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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난국 타개 위해 과거사 청산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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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도청사건 연쇄파장 ‘과거사 청산’ 못한 악의 먹이사슬 고리

 
















 

 

 

임헌영(문학평론가)

최근의 도청사건 연쇄파장은 ‘과거사 청산’을 수행못한 사회의 추악한 죄악을 재생 확대시키는 악의 먹이사슬 고리임을 절감케 한다. 긴 군부독재 정치가 누적시킨 부패의 연결고리를 진작 청산해버렸다면 고생대적인 기형미의 극치인 한여름 밤의 기담같은 사건이 이처럼 졸렬하게 다뤄지진 못하리라.   

이제 여야는 사생결단이다. 국가 안위와 민족 생존권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이 이전투구의 막가파식 전투태세다.

곰곰이 따져보자. 현대적인 국가체제에서 정보관련 기구는 필수적이며, 그 기관의 기본 업무는 ‘음지에서 일’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런 ‘음지’를 ‘양지’ 지향성으로 바꾸라거나, 아예 없애야 된다는 주장은 정치적인 순진무구파나 아나키스트의 영역에 속한다.

물론 나는  정보기관의 정당성이나 지난 시기의 끔찍한 범죄행위를 조금도 찬양 고무 옹호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이런 식의 청산 접근법은 한참 잘못되었으며, 그 원인은 다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이룩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다들 부정한 권력의 가련한 희생자들만 치도곤을 당하는 가련한 풍경 아닌가.

어이하여 국회의원이 버젓이 도청기술 수준을 질문할 수 있으며, 설사 추궁이 지나쳤다 한들 어찌 감히 그게 가능하다는 답변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사건이 미 중앙정보국(꼭 그 옳고 그름은  떠나서)이라면 어떻게 처리했을까를 여러 탐정수사 영화를 바탕으로 상상해 보면 이 나라의 오늘과 내일이 실로 염려된다.  

과연 이게 나라 걱정하는 정치인가! 차라리 정보관련 인사를 불러 성행위 청문회를 여는 게 낫겠다. 민주주의를 이렇게 타락시키는 정치가 의젓하게 휘젓고 뽐낼 수 있는 게 다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결코 정보기관의 부정을 그냥 넘기자는 게 아니라 올바른 기능을 가진 국가기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해서는 진실도 못 캔 채 그 기능만 저하시킬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따름이다. 크게 보면 이런 문제도 과거사 청산의 테두리 안에서 처리되어야지 여야의 힘겨루기나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개혁 제안때마다 야당은 국론분열 등 앞세워 무조건 비난

참여정부 이후 개혁적인 제안들이 제기될 때마다 야당은 ‘사회 혼란 조성’과 ‘국론 분열’ 혹은 ‘위헌적인 요소’란 3대 슬로건으로 비난해 왔고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조짐이 역력하다. 탈헌(脫憲)에다 초헌적인 살벌한 독재로 군림하며 반인륜적, 반역사적, 반민족적인 갖은 만행을 자행해온 ‘과거’에 뿌리를 둔, ‘과거’ 지향성, ‘과거’ 향수병 환자다운 자구책의 일환일 터이다.

개혁을 위한 진통을 혼란으로, 민주사회의 다양한 토론을 분열로,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중요 정책은 일단 위헌으로 몰아대는 발상이야말로 군부 독재적 체질의 본능으로 아무리 역사가 바뀌어도 달라질 낌새가 나타나지 않는다. 정작 혼란과 국론분열을 조장하는 게 자신들의 ‘역사적 사명’임은 아무리 꿈을 깨도 수긍할 태세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노무현 대통령이 광복 60주년 기념사에서 제기한 과거사 청산과 이에 관련된 공소시효 문제에 대하여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야당은 낡아빠진 재래식 공격 무기를 일제히 동원하여 정치판을 일대 격전지로 변모시키고 있다. 가히 언어의 융단폭격 수준이다.

대통령의 제안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과거사 청산’은 감행되어야만 오늘의 민족적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는 데 초점이 있으며, 이 중차대한 역사적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행 법률의 미비점을 보완할 수도 있다는 시사에 다름 아니다. 쟁점은 어떻게 하면 올바르고 희생이 적으면서도 효율적인 데다 다수의 국민적인 지지 속에서 과거사 청산을 이룩하여 범민족적인 화합에 이르느냐는 것이다.

이 제안은 크게 보면 ‘대연정’ 문제와도 맞물려 있는 듯하다.
참여정부가 순리대로 성숙된 자세로 개혁을 추진해 왔다면 지금쯤은 과거사 청산이 마무리 단계를 맞을 때이고, 그런 분위기였다면 ‘대연정’ 제안은 누구도 거역 못할 범민족적 정치사의 이정표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현실은 황무지를 개간(과거사 청산)도 않은 채 씨(대연정)를 뿌린 격이다. 그러니 ‘연정’ 제안은 온갖 잡초 속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다. 순리를 따르자면 열심히 잡초를 솎아 내는 과거사 청산을 서두른 뒤에 다시 씨를 뿌려야 할 판이지만 국내외 정세는 그리 한가롭지 못하기에 과거 청산과 대연정을 동시에 추진할 수밖에 없다.   

왜 하필 지금 대연정이냐고 의아하겠지만, 이건 오늘의 국내 정치가 직면한 무원칙한 당리당략과 지역감정, 기득권 수호, 개혁과 과거사 청산에 대한 피해망상증 등등으로는 잔혹한 국제정세 속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착과 개혁, 평화통일, 민족 주체적인 복지국가 확립 등의 지상목표를 다지기 어렵다는 데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유능한 정권도 오늘처럼 정글의 법칙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국제정세를 헤쳐 가며 민족적 위기를 주체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솔직히 시인해야 될 것이다.
동아시아 두 강대국의 옥죄임, 우방으로만 관계 맺었던 미국의 이율배반적인 남북정책, 단순  적대개념으로 존재했던 러시아의 변모 등이 한반도 진로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냉철하게 꿰뚫어보면 우리가 지금 이럴 때인가 눈앞에 번개가 번득인다.   

아무리 급해도 일에는 순서가 있다. 바람직한 과거사 청산이 안 되면‘대연정’ 조차 도리어 새로운 혼란과 국론 분열과 위헌 시비(이를 위헌이라고 우기는 저 정치적인 협잡성!)에나 휘말리고 말 것이다.

과거 부당권력이 자행한 범죄행위 조사 · 재발방지

현 상태에서 우리 사회가 돌파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는 일단 과거사 청산이다. 과거사 청산의 기본 원칙은 지난 시기 부당한 권력이 국민들에게 자행한 반인륜적인 범죄행위에 대한 조사와 그 재발방지이다. 두 번째 원칙은 이로 인한 연좌제식 부당 학대나 불명예를 철저히 방어해야 된다는 점이다. ‘과거사 청산’이란 말만 나오면 수구세력은 아예 초가삼간을 몽땅 태우기라도 하듯이 과대 선전하여 아예 살충제조차도 못 뿌리게 철저히 보호벽을 설치하기에 여념이 없거나, ‘우리만 그랬냐, 모두 다 그랬다’는 식의 물귀신 작전으로 나온다. 친일파 청산 주창자를 ‘빨갱이’로 몰아댔듯이 지금은 언필칭 ‘친북 세력’이란 무기로 중무장한 채 사생결단이다. 그만큼 지난 시절의 과오가 많음을 반증하는 것이며, 그러기에 과거사는 털어버리자는 논리가 타당성을 지닌다.

그간 단편적으로 진행되어온 과거사 청산은 그야말로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쳐 도리어 참된 청산에 장애가 될 수도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몇몇 부처별로 이뤄지고 있는 청산운동은 오히려 부처 이기주의적인 ‘보호막’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있을까. 그 방법 또한 세인들의 관심을 끌만한 인기 사건 위주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진상을 흐릴 수 있다.

과거사 청산의 첫 소프트웨어는 인적, 제도적 청산이어야 한다. 어떤 사건이 누가 어떤 직위에 있을 때 일어났던가 하는 기초자료 밝히기가 가장 시급하다. 그 다음에는 정부 관련 특별 기구-학자-시민단체가 연대하여 진상에 접근해야 될 것이다. 나머지 모든 판단은 진상이 밝혀진 다음에 맡겨야지 미리부터 처벌을 예단해서는 안 된다.

과거사 청산은 반인륜적인 독재체제의 부산물인 악의 순환 고리를 끊는데 목적을 둔 민족사적인 과제이기에 결단코 처벌이나 보복성은 철저히 차단해야 된다. 마찬가지로 과거사 청산 작업이 물질적인 보상이나 특권 획득의 수단으로 전락되어서도 안 된다.

기업 활성화를 위해서 과거의 분식회계를 문제삼지 않겠다는 조처(내가 보기에는 이것이야말로 위헌적인 것 같은데 어쩐지 야당은 조용하다)처럼 과거사 청산에서도 정 필요하다면 이런 방안을 고려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만큼 우리에게 과거사 청산은 중차대하고 시급하기에 여야를 가리지 않고 공존 공생할 유일한 진로라는 뜻이다. <국정브리핑,
2005.08.23>

 – 문학평론가


위 글은 임헌영 소장이 국정브리핑에 기고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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