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친일파 세상

979















 


 


 


미디어오늘 media@mediatoday.co.kr


 













▲ 정경희 / 언론인



아마 지난해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KBS1TV의 일요프로그램 에 임진왜란 때 왜군이 갖고 온 조총(鳥銃)으로 보이는 총 한 자루가 출품된 적이 있었다.


총포전문가인 듯한 감정위원이 입을 열었다. “임진왜란 때 우리 조선을 일패도지하게 만들었던 이 조총은…”이라고. 필자는 이 무지몽매한 말에 깜짝 놀랐다. 임진왜란은 우리가 이긴 전쟁이요, 왜가 참패한 전쟁이었다. 한 일본인 학자에 의하면 “왜군의 사상자는 60%선”이었다. 그는 이순신의 수군(水軍)이 왜군의 식량보급로를 봉쇄한 것도 왜군이 패한 원인의 하나라고 했다.

필자는 당시 왜에는 목화가 없었기 때문에 왜인들이 삼베옷을 입고 왔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 땅의 혹독한 겨울에 많은 병사들이 얼어죽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 왜군의 조총은 실제 전투에서 살상력이 큰 무기는 아니었다. 수군(水軍)의 이순신도, 영남의 의병장 곽재우(郭再祐·1552~1617)도 왜란 초에 왜군이 쏘는 조총의 사정거리를 눈여겨 확인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 결과 왜군이 쏘는 조총의 사정거리는 우리 화살보다 약간 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순신은 전투가 벌어졌을 때 우리 함선(艦船)이 가급적 왜군의 사정거리 안에 들지 않도록 지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일본 우익잡지에 기고했나?


이처럼 이긴 전쟁도 ‘진 전쟁’으로 뒤집어 놓은 이른바 전문가들이 가끔 논란거리가 된다. 지금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는 전 고려대 명예교수이자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인 한승조씨의 일제식민지배예찬론도 그렇다.

그의 일제식민지배 예찬론은 “러시아의 지배보다는 낫다”는 실현되지 않은 현실을 전제로 하고 있는 하나의 ‘가상소설(假想小說)’이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일제예찬’ 그 자체일 뿐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한승조 파동에서 밝혀내야 될 진짜 의문은 “왜 일제식민지배 예찬론을 하필 일본의 우익잡지에 발표했는가?”하는 것이다. 그는 일제 식민지배가 “한국인의 문명화에 크게 공헌”했다면서 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안 등을 들어 ‘좌파세력’을 비난했다. 그는 이처럼 일본의 우익세력을 즐겁게 함으로써 무엇을 얻으려하고 있을까?

자유시민연대와 일본 우익의 정치적 연대나 그 이상의 무엇을 기대했을까? 그동안 일본 우익의 동태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우리로서는 일제지배예찬론의 날벼락을 맞고서야 일본 우익의 동태에 주목하게 된다. 또한 그동안 목소리를 낮추고 있던 국내 우익성향 활동가들이 목청을 돋우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된다.

“한 국가가 저지른 과거사에 대해 한번만 사과하면 됐지, 어째서 대통령마다 사과를 요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지만원씨(군사평론가)의 말이었다(6일). 그는 또 “김구는 빈라덴”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10일).


윤봉길 의사, 지하에서 분노할 것


뿐만이 아니다. 충남 예산군에 있는 윤봉길 의사(1908~1932)의 사당인 충의사(忠義祠)현판을 둘러싸고 공방이 오가고 있다.

서천문화원장 양수철씨가 박정희 글씨의 현판을 뜯어내 두동강 내자(1일), 윤씨문중 종친 600여명이 “양수철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고(8일), 이튿날 양씨는 구속됐다. 경복궁의 광화문 현판과 윤봉길 의사 사당 충의사(忠義祠)의 현판 글씨를 쓴 박정희는 누구인가? 그는 일제의 괴뢰 만주군 장교였고, 일본의 관동군 장교였다. 그는 만주일대에서 일제와 싸우던 독립군을 토벌하는 작전에 장교로서 주도적으로 참가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윤봉길 의사는 누구인가? 윤봉길은 충남 예산에서 출생(1908), 22세 때 월진회(月進會)에 가입해 청소년계몽운동을 벌였다. 그는 다시 가족 몰래 만주를 거쳐 중국 상하이로 망명, 김구 선생의 지도로 한인 애국단에 가입했다. 1932년 4월29일 일본 덴노의 생일축가 기념식이 있었던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던졌다.

그래서 일본군사령관 시라가와(白川義則) 대장과 일본 거류민단장을 죽게 하고, 제3함대사령관 등 3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윤 의사는 일본으로 압송돼 가나자와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윤봉길 의사는 지금 지하에서 분노하고 있을 것이다. 박정희가 쓴 현판을 떼어낸 사람이 구속되고, 친일파가 되살아난 것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 등 과거사청산을 하지 못한 업보니라”고 오늘의 세대를 꾸짖고 있을 것이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