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교 토론동아리에서 친일진상규명법에 관한 논란을 주제로 정하고 수많은 자료 조사 후 토론을 벌였다. 그때 나온 학생들의 의견을 밝히면서 논란의 주가 되는 정치인들과 관계자들의 구체적인 의견을 듣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우선 과거사 청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근거가 불충분하다기보다 의심쩍었다.
첫째, 친일규명법 개정이 왜 ‘야당 죽이기’인가? 한나라당은 최근 과거사 청산을 ‘야당 죽이기’ ‘여권의 재집권전략’이라며 거부 반응을 보였다. 진실규명은 역사적 과제라는 열린우리당의 의견이 어째서 야당 파괴인지 객관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모두 친일파의 후예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구체적 근거가 필요하다. 당 대표가 되는 등 기대되는 모습을 보였던 박근혜 대표가 친일규명이나 김재규 논란 등 특히 그의 부친과 관계되는 논란에 대해서는 정치인으로서의 객관성, 중립성을 상실하고 비논리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둘째, 경제난과 과거사 진상규명의 문제는 그 무게를 잴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반대의견 중 하나가 현재의 경제난인데, 어째서 과거사 청산이 우리 경제를 더 어렵게 한다는 것인가? 한 국가의 업무는 다양하다. 경제 하나에만 매달려 온 국가기관과 정치적 힘을 한 곳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말일까?
어느 한나라당 의원은 “온 국민이 힘들어 죽겠다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쓸데없는 문제만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표현상의 문제를 둘째 치고라도 밥만 배불리 먹고 살면 된다는 건가? 그럼 배불리 먹여줄테니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던 박정희 독재 시대로 가도 좋다는 말로 들어도 좋으냐고 물어보고 싶다. 경제 문제는 다른 모든 문제를 뒤로하고 달려든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지 않냐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얼마 전 친일 군상의 모습을 증거하는 새 증언들이 공개되었다. 우리의 과거사 특히 식민지 시대의 역사는 가장 중요하고 깊게 연구해야 할 과거 문제인데 연구 진행이 가장 더디다. 시기상 한나라당이 곤혹스러워하는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불거진 것뿐이지, 친일 과거사 규명 문제는 정치적 논란과는 상관없이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역사적 과제다. 역사에 대한 일차적 사실 규명부터 시작하여 하나하나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일제 강점하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론을 펼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다면 수많은 애국지사들은 무엇인가? 당시의 친일 행위는 나라를 팔아먹은 행위인 것이다.
정치인들은 학생들이 그들의 행동에 대해 얼마나 주목하고 비판하며 의견을 나누는지 모를지도 모른다. 정치인 전체의 사고력과 언어구사 수준을 의심하게 만드는 발언을 한다거나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공적 발언을 해서 우리로 하여금 실망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땅의 수많은 학생들은 국사와 근현대사, 정치, 사회, 문화를 배운다. 또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을 아끼고 이 나라의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정치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목하고 있음을 알린다.(전주여자고등학교 2학년)
“한겨레신문”(2004.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