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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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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언론의 관심과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뉴라이트 계열 조직인 교과서포럼이 만든 ‘한국근현대사 대안교과서’(초안)는 근현대사에 대한 시각, 서술 체제, 사실 서술, 사실에 대한 해석 등 다방면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21세기의 주역들인 학생세대에게 자칫 위험한(반동적인!) 역사교과서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과서 포럼 집필자들은 다음과 같은 인식에서 출발한다. “대한민국은 60년의 건국사에서 원식민지 국가 중에서 비견할 예를 찾기 힘들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하였다. 즉 세계사에서 하위권에 머물던 대한민국이 박정희 집권기 이래 눈부신 경제성장을 하여 오늘날 선진국가로 이행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들은 “이 같은 지난 60년간의 놀랄만한 성취”의 역사적 동력은 “대단히 활발하고 우수하고 풍부한 기업가 능 |
력”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또 이러한 문화능력은 17-19세기의 소농사회에서 “가정경제의 계획과 규율과 실행의 능력”이 축적된 데로 그 연원을 거슬러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개항기를 거쳐 식민지기에는, 비록 일제의 조선 지배는 조선인의 입장에서는 지배당하고 수탈당하는 역사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식된 근대를 주체적으로 소화하고 나름의 형태로 정착시키는 문명 전환의 과정이었음을 강조하였다. 해방 후 대한민국은 이렇게 접합하기 시작한 근대문명을 소중히 보존하고 발전시켰으며, 북한은 일제가 제정한 모든 법률과 기구를 폐기해버림으로써 곧 바로 문명의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간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루었다고 평가했다. 요컨대 대한민국의 60년 건국사는 지난 3세기간 한반도에서 전개된 인류 보편의 문명 요소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역사이며, 바로 이 점에서 모든 국민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자각적으로 수호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한민족의 저력을 확인하고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과 그 정통성을 수호하기 위한 국민적 자각을 일깨운다는 게 이 책의 서술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국가주의자들이 흔히 내세우는 국가관의 확립과 애국주의의 고취가 이 책의 간행 목적이라 하겠다. 이들이 또 하나 주목하는 것은 미국의 역할이다. 동서냉전의 가장 격렬한 무대의 하나인 한반도에서 미국은 사회주의로부터 한국의 안보를 수호하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옹호하며 그러면서도 한국을 지배하려고 하지 않은 우방이었음을 강조한다. 1960년대 이래 한국의 고도성장 또한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주의의 국제경제체제 그리고 한일국교수립과 베트남전쟁 등에 크게 힘입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일제 식민지 지배가 억압과 수탈이 아닌 전통과 근대문명의 주체적 접합과정으로 과장되듯이 해방 후 한국의 발전은 우방인 미국과 일본이 중심이 된 해양세력과 정치·경제·군사·에 걸쳐 긴밀한 협력관계를 전제로 대한민국의 도약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 억압과 미소에 의한 한반도 분단 그리고 미국의 일방주의와 우월주의, 미국의 이익을 전제로 한 불평등한 한미관계, 한일협정의 문제점, 베트남전쟁의 부도덕성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미국과 일본에 대한 사실상의 찬양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마 전 세계에서 자국사에서 특정 외국국가에 대해 이렇게 찬양하는 교과서는 이 교과서가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러한 ‘도약’의 주체는 누구인가? 이들은 역사의 진정한 주체를 “자유를 본성으로 하는 개별인간”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얼핏 개인의 존엄성에 주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개인을 모든 사회단체를 정치적으로 통합하는 국가에 귀일시킴으로써 개인은 국가와 연결 또는 대치된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사회에서 국가는 자유와 인권과 재산을 수호하는 정의로운 권력이라는 놀라운 국가관을 제시한다.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부정하는 북한사회에 대비해 대한민국은 정의의 국가이며 수호의 대상이라는 점을 대비하는 의도도 숨어 있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국가에 관한 이론 해석은 내어두더라도 사실 차원에서 실로 국가테러리즘의 시대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지난 60년의 대한민국 역사는 자유를 본성으로 하는 개인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억압한 주체는 사실 국가였음을 보여준다. 사실 이들이 주장하는 정의로운 국가란 시장경제의 수호자, 자본의 수호자라는 의미이며, 개인의 자유란 개인이 시장에 자유롭게(제멋대로) 내던져지도록 내버려두는 신자유주의 국가를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사실과 그 해석에서도 심각한 오류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일제가 조선을 영구 지배를 위해 다른 어느 제국주의보다도 식민지에 근대문명을 이식하는 데 열심이었다고 강변한다. 일제에 의해 초등교육의 기회가 널리 보급되었고, 근대 학술이나 문화 예술의 새로운 사조가 도입되었으며, 경성제국대학과 같은 최고교육기관이 설립되었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인구의 대다수를 점하는 조선인들에게는 초급교육의 기회만이 간신히 부여되었으며, 상급학교에로의 진학은 한줌도 안 되는 일본인 학생의 몫이었다는 사실은 지적하지 않는다. 식민지의 최고 학부인 경성제국대학 또한 조선인의 민립대학설립운동을 방해하고, 지식청년들에게 제국의 이념을 주입하기 위해서 설립된 배경을 생략하였다. 게다가 경성제대의 조선인과 일본인의 입학비율은 법적으로 규정되어 언제나 일본인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하였다. 1937년 이후 초등학교는 사실상 어린 조선인 학생들을 조기에 황국신민으로 만들어 전쟁의 총알받이로 끌고 가기 위한 조선인 징병제 계획과 맞물려 운영되었다. 단지 학교의 증설만을 논할 것이 아니라 어떠한 내용의 교육이며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해방 후 한국사에 대한 인식 또한 오류와 문제점 투성이다. 이들은 냉전체제 하의 분단을 필연적 귀결로 전제하고 남북을 아우른 통일정부수립운동을 폄하했다. 대신 이승만의 단정노선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들은 1960년대의 경제성장마저도 일제 식민지기로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서도 정작 6·25전쟁의 원인에서는 분단체제의 수립을 외면하고 북한의 남침야욕이라는 피상적 수준에서 파악하고 있다. 이승만의 10년 독재마저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은 시기로 파악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렇게 보자면 일본제국주의야말로 항일운동의 초석을 놓은 집단이 아니고 무엇이랴!
4·19혁명이나 5·16쿠데타 그리고 5·18민주항쟁에 대해서는 이미 언론에서 지적한바 많으므로 구태여 논급을 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들이 해방 이후 대한민국사를 보는 시각의 근저에는 ‘반공·시장경제 지상주의’가 깔려 있다. 자본주의시장경제는 민주주의와 등치되고 있으며, 사회주의를 채택한 북한에 대해서는 적대적 입장을 취해 오늘날 남북의 화해와 협력에 기초한 평화통일을 역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정통 국가이며, 박정희는 북한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오늘날 남북 통일과정에서 남한주도의 통일의 위업을 마련한 위대한 지도자로 부각한다. 박정희 통치시기에 권력에 의해 자행된 인권유린과 부정부패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오로지 고도경제성장시기일 뿐이다. 그리고 이들의 성장지상주의는 인간의 모든 고귀한 가치를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둔다는 점에서 반인간적이며, 국가주의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이들은 박정희 유신체제를 “국가적 과제달성을 위한 국가의 자원동원과 집행능력을 크게 제고하는 체제”, 즉 국가총동원체제라고 규정하였다. 교과서포럼은 “(일제시기) 전시총동원을 통해서 사회 전반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통제·지배력이 창출”되었으며 이것은 경제건설기의 한국에서 유효하게 활용“되었다고 평가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이 가장 가혹하게 수난 당했던 시기가 바로 전시총동원시기였으며, 해방 후 유신체제기 또한 국가테러리즘에 의한 인권유린의 시대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교과서포럼은 이러한 총동원체제를 경제성장을 위한 효율적 시스템으로 파악함으로써, 경제 운용의 효율성이 인간적 권리마저 짓밟을 수 있다는 논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천박한 경제성장지상주의에 있는 한 그들에게 일제의 조선공업화와 근대문명의 이식과정에서 항일운동은 경제적 비용 손실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시기 경제성장에 있어서 민주화운동 또한 경제성장의 걸림돌일 뿐이다. 그리고 국가는 곧 위대한 통치지도자와 일체가 되면서 박정희에 대한 지도자 숭배사상으로 이어진다. 반공주의와 성장지상주의에 기초해 인간의 모든 가치는 국가적 성장의 수단으로 전락되어도 무방하다는 것, 그리고 북한과의 적대적 경쟁과 대한민국 정통성 수호와 이에 입각한 멸공통일론이 이 시대의 좌표이며, 미국과 일본만이 우리의 영원한 우방이라는 것이 이 교과서의 핵심이다. (이 글은 교수신문 2006년 12월 9일자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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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한 경제성장론 앞세운 국가주의와 반공주의의 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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