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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누더기 법안”을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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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news)    
친일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을 놓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지켜본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이 긴급기고문을 보내왔다. 김 실장은 기고문에서 여야간의 협상이 특별법 제정의 정신을 훼손하고 원칙을 흔들고 있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김 실장의 기고 전문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 1935년 4월 조선총독부 회의실에서 개최된 중추원 회의 광경. 조선총독의 자문기관으로 설립된 중추원은 총독부가 친일귀족과 지방유지들을 무마, 회유할 목적으로 만든 어용기구로 일제 총독정치의 거수기 노릇을 하였다. 여야 협상안에 따르면, 이들에 대한 ‘조사’만 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선정(결정)은 무산될 전망이다.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누더기법안으로 돌아갈 것인가.

일제강점하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개정안(이하 개정안) 심의를 둘러싸고 지금 행자위 법안소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형국을 두고 떠오른 첫 인상이다.

과거청산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기 위해 한나라당이 보인 온갖 억지와 왜곡 솜씨는 익히 보아오던 터라 아예 기대조차 갖지 않았지만, 주판알만 튕기다가 결국은 본전도 찾지 못하는 열린우리당의 정치실력에 과거청산 관련 피해자와 시민단체의 실망은 이제 한계점에 도달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협상을 하고 싶어도 말이 통해야 협상이 되지 않느냐는 열린우리당 관계자의 항변이 다소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협상이 중요하다 하나 특별법 제정의 정신을 훼손하고 원칙을 흔드는 협상안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지금 행자위에서 심의하고 있는 개정안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심각한 우려와 불안감마저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자칫 잘못하면 정치논리에 휘둘려 개정안 역시 16대 국회를 통과한 누더기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수준의 법이 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특별법 제정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여야 협상

누차 지적했지만 16대 국회를 통과한 특별법은 특정집단과 특정인을 빼기 위해 무원칙한 기준을 적용했고, 위원 자격에서 연좌제 적용과 위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독소조항을 갖고 있으며, 친일 문제에 대해 시민사회의 자유로운 발언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매우 위험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특별법이 통과되자마자 이런 잘못을 개선하기 위해 학계와 법조계, 그리고 시민단체가 모여 합리적이면서도 엄격한 진상규명이 가능할 수 있는 개정안을 준비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개정안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 고의와 무지, 그리고 막무가내로 대응하는 한나라당의 ‘전술’에 열린우리당이 ‘협의’라는 무늬만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고자 개정안의 본질을 훼손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대한 오류란 무엇인가.

첫째, 목적에서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선정’을 삭제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이 문구를 의도적으로 뺀 것은 단순한 문장 수정이 아니라 개정안 전체의 골격을 뒤흔들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개정안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방향은 이렇다. ‘광범위한 조사→철저한 심사→엄격한 판정’을 거쳐 대다수의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골라내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향간에 떠도는 식으로 ‘누구누구 아버지가 순사여서, 면서기여서, 심지어 금융조합 서기여서 친일파다’는 저차원적이고 퇴행적이기까지 한 사회적 논란에 마침표를 찍고, 정말 역사적으로 책임을 물어야할 사람들에게 엄격하게 책임을 물음으로써 역사의 교훈과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아니 지극히 평범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이 문구를 삭제하려는 것은 최대한 개정안의 성격을 약화시킴으로써 친일반민족행위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려는 것이다. 도도한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조사‘까지’는 어찌어찌 하더라도 두루뭉수리하게 보고서 몇 권으로 이런 이런 유형의 친일행위가 있었다는 식으로 끝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한나라당의 ‘막무가내 전략’에 밀리는 열린우리당

둘째, 심사위원회를 폐지하는 데 합의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는 개정안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 선의로 해석하고 싶다. 그러나 매우 중대한 실수를 하고 있다. 우선 앞서도 말했듯이 진상규명은 ‘광범위한 조사→철저한 심사→엄격한 판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것을 담당하는 기구는 각각 ‘사무처→심사위원회→위원회’가 될 것이다.

왜 이렇게 나누었냐 하면, 1차로 부일협력행위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를 거친 다음, 심사위원회에서 객관적으로 친일반민족행위의 혐의가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골라 2차 조사에 들어가고, 최종적으로 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인지 아닌지를 결정(선정)할 수 있도록 체계를 짠 것이다. 만일 심사위원회(관련 전문가로 구성)가 삭제된다면 심사위원회의 일을 사무처가 하든지 아니면 위원회가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위원회가 이것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9인의 위원회는 3인을 제외한 6인은 모두 비상임으로 이 일을 상시적으로 처리할 수 없으며, 또한 9인 모두가 반드시 학계 전문가로 구성될 것도 아니다. 사회적 상식에 기초하여 역사적 판단과 정치적 판단을 객관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인사들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심사위원회에서 충분히 걸러져 올라오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심사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결정(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위원회가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리고 심사위원회와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현행법 18조 ‘조사대상자의 선정 및 이의신청’ 조항문제이다. 만일 소위에서 합의한 대로 심사위원회를 삭제하고 현행법 18조를 유지한다면 아마 위원회는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현행법대로라면 조사대상자로 선정된 순간, 위원회는 조사대상자의 유족에게 연락할 의무가 있고, 유족의 이의신청에 대해 위원회는 가부를 답해야 될 것이다.

그렇다면 9인의 위원이 조사대상자를 선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의신청에 대한 가부까지 결정해야 될 것인데, 위원회가 제대로 조사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조사대상자를 선정하는 것 자체부터 문제가 될 것이다. 조사를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조사대상자를 선정해야 되고, 충분한 자료도 없는 상태에서 이의신청부터 처리해야 된다면 그 결과는 이미 뻔한 것 아닌가.

넣을 것은 빼고 뺄 것은 넣는 사태가 벌어진 셈

그래서 개정안에서는 1차 기초조사가 끝난 뒤, 심사위원회에서 충분한 자료와 증거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골라 ‘친일반민족혐의’가 있다고 잠정하고 2차 조사에 들어가는 한편, 이때 대상자의 유족에게 통고하여 이의신청을 하도록 하게 한 것이다. 또한 현행법 18조대로라면 조사대상자의 조사 시점 자체를 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결국 넣을 것은 빼고 뺄 것은 넣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셋째, 한나라당이 언제부터 그렇게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조사대상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이름아래 16대 국회에서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독소조항을 만들어 놓은 바 있다.

현행법 제23조(조사대상자의 보호)와 제29조(벌칙) 2호(사자 등 명예훼손죄)가 그것이다. 요약하자면 누구든지 조사대상자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밝혀져 보고되기 전에 행위의 내용을 공개하거나 친일파라 공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위원회가 조사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이미 많은 공간된 자료를 통해서 친일행위가 밝혀질 수 있고, 또한 학계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위원회가 무슨 특권으로 그들의 학문의 자유,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를 막는다는 것이다. 이 법을 확대해석하게 되면 시민사회에서 친일문제가 논의되는 것을 봉쇄하려는 위험성을 너무나 많이 갖고 있다.

그렇기에 현행법의 이 조항은 반드시 삭제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걸 합의했다고 한다는데, 그게 정말 사실인지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조사대상자의 인권보호나 명예훼손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미 마련해 놓은 일반 법의 수준에서도 충분히 다룰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합의할 수 있는가. 내가 듣고 확인한 이야기가 잘못 전달되었거나 잘못 이해되었길 간절히 빈다.

친일파 문제를 비롯하여 반세기만에 제기된 과거청산 과제를 두고 열린우리당이 어설픈 정치논리로 맞설게 아니라 대의와 명분과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당당하게 나서주길 바란다. 반대파를 설득해서 같이 가는 것이 미덕이긴 하나 그 길이 원칙을 훼손하는 길이 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정운현칼럼] 친일 ‘청산’인가, 친일 ‘면죄’인가

2004/11/25 오전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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