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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참여는 했지만 ‘변절’한 독립유공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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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현(경남근현대사연구회 연구원) /










[김경현 칼럼]그들의 예우를 박탈해야

지금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인물 가운데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독립운동가는 주로 3·1운동 관련자들이 많다. 하지만 나중에 일제의 녹봉을 받는 식민통치기구의 관공리가 되거나 일제의 협력자가 되고 만 경우도 허다하였다. 더구나 이들은 해방 이후에도 대개 독립유공자로 예우 받거나 국민을 대표하는 사회지도층 인사가 되었다. 진주의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 중에 몇몇의 행적을 살펴보자.

이강우는 진주에서 3·1운동으로 복역한 인물이지만 출옥 후 일제 관공리로 변신하여 진주고등보통학교에서 서기로 근무하다가 일제 말에는 진주부 내무과 소속의 갱생원에서 지도원을 지냈다. 해방 후 이강우는 자신을 신임했던 일본인 부윤과 그의 가족을 보호하며 직접 일본으로 탈출시켜주는 의리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해방 직후 진주부청 내에서 직장자치위원회를 조직할 때 소속 직원들로부터 ‘진정한 애국자’로 추대되었으며 나중에는 제헌국회의원까지 지냈다.

역시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사천 다솔사의 대처승 최범술도 불교계의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북지 황군위문단의 위문사’로 1개월씩이나 참여해 중국을 침략중인 일본군을 위로하는 위문행사를 벌이고 돌아오는 친일행위를 저질렀다.

변절한 독립운동가 많다

해방 후에는 그도 역시 사천에서 제헌국회의원을 지냈고, 1950년대 초에는 진주에서 교육사업을 벌여 중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진주시 강남동에 소재한 해인대학(현재 마산에 있는 경남대학교의 전신)의 학장까지 지냈다.

마찬가지로 진주에서 사립학교 교원을 지내다가 3·1운동에 뛰어들어 징역 1년을 언도받고 복역한 한규상도 나중에는 일제 관공리가 됐다. 그는 일본왕의 ‘은사 감형’으로 출옥한 뒤 총독부로부터 의사면허를 취득해 관공리로 투신하여 경남도립 마산병원 의무촉탁을 시작으로 일제 말에는 마산에서 공의(公醫)를 지냈다. 공의는 일제 말 지원병 신체검사 등을 수행하며 일제의 녹봉을 받던 의사를 가리키던 명칭이었다. 해방 후 그는 진주도립병원장을 지냈고, 독립운동가들의 모임인 진주3·1동지회의 회장도 역임하였다.

또 다른 사례로는 일제 때 진주에서 사립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와 봉산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오랫동안 민족사학의 교장으로 재직했던 교육자 백남훈을 들 수 있다. 그는 3·1운동과 관련해 일본 동경지방재판소에서 증언한 바가 있었는데, “지금 그런 운동을 해도 도저히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백남훈이 진주에서 애국자녀단장을 지내며 학생들로 하여금 애국헌금을 납부하게 하거나 진주신사의 경내를 청소하도록 한 일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도 역시 해방 후에는 한민당 총무가 되어 정치가로 활동했고 5대 국회의원(민의원)까지 지냈음은 물론이다.

그들 찾아내 예우 박탈해야

그리고 진주 문산성당 신부 김명제는 일제관리들이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할 때 측량기를 땅에 내던지는 등 극렬하게 저항함으로써 측량을 무산시킬 만큼 놀라운 기개를 보여준 인물이었다. 하지만 3·1운동 후 황해도에서 사목활동을 할 때 독립운동을 하던 동료신부를 주교에게 밀고하는 등 항일활동을 방해하여 그 신부를 좌천되게 만들었다.

그 후 김명제는 국민정신총동원 및 국민총력 천주교 경성교구연맹에서 이사를 지냈다. 해방 후 그는 원로 성직자로 예우 받다가 사망했는데 천주교 부산교구에서는 매년 그의 기일을 기리고 있다.

이처럼 독립운동가로 일컫던 많은 이들이 왜 하필이면 일제 관공리나 일제의 역원 같은 부역자가 되어야 했을까. 더구나 한 때 우리 민족의 등불이 되었던 선각자들이 변절함으로써 우리 민중에게 남긴 상처는 얼마나 크고 깊었던가. 처음에 아무리 대단한 독립운동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 마무리가 변절로 끝나고 말았다면 오히려 일반 관공리나 부역자보다 더 큰 해악을 미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변절한 사이비 독립유공자를 모조리 찾아내어 그 예우를 완전히 박탈해야 함은 당연하다.

비록 늦었지만 국회에서는 독립유공자예우법을 즉각 개정하여 지금이라도 뒤틀린 민족정기를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필자인 김경현 연구원은 최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출간한 <일제강점기 인명록1-진주지역 관공리·유력자>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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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재일자 : 200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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