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장편 없다고 상 만들고 하는데, 상금 아무리 올려도 좋은 장편 안 나온다. 우리나라는 이미 장편의 시대는 갔다. 작가들 이 장편 쓸 능력이 없다. 공지영이 최후 마지노선이다. 그 연배나 후배들 장편을 보면 수필집이다. 서사 구조가 없다. 역사가 서사구조의 기본골격인데, 역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개인이든 민족이든 지방이든 세계든 역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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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가 임헌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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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자 |
지난 22일 기초예술연대(위원장 김지숙ㆍ방현석)가 마련한 ‘한국사회와 문화예술의 미래’ 심포지엄 현장. 이날 두번째 발표자로 나선 문 학평론가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씨는 주최 측에서 미리 배포한 자료집의 발표문과는 달리 한국문단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일관했다.
그에게 예정된 주제는 ‘변화하는 세계, 문학의 가치 는 무엇인가’. 자료집에는 문학의 가치를 주장하고, 그에 대한 정책 지원을 강조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 그러나 현장의 발표 내용은 사뭇 달랐다.
그는 먼저 “발표문에는 21세기를 ‘문화의 세 기’라고 적었지만 난 ‘문화의 세기’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20세 기는 전쟁과 살육의 세기”이고 그 뒤를 이은 “21세기는 문화에 의한 정복의 세기로 이는 세계 화와 똑같은 위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다 운 문화를 만들어 오히려 그 같은 문화 정복에 대해 역공할 때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미학의 가치기준이 없어졌다”면서 “윤동주 서시를 읽으면서 어떻게 친 일파를 옹호할 수 있느냐”고 따졌다. 그렇기에 “예술적 안목이 굉장히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초등학교 교사들부터 어떤 게 진짜 아름다운 것인지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참여정부 실패의 상당 부분은 문화예술이 책임져야 한 다고 본다”고도 말했다. “조중동의 논리가 국민들에게 먹히는 것은 그만큼 우리(문화예술인) 가 국민에게 올바른 미의식을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민예총 예총 문화연대 회원들 모두 반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특히 최근 ‘민족문학’ 명 칭 논란과 관련 민족문학작가회의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애정이 깊은 만큼 비판도 가혹한 것일까. “작가회의는 ‘민족’자 떼고 안 떼고 논의할 필요도 없다. 이미 비민족적이다. 민족문학이란 흔적도 없어지고 형해만 남았다. 변화된 시대에 새로운 미래를 예측하여 문화예술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고민이 없이 예산 따내서 행사나 하는 단체로 전락했다.”
한편 그는 자신의 “희망”이라는 단서를 달아 “문학이 모든 문화예술의 기본이며, 그 중핵은 문학적 상상 력이다”면서 문학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런데 지금은 “작가들이 창의력과 문화적 상상력을 잃어버린 상태”로 그에 따라 “문학의 헤게모니를 다른 장르에 빼앗겼다”고 평가했다. 그는 “80년대 중반부터는 문학이 드라마에도 뒤지기 시작했다”면서 “<모래시계> 드라마만큼 문학에서 광주항쟁을 대중적으로 감동적으로 쓴 작품을 못 봤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
“(광주항쟁 다룬 작품이) 몇 편 있지만 읽어보면 재미가 없어서 몸살이 난다. 그런데 도 평론가들은 좋다고 줄을 섰다. 그러면서 ‘장사 안 된다, 독자 없다’고 하소연한다. 누가 독자 없게 만 들었나. 소설가 자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는 특히 문학에서 서사구조가 없어지면 서 좋은 장편소설이 나오지 않는 현실을 개탄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지영을 ‘장편의 최후 마지노선’으로 평가했다. “공지영은 인문학적 지식도 있고, 역사를 보는 눈도 있고, 격랑을 겪기도” 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있다는 것이다. 또 “공지영의 소설은 십대부터 팔십대까지 다 읽을 수” 있는데, 지금 나오는 소설들 가운데는 평론가들조차 제대로 읽기 어려운 소설이 많다고 비판 했다.
“보편성을 잃어버린 것은 문학이 아니다. 비문학인도 읽는 문학이 진짜 문학이다. 조정래 소설이 왜 많이 팔리는가? 비문학인도 읽기 때문에 팔리는 것이다. 문학인 중에서는 아예 30대 넘 으면 내 소설 못 읽는다 이렇게 치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경계를 허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는 그 같은 경계를 허물고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또한 다시 문학적 상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작가들이 “만날 술집에 앉아서 술이나 먹고” 그럴 것이 아니라, “현 장을 뛰든지 취재를 하든지 치열하게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울 대학로 중앙대 공연영상예술원에서 열린 이날 심포지엄에는 이밖에 김지하 시인이 ‘문화의 시대, 미학적 사유’란 주제 로 기조강연을, 그리고 김영민 한일장신대 교수(인문사회과학부)가 ‘한국문화와 세계문화, 그리고 예수 의 역할’,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 ‘시각예술의 가치와 미래’에 대해 주제발표를 했다.<오마이뉴스, 07.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