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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여동생 묘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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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전상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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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 11월 부산 중구 중앙성당에서 치러진 안중근 의사 아들 준생씨의 장례식때의 모습. 안성녀 여사 (왼쪽에서 네번째)와 안 여사 왼쪽으로 안 의사의 동생인 안정근씨의 부인 이정서 여사, 안 여사 오른쪽으로는 준생씨의 부인 정옥녀씨와 아들 안웅호(현 미국 거주)씨, 안춘생(전 독립기념관장)씨의 모습이 보이고 맨 오른쪽이 안 여사의 외아들 권헌씨이다. 국제신문 제공



 



안중근 의사의 유일한 여동생이자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진 성녀(姓女·세례명 누시아·생몰연도 ?∼1954) 여사의 묘지가 정부의 무관심 속에 반세기 이상 방치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일 안 여사 며느리 오항선(95·부산 남구 대연동)씨 등 후손들에 따르면 1890년대 안중근 의사의 유일한 여동생이자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진 성녀(姓女·세례명 누시아·생몰연도 ?∼1954) 여사의 묘지가 정부의 무관심 속에 반세기 이상 방치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일 안 여사 며느리 오항선(95·부산 남구 대연동)씨 등 후손들에 따르면 1890년대 초반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안 여사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부산 영도구 신선동 2가 2 자택에서 사망했고 유해는 현재 부산 남구 용호동 천주교 묘원에 봉분이 일부 훼손되고 수풀에 뒤덮인 채 안장돼 있다.

안 여사의 묘는 사망 직후 부산 영도구 청학동에 있었으나 1974년 부산체고가 들어서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장됐다고 후손들은 증언했다. 묘지에는 ‘안누시아성여지묘’라고 적힌 묘비가 세워져 있다.

안 여사의 손자 권혁우(61·부산 남구 대연동)씨는 “해방 후 김구 선생의 주선으로 서울에 살던 할머니가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왔고, 당시엔 부산시장이 직접 챙겨줄 만큼 신경을 많이 썼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고 말했다.

 






권씨는 “독립운동가였던 선친(권헌·1980년 사망)께서 생전에 ‘대가를 바라고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다. 독립운동가 집안이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떠들지 마라’고 유언을 남기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할머니의 묘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안 여사의 며느리 오씨는 “시어머니는 안 의사 여동생이라는 이유로 일제의 감시와 갖은 탄압을 받으면서도 독립군을 몰래 도왔다”며 “한번은 9일 동안 감금돼 있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하셨다”고 전했다.



안 여사 손자며느리인 이용순(56)씨는 “1974년 시할머니(안성녀) 묘를 천주교 묘지로 옮긴 직후와 1984년 등 두 차례에 걸쳐 부산지방보훈청에 묘 관리를 요구했지만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묵살당했다”고 말했다.

안 여사는 슬하에 1남3녀를 뒀으나 모두 사망했고 장남 권헌(1980년 사망)씨와 며느리 오항선 할머니 사이에 장남 권혁우씨 등 1남2녀가 생존해 있다.

건설현장 일용직노무자로 일하고 있는 권혁우씨는 보훈청과 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아 마련한 25평짜리 다세대주택에서 살고 있다. 세계일보<200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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