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청산, 그 성공의 조건>
■ 방송일자 : 2004년 10월 23일 저녁8시-9시 KBS 1TV
■ 선임프로듀서 : 황용호
■ 연출 : 황진성
<기획의도>
여당인 열린 우리당이 과거사 진상규명에 관한 입법안을 국회에 상정하는 등 과거사 진상규명이 본격화 되고 있다. 여야는 일단 과거사에 대한 청산 또는 정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청산되어야 할 과거사의 범위나 내용, 그리고 이를 주도할 과거사 기구의 성격과 권한에 대해서는 서로 견해를 달리 하고 있다.
국민 통합과 사회 발전을 위해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청산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아픈 상처를 들추어내 국론분열을 심화시킬 뿐이라는 우려가 팽팽히 맞서는 과거사 청산. 현재 한국사회에 남은 과거사의 아픔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역사적 시도를 해왔는지, 남아공과 아르헨티나, 프랑스 등 이미 과거청산의 경험을 가진 나라에 대한 현지 취재를 통해 국민이 공감할 수 있고 지정한 화해와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과거사 청산의 방식은 어떤 것인지 모색한다.
<주요내용>
1. 반민족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 최초의 과거청산 시도.
반민특위 조사관으로 활동한 유일한 생존자 정철용 옹 인터뷰
– “빨리 청산이 끝났다면 지금에 와서 우리가 이렇게 싸움도 하지 않는다”
1948년 9월 대한민국 국회가 반민족행위처벌법까지 제정하며 구성된 반민족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일명 반민특위는 광복 3년만에 친일의 잔재를 청산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과거 청산 시도를 하게 된다. 친일문인 이광수를 체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반민특위는 그러나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롯한 반대파의 압력에 결국 2년도 채우지 못하고 해산되었으며 기소했던 친일파들 역시 제대로 형을 살지도 않고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등 그 발족이 의욕적이었던 것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실패로 마감된다.
제작진은 당시 반민특위 조사관으로 활동하며 직접 이광수를 체포하기도 한 정철용 옹을 만나 당시 반민특위의 활동과 좌절에 대해 들어봤다.
2. 우리가 해온 과거사 청산의 현주소. 쓰러진 위령비 – 거창양민학살
거창사건희생자 유족회장 조성제
– “쓰러진 위령비. 그것이 바로 역사다. 이것을 쓰러뜨린 사람도 정부고 다시 세워야 할 사람도 정부다. 진정한 명예 회복이 된다면 이것도 정부가 다시 세워줄 것이다.”
한국 전쟁 중 무고한 양민 700여명이 학살당했던 거창에는 아직도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비가 쓰러진 그대로 남아있다. 거창 양민학살은 당시 관련 가해자들이 실형을 받고 장면 정부 시절 위령비가 세워지는 등 어느 정도 진상규명이 되는 듯 했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 유족회 간부들이 반국가 단체 혐의로 구속되고 위령비의 글자는 정으로 지워 땅 속에 파묻히는 수모를 당했다. 그 후 27년 만에 위령비는 땅 속에서 파내었지만 아직도 유족회는 위령비를 다시 세우고 있지 않다. 쓰러져 있는 거창의 위령비는 진정한 진상 규명이 아닌 정권에 따라 편의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던 우리의 잘못된 과거사 청산의 모습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3. 진상 규명은 조사기구의 권한에 비례한다 – 아르헨티나
라울 알폰신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 인터뷰
아르헨티나는 76년 집권한 군사정권의 좌익게릴라 소탕이라는 명분아래 8년동안 무자비한 고문, 납치, 사살, 처형 등을 감행했다. ‘더러운 전쟁’ 시기라 불리는 이 기간동안 강제실종 3만명, 강제입양 500명 등의 피해자가 생겨났다.
“더러운 전쟁” 시기의 끔찍한 과거들은 CONADEP이라는 과거사 청산 기구를 통해 다시 드러나게 되었다. 제작진은 CONADEP(실종자 진상조사 국가위원회)을 설치했던 라울 알폰신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직접 만나 CONADEP에 대해 들어보았다.
4. 반인륜 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 프랑스
1997년, 87세의 나이에 재판정에 선 모리스 파퐁. 그는 2차세계 대전 당시 유태인 집단 추방을 주도했다기 때문에 반세기가 지난 후에 그 죄값을 다시금 물게 되었다. 모리스 파퐁의 재판은 그 과정에서 프랑스 국민들이 다시 들추기 싫은 불행한 과거를 상기시켜야만 했기 때문에 논란이 되었지만 반인륜 범죄에 대해서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든 다시 짚고 넘어가야한다는 프랑스의 과거 청산 정신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여전히 1944년 파리해방을 기념하는 거대한 기념식이 열리고 거리와 광장에 파리를 해방시킨 레지스탕스의 이름을 붙이는 명명식을 거행하는 현지 모습 취재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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