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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님 글씨는 가문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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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파평 윤씨 대종회 논란으로 온라인이 떠들썩하다.

3월1일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모신 충남 예산의 충의사 현판을 전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회장 양수철씨가 떼내 세 조각으로 부숴 버렸다.

양씨는 “윤 의사는 우리가 존경하는 독립운동가인데, 여기에 친일파 박정희의 글씨가 현판으로 쓰여 있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파평 윤씨 대종회는 3월9일 충의사 앞 주차장에 윤씨 문중 600여명을 모아놓고 ‘충의사 현판 무단훼손 규탄대회’를 열어 “애국애족 독립정신의 상징인 충의사가 훼손당한 데 대해 통탄을 금할 수 없다”며 양씨의 처벌을 요구했다.

대종회의 규탄대회가 온라인 매체에 보도되자 네티즌들이 들끓었다.

일부 네티즌은 ‘박정희의 글씨도 역사’라며 양씨의 ‘문화재 파괴행위’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사당에 친일 부역자의 글씨가 걸려 있다면 당연히 철거되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온 민족이 숭모하는 윤봉길 의사를 단지 윤씨 문중의 인물로 여기는 파평 윤씨 대종회의 몰역사적 시각도 비판했다.

어느 네티즌은 “윤 의사가 상해로 갈 때 파평 윤씨 대종회에서 파견했는가? 또 윤 의사가 순국한 뒤 대종회에서 윤 의사의 가족들을 보살피기라도 했는가? 충의사를 건립할 때 대종회에서 돈이라도 냈는가?” 되물었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윤 의사의 친손녀인 윤주영씨가 독자 의견을 단 것이다. 그는 “종친회가 할아버지를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좌우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해서 가슴 아프다. 할아버지는 윤씨 문중만의 사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공인이므로 국민 전체의 뜻에 따라 현판이 복원되어야 한다”며 박정희의 글씨로 현판이 복원되는 것을 반대했다.

그런데 3월11일 윤 의사의 6촌동생 윤재의씨 등이 주동이 된 ‘윤봉길 의사 친족모임’이 윤주영씨의 의견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들은 “출가하여 다른 집안의 며느리인 윤주영씨의 주장은 윤봉길 의사 가문의 뜻과 전혀 상반되는 내용이며, 출가외인이 윤 의사 집안 어른들과 한마디 상의 없이 행한 잘못된 주장임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글씨는 집자되는 순간 그 힘과 혼이 없어져 죽은 문자가 되기 때문”에 박정희의 글씨 중에서 집자하여 복원할 계획을 밝힌 예산군청의 조처에도 반대하고, 원래의 현판을 복원하라고 주장했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윤 의사의 친손녀를 출가외인으로 치부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에서 나라님이 내려주신 글씨를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봉건적 맥락이 느껴진다.

‘일가붙이끼리 모여서 하는 모꼬지’인 종친회 일에 이러쿵저러쿵 끼어들 일은 아니다. 그러나 윤 의사는 단순한 윤씨 문중 사람이 아니다.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윤 의사는 ‘민족의 사람’이다. 이러한 분을 모시는 사당에 친일파의 ‘힘’과 ‘혼’이 서린 글씨를 걸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김학민/학민사 대표


http://www.hani.co.kr/section-001000000/2005/03/0010000002005031619251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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