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미디어오늘 이선민 기자 jasmin@mediatoday.co.kr | ||||||||||||||||||||||||||||||||||||||||||||||||
| ||||||||||||||||||||||||||||||||||||||||||||||||
최근 보수신문들이 광화문 현판 교체를 두고 정치적 음모론을 부추기고 있다. 이들 신문은 한일협정문서 공개,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상영, 광화문 현판 교체를 ‘박정희 때리기’로 규정하고 정치적 의도가 있다며 음모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광화문 현판교체를 둘러싼 동아일보의 음모 특히 동아일보는 이런 음모론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동아일보는 현판 교체에 대해 <박정희 친필→정조 어필…광화문 현판 갑자기 교체 왜?>(1월25일), <‘박정희 글씨’ 수난시대 오나>( 1월26일) 등의 기사에서 “최근 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 등을 둘러싸고 그 배경에 의구심이 일고 있는 가운데 갑작스러운 광화문 현판 교체 추진도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음모론적 시각으로 접근했다.
또 사설 <역사를 지우거나 희롱해선 안 된다>(1월26일)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한글 친필로 된 광화문 현판 교체도 그렇다… 그렇지 않아도 현 정부 출범 후 친일진상규명법 제정, 한일협정 외교문서 공개 등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들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의도적인 ‘박정희 때리기’로 보는 시각마저 있다.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일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역사는 지운다고 해서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며 광화문 현판 교체를 부정적으로 봤다. 동아일보, 1999년-2001년에는 ‘광화문 현판’ 교체 긍정 그러나 동아일보의 주장처럼 광화문 현판 교체는 의도적인 ‘박정희때리기’일까? 그 의도성은 노무현 정부 이전 동아일보가 보도한 광화문 현판 교체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아일보는 2001년과 1999년 관련 기사에서 광화문 현판교체를 ‘문화재 복원’에서 필요한 조치로 평했다. 동아일보는 <경복궁의 얼굴 ‘광화문 목조 복원’ 목소리 높아>(2001년 8월2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실시한 광화문 공사를 ‘수난’이라고 비판했다. 이 기사는 “1968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현재의 위치로 이전 복원하면서 콘크리트로 지은 것이다. 그리고 원위치보다 14.5m 뒤로 후퇴시켰고 그 축의 방향도 옛 조선총독부 건물에 맞추느라 3.5도 동향으로 틀어놓았다. 수난의 연속이었다”며 “따라서 경복궁을 복원하는 기회에 광화문을 원래 위치에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놓아 그동안의 수난을 치유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또한 1968년 복원 당시 박 대통령이 친필로 써 걸어놓은 한글 현판도 원래의 한자 현판(光化門)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며 현판 교체의 필요성을 보도했다.
최근까지 동아일보에 칼럼을 기고한 건축가 서현씨도 <건축가 서현의 ‘우리거리’ 읽기/세종로 연가>(1999일 1월5일)에서 “광화문은 개선문보다 아름답다. 개선문처럼 칼바도스 향기나는 이름의 소설은 아직 없어도 그렇다. 콘크리트로 지은 아쉬움은 있어도, 통치자의 한글 현판이 그 깊은 뜻을 덮어도 광화문은 그냥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름답다”며 박 대통령이 쓴 광화문 현판을 비판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광화문 현판교체를 정치적 입장으로 접근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뒤집고 있다. 한마디로 3년 전에는 자신도 그 필요성을 보도했던 광화문 현판 교체를 두고 ‘음모’라고 말하는 동아일보의 보도가 음모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동아일보 가문’을 둘러싼 또 하나의 현판 논란
광화문 현판 교체가 동아일보 등 보수신문에 의해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되고 가운데, 전북 전주의 대표적 체육시설인 덕진종합경기장 일주문에 걸린 ‘수당문(秀堂門)’ 현판을 둘러싼 논란은 동아일보에겐 다소 특별한 의미를 가질 듯 하다.
동아일보 창업주 인촌 김성수의 친동생인 김연수의 호 ‘수당'(秀堂)을 딴 이 현판은 지역단체들의 철거 요구를 받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등을 비롯한 지역단체들은 수당 김연수의 친일행적을 비판하면서 지난해부터 현판 교체를 주장했고, 이 현판은 올해 3·1절을 전후로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이 현판의 역사는 5·16 군사쿠데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에 따르면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는 전라도에 군인 출신 도지사를 내려보냈고, 군부는 치적을 쌓기 위해 1963년 덕진경기장을 건립, 제44회 전국체전을 유치했다. 그러나 예산이 부족했고, 당시 삼양사 회장이었던 김연수(1896∼1979·전북 고부)씨가 경기장 건립 기금을 냈다고 한다. ‘수당문’ 현판은 이러한 기금을 낸 데 대한 감사의 표시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외에도 매일신보 등 친일매체에 활발하게 기고하면서 ‘정신적’ 친일에도 앞장섰다. 그는 국민총력조선연맹 후생부장 시절 <매일신보>(1942년 1월14일자)에 기고한 ‘일억일심’이라는 글에서 조선 사람들에게 전시체제에 협력할 것을 주장했고, 총독부의 일본어 기관지인 <경성일보>(1944년 1월19일자)에 “학병에 입대하여 죽을 때에야 조선이 ‘제국’의 일원이 될 수 있고, 조선인이 ‘황국신민’이 될 때에야 ‘신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친일파 김연수 아호 현판이 웬말”…인촌 김성수 동생 광화문 현판 교체에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는 동아일보, 그리고 동아일보 창업주의 동생이 얽힌 현판 철거 문제는 한국 근현대사의 복잡한 단면을 드러낸다. 민족문제연구소 최재흔 전북지부장은 “친일 활동으로 부를 쌓고 해방 후에도 그 부를 누린 친일파를 기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 문화의 도시라는 전주의 정체성과도 맞지 않는다”며 ‘수당문’ 현판 철거를 주장했다. 최재흔 지부장은 “광화문 현판 교체는 문화재 복원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정통성도 없고 친일행적을 한 독재자 박정희의 상징을 떼어내는 시대청산의 의미도 있다”며 “동아일보를 비롯한 보수신문들의 정체성이 친일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현재도 보수반동적인 역사관에 기반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광화문 현판교체를 정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 ||||||||||||||||||||||||||||||||||||||||||||||||
| ||||||||||||||||||||||||||||||||||||||||||||||||
입력 : 2005년 01월 27일 14:23:40 / 수정 : 2005년 01월 27일 16:32:04 |
주요기사
광화문과 수당문, 그리고 동아일보
By 민족문제연구소 -
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