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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아버지 ”홍암 나철”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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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래혁(rhchang) 기자   
지난 11월 10일 문화관광부는 ‘2005년도 이 달의 문화인물’을 확정, 발표하였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우리 나라의 문화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고 국민들의 귀감이 될 수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동안 덜 알려지거나 잊혀진 인물들을 선정하였다고 한다.














▲ (좌) 생전모습 (우)천안 평화공원내 동상
ⓒ2004 장래혁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2005년 9월의 인물로 선정된 홍암 나철. 문화관광부는 인물의 약력에서 “민족 고유의 정신인 국학사상을 계승 대종교를 중광, 문화·독립운동으로 일제하 만주독립운동가들의 정신적 지주”라 평했다.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인물에게 붙여진 말 치고는 그야말로 찬란한 수식어이다.

홍암 나철은 2004년 들어 방송매체에도 등장하며 관심을 끌었다. 지난 99년부터 한국현대사에 가려져 있는 진실을 파헤치며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조명한 바 있는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3·1절 특집으로 ‘독립투쟁의 대부, 홍암 나철'(연출 박정근)을 방영했다. 지금껏 제대로 조명된 적이 없던 대종교에 대해 방송 사상 최초의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연출을 담당한 박정근 PD는 “항일독립운동 측면에서 대종교의 역할이 컸음에도 학계에서도 제대로 조명된 적이 없다”면서 “일각에서는 종교적인 파문을 우려하기도 했지만, 항일독립운동에 초점을 맞춘 만큼 별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자유언론실천선언 30주년을 맞아 열린 제16회 안종필 자유언론상 시상식에서 PD연합회가 시상하는 ‘제50회 이달의 PD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학계에서도 홍암 나철의 독립운동사 재조명

그런가 하면 학계에서도 홍암 나철의 재조명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반세기 동안 대종교의 창시자로만 알려졌을 뿐, 만주 무장독립투쟁의 뿌리 역할을 했던 독립활동은 가리워졌는데, 올해 ‘독립운동의 아버지’로서 홍암 나철에 대한 재조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홍암 나철 선생의 독립운동을 재조명하는 학술회의가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대표 박성수) 주최로 개최됐었다. 당시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박성수 공동대표는 “홍암 선생은 우리에게 민족 정신을 일깨워 세계 역사상 유례 없는 반세기 한국 독립운동사를 가능하게 한 정신적 지도자였다”면서 “선생이 돌아가신 지 86년만에야 비로소 선생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흠모하는 학술회의를 갖게 되어 송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나철 선생 ‘독립 운동의 아버지’ 추대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희선 의원은 당시 선언문을 통해 “홍암 나철 선생은 독립운동의 효시이며 독립운동의 아버지”라면서 “그동안 역사에 가려져 나철 선생의 깊고 뜨거운 민족혼이 드러나지 못했음을 자성하며 이와 같이 민족정기를 세우는 작업은 특히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위한 정신교육의 바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나철의 독립운동사 다룬 서적과 장편 역사소설도 발간














▲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2004 북캠프
올해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이란 제목의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국사편찬위 편사실장과 성균관대 교수, 정신문화연구원 교수를 역임한 역사학자 박성수 총장(72, 국제평화대학원대학교).

평생 독립운동사를 연구해온 노학자가 많은 독립운동가 중 한국 독립운동사 첫머리에 올려야 할 인물로 나철을 꼽은 점 자체가 당시 무척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근현대 100년 동안 우리 역사에 끼친 영향력이 크고 가장 기억해야 할 인물이라면 저는 나철을 첫 번째로 꼽겠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나철의 역사적 재평가를 주장했다.

나철이란 인물이 반세기 동안 잊혀졌던 이유는 MBC의 방송 프로그램이나 책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당시 대종교가 단군을 구심점으로 민족정신을 고양시키는 종교라 일제가 종교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 뿐만 아니라 대종교가 점차 독립운동으로 연결되자 철저하게 대종교를 탄압하고 또한 나철의 역사적 의미를 축소시킨 것도 그 이유라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식민사관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이 나철에 대한 평가를 미루고, 외면했으며 대종교의 창시자란 타이틀로 인해 나철의 독립운동사는 그간 묻혀져왔다.














▲ 장편역사소설 <신시의 꿈>
ⓒ2004 한문화
대하소설 <아리랑>에서 나철의 활약상을 일부 드러냈던 작가 조정래는 올해 출간된 홍암 나철의 생애를 다룬 장편 역사소설인 <신시의 꿈> 추천사에서, “일제 식민지 시대에 민족적 인물들이 많이 탄생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걸출한 한 사람, 그가 바로 나철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도 나철을 홀대해 왔다. 그러나 이제 작가 이병천의 능숙하고도 신들린 듯한 장인의 솜씨를 타고 나철은 현란하게 우리 앞에 부활한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나라가 패맹한 원인이 민족 정신을 잃은 것에 있다고 보고, 단군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의 기틀과 구심을 일으켰던 홍암 나철. 오랜 시간을 헤매이다 찾은 ‘단군’은 그에게 있어 민족정신회복의 구심점이자 독립투쟁을 위한 빛이었던 셈이다. 그 의미는 소설에서 나철이 단군교(이후 대종교로 개칭)를 중광하며 올린 제천의례의 글에서 잘 드러난다.

“…고려 대몽항쟁 이후 꺼졌던 향화를 다시 지피며 널리 성신의 이름을 부르는 단군교를 중광하오니 도탄에 빠진 배달국과 배달겨레의 일을 굽어 살피옵소서. 중광이 단순히 교단에 그치지 아니하여 이 나라 만백성이 하늘의 자손임을 자각케 하고 이 나라 방방곡곡에 홍익인간의 신시를 다시 열 수 있도록 붙들고 도와주소서”(<신시의 꿈> 3권, 42쪽)


일제치하 민족의 잃어버린 정신을 깨우려했던 홍암 나철의 눈물어린 이 말이 어째서 한세기 가까이 흐른 지금의 현실에서도 가슴을 울리는 걸까.









  2004/12/15 오후 7:45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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