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자치부 산하 국가기록원이 일제로부터 훈장을 받은 조선인 관료와 경찰·교사 등의 이름이 들어 있는‘서훈’공문서를 지난 9월 일본 도쿄의 국립공문서관에서 국내로 가져와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10일자 일간지에 일제히 보도되었다.
이 문서는 앞으로 진행될 친일진상규명 활동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과거사 청산문제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언론 지면에 큰 비중으로 다뤄져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본다. 그런데 <경향>과 <한겨레>만이 1면 톱으로 다루었을 뿐 다른 신문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으로 보도하고 있어 각 언론사의 인식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자칭 ‘민족지’로 자화자찬하던 <조선>은 아예 이 기사를 다루지 않고 있으니 친일문제만 나오면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고 청산 반대론으로 일관하는 그들의 태도에 측은한 느낌까지 들 지경이다.
한편 10일자 <조선> <동아>는 미리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8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을 끝내고 ‘대국민 보고대회’를 한 한상범 위원장(전 민족문제연구소장)의 발언을 문제삼아 사설을 통해 일제히 비난을 퍼부었으며 특히 <동아>는 9일자 ‘[친일규명법 문제] 친일조사위원 ‘코드 인선’…정치재판 우려’라는 기사에서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이 제출한 법 개정안을 실제로 만드는 등 법 개정 초기부터 깊숙이 개입해 온 시민단체 인사들이 위원회는 물론 사무처에 상당수 진입할 경우 조사 과정에 이들의 입김이 적지 않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법 개정을 주도한 민족문제연구소를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현재 국회에 상정된 과거사 관련 특별법들은 일제시대 친일파를 가려냄은 물론 역대 독재정권에서 부역하면서 인권을 탄압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부족하나마 그 베일의 일부라도 걷어내는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가운데 자칭 민족지인 두 신문이야말로 과거사 규명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야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민족지’를 자임하는 수구 언론들은 한결같이 과거를 덮기에 급급하고 있다. 왜 그들이 이렇게 모순된 행동을 하는지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사 관련특별위원회들을 강력한 조사 권한을 가진 기구로 출범시켜야 한다고 본다.
[조선] 10일자 사설 : 과거사 정리에 이런 사람 끼어 들어선 안된다
한상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은 8일 “군사정권에 편승해서 단물을 빨아먹었던 부류들은 (과거사 개혁 입법을) 끝까지 반대하겠지만”이라고 말했다. 의문사위 활동을 끝내고 ‘대(對)국민 보고대회’를 하는 자리에서였다. 그는 의문사위가 간첩·빨치산 출신들을 민주화운동 공헌자로 인정한 데 대한 비판 여론을 “보수 우익의 마녀 사냥”이라고 부르면서 “민족 반역의 사대주의자는 아무리 발광해도 대세를 거꾸로 돌릴 수 없다”고도 했다.
의문사위 위원장은 장관급이다. 전직이 대학 교수다. 이런 현직과 전직 경력을 지닌 사람의 말이란 게 이 지경이다. 한 위원장은 지난 9월에는 “친일파들이 미군정 때부터 실세를 장악해 비판세력을 용공 빨갱이로 몰아 죽였다. 한국전쟁 후에는 피란민 고아 주라고 온 원조물자를 다 말아 잡수시고 벼락부자가 됐다”는 말도 했다. 말의 내용만이 아니라 말투까지 상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수준의 의식과 인식을 가진 사람이니 간첩을 민주화 인사로 모시겠다고 할 만도 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독(毒) 묻은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을 가진 사람이 현 집권세력 내부에 한 위원장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기 편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쪽을 향해 온갖 야비한 폭언을 퍼부으며 아예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일을 현 정권 들어 국민들은 번번이 보아왔다. 여당 원내대표가 “국가보안법을 지키자는 사람은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고 할 정도다.
현 정권은 의문사위의 과거사 정리 작업을 과거사기본법을 통해 더욱 확대하려 하고 있다. 과거사 정리에는 역사에 대한 균형 감각이 필수다. 한 위원장 같은 사람들이 그 작업을 주도한다면 역사 정리 작업은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작업을 특정 정파, 특정 이념의 행동대원 같은 사람에게 맡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번 일에 끼어 들어서는 지금의 과거사 정리 작업은 얼마 후 신판(新版) 과거사 청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412/200412090535.html
[동아] 10일자 사설 : 의문사委 위원장 발언 문제 있다
한상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이 위원회 결정에 대한 비판을 ‘보수우익의 마녀사냥’이라고 규정했다고 한다. 얼마 전 간첩 빨치산 출신 비전향장기수 3명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한 의문사위의 결정에 대한 언론과 정치권의 비판을 겨냥한 것이다.
그는 “민족 반역의 사대주의자는 아무리 발광해도 대세를 거꾸로 돌릴 수 없다” “군사정권에 편승해 단물을 빨아먹은 사람들이 개혁을 저지하고 있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대통령 직속기구 책임자의 이분법적 사회 인식과 상대에 대한 적의(敵意)가 놀라울 따름이다.
어떤 명분을 둘러대도 간첩이나 빨치산 출신은 대한민국의 이념과 체제를 정면으로 부인했던 사람들이다. 아무리 결과적이라고 한들 이들의 투쟁이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믿을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같은 국가기구인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는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부인하고 국가 안전을 위협한 사람들을 반(反)민주악법의 폐지를 주장했다고 해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결정했다. 이런 마당에 의문사위의 잘못을 비판했다고 ‘마녀사냥’이라고 해서야 되겠는가.
의문사위는 그동안에도 간첩 혐의 복역자를 조사관으로 채용해 군 장성을 조사케 하거나 직원들이 대통령 탄핵반대 성명을 내는 등 사회 정서나 법적인 면에서 부적절한 행태를 보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신들은 옳은 데 외부의 반개혁 세력이 시비를 걸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독선(獨善)이 아닐 수 없다.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원혼(寃魂)을 달래기 위해서도 의문사위의 한시적인 활동은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무리수가 없이 활동해야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자면 위원장의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http://www.donga.com/fbin/output?f=i_s&n=200412090313&main=1
[동아] 9일자 기사 : 친일규명법 문제, 친일조사위원 ‘코드 인선’…정치재판 우려
행자위 與野공방
9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이용희 위원장(가운데)이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변경동의안을 상정하려 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장석으로 뛰쳐나가 저지하고 있다.-김경제 기자
8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를 통과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조사 특별법’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되면 일제 35년간의 친일행위에 대한 조사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이는 광복 이후 60년 만에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이은 두 번째 국가기구의 친일행위 조사인 셈이다.
열린우리당의 계획대로 이 법안이 연말 임시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법은 즉시 효력을 발생하게 된다. 친일진상규명위원회는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의 위원 추천 절차 등을 거쳐 내년 초쯤 공식 발족할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는 구성 시점부터 4년(6개월 연장 가능) 동안 친일행위 조사를 벌이게 된다.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여야가 팽팽히 맞서 진통을 겪은 것처럼, 위원회 구성 과정과 친일행위 조사 또한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100년 전의 ‘과거’ 문제로 우리 사회가 분열과 갈등에 휩싸일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위원회 구성=새해 초부터 위원 몫 배분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대립할 공산이 크다. 법안은 위원 11명을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4명, 4명, 3명 추천하도록 하고 있으나 국회 몫 4명을 어떻게 배분할지는 정해진 바 없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과 2명씩 나눌 것으로 믿고 있으나, 민주노동당 등 비교섭단체가 1명의 추천권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고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도 동조할 개연성이 있다.
지난달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추천 때처럼 상대 당이 추천한 인물에 대한 거부 가능성도 적지 않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한나라당은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위원회를 장악해 진상조사를 일방적으로 몰고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줄곧 제기해 왔다.
열린우리당 김희선(金希宣) 의원이 제출한 법 개정안을 실제로 만드는 등 법 개정 초기부터 깊숙이 개입해 온 시민단체 인사들이 위원회는 물론 사무처에 상당수 진입할 경우 조사 과정에 이들의 입김이 적지 않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위원회 구성 초기부터 한나라당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진상조사=조사 대상자가 현행법은 물론 ‘김희선 안’보다 대폭 늘어남으로써 전국적 차원의 조사가 대대적으로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제 35년간 경찰이나 헌병을 지낸 사람들은 계급에 관계없이 모두 조사 대상이다. 군인은 소위 이상, 동양척식회사 및 식산은행은 지방간부까지 조사 선상에 오른다. 당시 입법 사법 행정부 관리와 상당수 사회 문화계 인사까지 포함하면 조사 대상이 수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조사 과정에서 ‘동네’ 또는 ‘집안’ 차원의 구원(舊怨)이 투서나 진정의 형태로 난무하게 될 부작용도 예상된다. 길게는 100년 전까지 거슬러 가야 하는 특정 사건에 대한 물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 대상이 지방 단위까지 확대된 데다 참고인 동행명령과 실지조사까지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최장 4년 6개월인 조사 기간 내내 파열음이 계속 터져 나올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까지 “국가 분열에 이어 동네 분열까지 몰고 올 것”이라고 우려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http://www.donga.com/fbin/output?search=1&n=200412080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