전람회로, 1944년 3월부터 10월24일까지 7개월 동안 서울에서 열렸다. 이 전람회에서 ‘조선군 보도부장상’을 받은 운보의 그림 ‘적진육박’은 남양 군도에서 소총에 대검을 끼우고 적진을 향해 육박전을 치르러 돌진하는 ‘황군’의 모습이 실감나게 표현돼 있다. 이 그림은 어린이 잡지 <소국민> 1944년 5월치에 사진으로 실려 있지만, 원화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운보의 친일 작품은 1943년 8월7일치 <매일신보>에 실린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의 삽화와 식산은행 사보 <회심>에 실린 ‘총후병사’ 등이 있었지만, 미술사학계에서는 이 정도 작품을 가지고 운보를 친일 화가로 매도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최열 가나아트 대표는 “착검한 채 적에게 돌격하는 살기를 담은 작품이 발견됨에 따라 그동안 이어진 운보의 친일행적 논란이 마무리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관순 열사 영정 제작 논란 또 ‘결전 미술전람회 목록’에서는 친일 논란을 빚고 있는 월전 장우성(93)과 조병덕, 한홍택, 배운성, 박영선, 김영선, 윤효중, 심형구, 김인승 등의 이름이 확인됐다. 특히 유관순 열사 영정 제작 여부를 놓고 충남 지역 시민단체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월전은 이 전시회에 ‘항전(?)’(인쇄 상태가 나빠 글자 판독 어려움)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출품한 것으로 확인돼 “친일 화가가 애국지사의 영정을 그린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게 됐다.
친일 논란을 빚고 있는 미술인이 애국 지사의 영정을 그린 것은 유관순 만의 비극이 아니다. 1981년 이전에 그려진 문화관광부가 공식 지정한 표준영정 23개(총 76개) 가운데 친일 논란을 빚고 있는 이당 김은호, 운보 김기창, 월전 장우성 등 3명이 그린 그림은 14개였다. 이 가운데 월전은 이순신과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 등 7개 작품을 그렸고, 운보는 1만원짜리 화폐에 실린 세종대왕, 을지문덕, 태종무열왕 등 6명, 이당은 율곡 이이 1명을 그렸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은 “해방 이후 친일 미술인들과의 단절에 실패한 탓에 일본 제국주의를 미화한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 애국 지사의 영정을 그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반복돼 왔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1일부터 오는 10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일제시대 친일 미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친일 미술작품 전시전’에서 이들 작품과 자료를 전시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일본인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이완용의 서예작품과, 일제의 순사 임명장, 애국기 헌금에 대한 감사장, 징용 한국인이 집에 보내온 편지 등 일제 시대 우리 민족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도 전시된다.(한겨레신문 2004.10.02)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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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 김기창 화폭 속 친일
By 민족문제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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