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 공원에 있는 천막과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교수들이 바로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겁니다.”
▲ 김민수 서울대 전 교수
ⓒ2004 이민우
8일 광화문 열린공원. 사립학교법 개정을 위한 ‘대학주체총력 투쟁 농성장’에 들른 김민수 전 서울대 미대 교수는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대 재임용 탈락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6년 넘는 세월 동안 투쟁 중인 김 교수는 이 날 ‘부당해직 교수 원직복직 촉구 기자회견’ 참가차 광화문에 왔다.
“대학이 자기 기능을 제대로 하는지 답답한 생각이 듭니다. 말로는 세계적 대학으로 만든다면서 과연 서울대에 학문의 기준이 있는가 의심스럽고요.”
재임용 탈락은 지난 1996년 서울대 개교 50돌 기념 학술회의 때 미대 원로 교수 3인의 친일 행적을 언급한 것이 발단이었다. 당시 미대 측에선 친일 행적 부분을 삭제할 걸 요구했고, 김 교수는 거부했다. 그러자 학교측은 1998년 서울대 역사상 처음으로 ‘연구실적 미비’란 명목으로 김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사실상 해직이었다.
“연구실적 부족이라며 탈락시킨 건 이미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말도 안 되는 억지였습니다. 제 논문들은 이미 국내는 물론 국제 학술지에서도 평가를 받았거든요.”
실제 그의 논문 중 <21세기 디자인 문화탐사>(솔 출판사·1997)는 월간 <디자인>에서 올해의 저술상을 받았다. 더구나 ‘연구실적 미비’로 판정된 논문 <시각예술의 측면에서 본 이상 시의 혁명성>은 국제 학술저널인 <비저블 랭귀지 (Visible Language)>에 우수 논문으로 게재되기도 했다.
결국 재임용 탈락은 “원로 교수의 친일행적을 문제 삼고 학과 커리큘럼에 대한 반성과 대안을 얘기함으로써 학계의 패거리 문화에 동조하지 않은 ‘괘씸죄’ 때문”임을 보여준다.
“학교에서 자정능력이나 의지가 없다고 봤습니다. 진리의 상아탑이라고요? 전 서울대에서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문제 해결 노력을 찾아볼 수가 없어 법에 호소해 소송을 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4월 22일 대법원은 교수재임용에 대한 공정성을 요구했던 김 교수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렇지만 서울대측은 아직도 김 교수의 복직 문제에 대해 이렇다할 안을 내놓고 있지 않다.
“다른 단과대학 일에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게 관행이기에 총장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이거든요. 하지만 총장은 단대를 넘어 대학 행정의 총책임자 아닙니까. 한마디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인 서울대의 오만함과 직무유기 때문이죠.”
재임용 탈락에 항의해 김 교수는 아예 지난 해 9월 29일부터 서울대 대학본부 앞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벌써 1년이 넘었다.
“지금이라도 서울대가 스스로 문제 해결에 나서길 바랍니다. 그렇기에 천막농성을 하는 것이고요.”
김 교수가 농성과 투쟁만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더 왕성한 연구활동과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6년 간 저서 2권과 편저 6권을 비롯해 논문 20여 편을 발표했고, 12학기째 무학점 강의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 김 교수는 교육부의 행태를 꼬집는 의미에서 이왕이면 교육부가 있는 정부중앙청사가 나오도록 찍자고 했다.
ⓒ2004 이민우
김 교수는 농성장 앞에서보다는 이왕이면 정부중앙청사가 나오도록 사진을 찍자며 교육부의 행태를 이렇게 꼬집었다.
“서울대의 잘못을 관리 감독해야 할 교육부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거든요. 대학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당사자만 엄청난 피해를 입을 뿐이지, 교육부 관료들은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대학이 왜 썩어 있는지, 교육이 왜 부실한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