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잡는 게 매.’
한상범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동국대 명예교수)이 한승조 전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전 고려대 명예교수)의 논리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최근 ‘살아있는 헌법이야기(삼인)’를 발간해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한 교수는 7일 오전 시내 한 대형서점에서 데일리서프라이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승조의 주장은 현재 진행중인 과거청산에 의도적으로 방해하려는 친일파의 반발”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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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범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장(동국대 명예교수) ⓒ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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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박정희를 비롯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세지마 류조(瀨島龍三)와의 관계를 공개하고, “옛날 만주시절 상전에게 충복노릇을 하면서 굴욕밀실외교를 자행하고 그들의 지도에 따랐다”고 밝혀 눈길을 모았다.
이외에도 한 교수는 한승조 씨의 주장을 △한국의 일본식민지화 찬성론 △일본의 한국여성 성노예제도의 변호·옹호의 망발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일제강점 찬양론 △친일파 비판은 빨갱이란 매카시즘의 논법 등으로 요약하고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정론에 자주 등장하는 논객과 기본 논조에 대해 한 교수는 “이시하라신타로(石原愼太郞) 현 동경도(東京都)지사와 극우수구 군국주의와 반한(反韓) 반중국(反中國)의 배외주의 논조”라고 지적했다. 한 전 대표의 글을 실어 이번 파장을 야기한 일본우익 잡지 ‘정론’에 대해서는 “일본의 보수신문인 산케이신문이 발간하고 있으며 산케이신문은 최근 역사왜곡의 선봉에 서있는 후쇼사(扶桑社)가 배후에 있다”며 이들의 유착관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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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조, 일찍부터 친일파 박정희 찬양
한 교수는 한승조 씨에 대해 “일찍부터 친일파 박정희를 찬양해온 것은 알려진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제 친일파가 해방 후 미군정시기를 거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배해 온 친일파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 왔다”며 “그동안 친일파를 비판하고 그 죄상을 말하면 대개는 ‘빨갱이’로 몰렸다”고 지적했다.
“김구 선생의 우국활동을 말살하기 위해 빨갱이로 몰아서 죽인 것은 누구인가? 반민족행위처벌법을 무산·좌초시키고 친일청산을 외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제거한 것은 누구인가? 조봉암 선생이 이승만정권의 ‘북진(무력)통일’에 맞서 평화통일을 주장하자 ‘국시위반’이라고 몰아붙이고 결국 빨갱이몰이로 죽인 것은 친일부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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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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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수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친일파는 자기들의 자행해 온 죄상 때문에 겁을 집어먹고 빨갱이로 낙인찍어 감시하던 ‘보도연맹원’ 수십만을 집단학살했다”며 “그러한 무법적 폭거인 살인에 대해서조차도 ‘반공’이라고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 실정”이라고 개탄했다.
박정희는 ‘충복’ 전두환·노태우는 ‘충실한 제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한 교수의 지적은 여전히 예리했다. 그는 “박정희는 기시노부스게(岸信介)로부터 세지마 류조에 이르기까지 옛날 만주시절 상전에게 충복노릇을 하면서 굴욕밀실외교를 자행하고 그들의 지도에 따랐다”고 지적했다.
박정희의 뒤를 이은 군사정권의 후예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전두환과 노태우도 세지마의 충실한 제자였다”며 한국의 과거정권의 암담했던 실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산케이신문이 발간한 세지마 류조의 ‘회상록’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한 교수는 이외에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79년 12·12 쿠데타에 앞서 일본대사에게 미리 보고했다는 점을 공개해 눈길을 모았다.
이에 대한 근거는 박선원 씨가 영국 웨릭대학에 제출한 학위논문과 국내 2002년 국제정치 논총(박선원, ‘냉전기 한일협력의 국제정치-1980년 신군부등장과 일본의 정치적 영향력’ 국제정치논총 제42집 3호 2002년 한국국제정치학회)에서도 소개되고 있다.
겁먹은 친일파 수구언론의 마지막 카드는 ‘미친 척’
“한승조 같은 파렴치한 논의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버젓이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한 교수는 제대로 된 일제청산 없이 친일파가 기득권을 잡아온 한국현대사의 아픔을 지적했다.
“해방 후에도 일제하에 매국행각을 한 친일파가 60년을 이 땅의 실권을 장악해 왔다. 그들 친일파는 우리의 눈과 귀, 입을 막고 바보로 순치시켜왔다. 그런데 친일파가 지금 사정을 보니 속이 터질 지경으로 안타까운 것이다. 국민이 일제잔재청산에 나서고 있는 것이 못마땅하다. 아니 겁부터 난다. 예전 같으면 ‘빨갱이 놈들’하고 한마디 매카시즘의 콧바람을 내면 찍소리도 못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들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무지렁이 백성이 몰라도 크게 모르고(?) 겁 없이 날뛰고 있어서 속 터져 죽을 일이다.”
그는 “수구 친일언론은 교묘하게 친일파 찬양의 온갖 선전무드를 조성하는 우민정책을 써오고 있다”며 “수구 언론기관을 동원해서 친일파의 국가발전기여론을 외쳐대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냄새나는 추악한 행실에 분칠을 해서 소란을 떨지만 약발이 안 듣는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한승조가 일찍부터 친일파 박정희를 찬양해 온 것은 다들 알고 있다”며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마지막 카드를 미친 척하고 들이댄 것”이라고 일갈했다.
‘한국의 일본식민지화 찬양’은 박정희 측근 박종규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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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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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해 한국이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된 것은 천만다행”이라는 한승조 씨의 논조에 대해 한 교수는 “박정희 시대에 이시하라 신타로를 만난 박정희의 측근인 박종규가 똑같은 말을 했다”며 1990년 발간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의 ‘현대사의 분수령(文藝春秋社 文春文庫, 237)을 근거로 제시했다.
1990년에 이 책을 접한 한 교수는 “결국 친일파의 민족의식의 빈곤과 국제정세분석의 유치함을 세삼 확인했다”며 혹평을 가했다.
그는 “러일전쟁 당시에 일본은 영국과 영일동맹으로 지원받고 미국의 후원 아래 극동의 영미제국의 헌병보조원으로 대리전쟁을 한 것”이라며 “한승조식 논리라면 1917년 10월 혁명의 전주곡인 1905년 혁명을 일본첩보부가 지원했으니 일본 육군첩보부는 빨갱이를 도운 이적행위라는 논법이 성립된다”고 지적했다.
“정치학을 하지 않아도 역사를 제대로 보는 이라면 1904년대에 일본이 영미 제국주의국가의 양해 없이 한국식민지화가 가능할 수 없었고 영미제국주의의 일본비호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제국의 영미굴종 예속의 대가였다. 그리고 러시아가 일본에 승리했다고 해도 영미제국주의가 러시아남진을 저지하는 실세로 버티고 있어서 러시아 식민지가 된다는 엉뚱한 가상은 통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정신대 옹호 망발’은 오선화가 먼저
한 교수는 일본제국군대의 정신대를 변명한 최초의 한국 사람에 대해 “일본에서 일본제국의 침략을 미화 정당화하며 일본극우 군국주의자들을 기쁘게 한 대가로 명사가 되어서 활약하며 몇 권의 책까지 내고 있는 오선화란 젊은 여인이 있다”고 소개했다. 오 씨는 전쟁 중 강간에 대해 1950년 한국전 당시 미군의 경우를 들어 ‘전쟁 중 강간불가피론’을 전개하며 일본제국군대의 성노예제도를 변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교수는 “이 철없는 이는 일본제국군대가 성노예제도를 여인의 강제연행으로부터 관리유지에 이르기까지 제국정부군대의 권한으로 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고 꼬집고, “한국전 당시에 미군이 여인을 강간하고 매춘공연이 있었지만 이는 미8군에서 관리한 것이 아니고 한국정부가 제도운영을 한 것도 아니다”라며 판이한 배경을 지적했다.
그는 “특히 미군의 경우 전시강간은 군법위반으로 처벌했다”며 “이런 사정을 덮어둔 채 모두 하나로 뭉쳐 몰아쳐서 일제의 만행을 변명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물론 한승조는 오선화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의 심정은 일본제국군대를 심정적으로 편들고 있다”고 지적하고, “백주에 처녀를 잡아다가 공창에 수용하는 만행을 국가감독 하에 자행하고 사과·사죄도 안하고 물론 배상책임도 없다고 오리발을 내미는데 그것을 국민을 보호할 정부가 묵인하고 봐줄 수는 없다”며 소리를 높였다.
‘식민지 근대화 일제강점 찬양론’은 안병직이 선배
한 교수는 “일제의 식민지인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되지 않았는가 하는 그럴듯한 일제침략 수긍론도 한승조의 독점상품은 아니다”라며 안병직 교수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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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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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교수에 대해 한 교수는 “처음엔 정신이 좀 올바른 것 같더니 3년간 일본생활 이후에 변질됐다”며 역사인식의 부족을 꼽고, “최근 가수 조영남 식으로 조선인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친일파가 대개 그 상품을 팔아먹으면서 일본의 수구우익 군국주의 및 국수주의 세력의 귀여움을 받아오고 있다”며 “그런 이의 역사관과 역사의식의 빈곤을 개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기성세대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할 분위기를 조성해 주지 못한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두환정권 시절 일본의 대학에서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두고 일본의 우익교수와 논쟁을 벌였던 한 교수는 “일본 우익교수나 일본의 우익인사의 주장은 박정희가 일본의 교육을 받은 일제충복이었기 때문에 잘했다는 것”이라며 “박정희의 후속 전두환 시절에 군부친일파의 문제를 마음대로 비판할 수 없기 때문에 조심했지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주장이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을 끌면서 논쟁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친일파 비판하면 빨갱이’는 오카사키 히사히코의 작품
한 교수는 국가보안법을 일제시대의 치안유지법과 비교해 ‘한국판 치안유지법’으로 비유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100년간 친일파가 사용하는 논법이 똑같다는 것. 일제 당시에는 민족자주 일제반대를 치안유지법의 국체(國體) 또는 국시(國是)위반으로 몰았고, 지금도 국가보안법을 통해 ‘용공·친북 빨갱이’라는 매카시즘 몰이로 간단히 처리한다는 지적이다.
한 교수는 “천하의 악법 국보법의 공과를 실사해 폐지가 눈앞에 다가오자 친일파는 나라가 망한다고 소란을 떨며 빨갱이 타령과 친북세력이라는 엉뚱한 모략중상을 한다”며 “김일성이 콩밥이 맛있다고 했는데 너도 콩밥이 영양가가 있다고 하니 똑같은 놈이라는 식의 논리”라고 비웃었다.
할 말이나 논리가 궁해지면 ‘말이 많은 놈은 빨갱이’라는 억지도 한국 뿐 아니라 미국의 매카시즘과 일본의 수구우익의 논법에서 드러난다.
일본의 우익의 이론적 대부로서 나카소네가 찬양했던 오카사키 히사히코(岡崎久彦)는 그가 쓴 ‘요시타 시게루(吉田茂)와 그의 시대(PHP文庫)’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이 2차 대전 당시 일본제국을 패전시켰다는 이유로 그를 빨갱이라고 비난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일제 우익국수주의의 비위를 거스르면 루즈벨트 미국대통령도 빨갱이 내지는 그와 유착한 용공분자로 몰려버린다”고 말하고, “힘을 배경으로 한 이 논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매장하고 망신시키고 괴롭혀 왔는가”라며 한탄했다.
한 교수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질책과 한탄으로 말을 맺었다.
“일본제국주의 잔재청산과 일제 찬양 친일파잔당의 청소가 안됐기 때문에 온갖 궤변이 난무하면서 사람들의 올바른 정신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이것을 그저 친일파의 마지막 발악으로만 봐 넘기기엔 그 한도를 넘어선 것이 아닌가?”
☞ 한상범 교수의 ‘한승조 글’ 반박문 전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