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사 국경 넘어 와 안중근 역사 교육
스즈키 히토시 교사, 3년째 전주 찾아 한일 공동수업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인물로만 알려졌지만, 그는 동양평화론자입니다. 3월 26일은 그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지 97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27일 오전 전주 근영중 2학년 교실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있어서의 일본의 역사교육’을 주제로 한·일 공동수업이 벌어졌다.
3월 26일이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이라는 내용은 대부분 한국인들도 잘 모르는 내용이다. 그저 1909년 하얼빈역에서 조선통감부의 초대 통감을 지냈던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를 피격한 사실만 많은 한국인들이 기억하고 있다.
조금 더 안다면 네번째 손가락이 잘린 손도장이 찍힌 ‘대한국인(大韓國人)’이라는 글귀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명언 정도. 안중근 의사의 종교가 천주교이고 토마스라는 세례명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보통 관심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후 5개월 뒤인 1910년 3월 26일 여순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사실까지 기억하는 한국인은 많지 않은 듯하다.
한·일 공동 역사수업을 위해 바다를 건너오는 일본 교사
이러한 내용을 일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현직 일본인 교사가 한국의 중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보였다.
일본 요코하마 스에요시 중학교에서 사회(역사)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스즈키 히토시(53·鈴木仁) 선생님. 그는 4년 전 도쿄에서 한·일 교원단체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여했던 전주 근영중 조은경(40·사회) 교사를 만난 인연으로 이듬해부터 3년째 전주를 찾아와 서툰 한국어로 한·일 공동 역사수업을 하고 있다.
그는 일본의 학교가 봄방학인 기회를 이용해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에 맞춰 자비를 털어가면서 전주 근영중을 방문해 공동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래 지향적인 동반자관계로 나가야 할 한·일 국민들이 역사적 문제로 인해 갈등을 빚는 현실 때문에 한국을 찾고 있다”는 스즈키 교사는 일본이 일제 강점기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한국인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데 작은 희망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스즈키 교사는 “아베 신조 총리나 일본의 고위 정치인들이 일본의 과거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국민들은 가슴으로 만나면 모두 아름다운 아시아인이다”고 강조한다.
이날 그가 근영중 학생들에게 수업한 내용은 안중근 의사와 요코하마시 쓰루미구의 경찰서장 오카와 스네키치(大川常吉·당시 46세)에 대한 이야기.
오카와 스네키치는 ‘일본판 쉰들러리스트’로 불리는 인물로 약 14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우익단체들로부터 한국인 300여명을 끝까지 보호해 목숨을 살린 인물이다.
스즈키 교사는 또 마이니치 신문 3월 24일자 기사를 복사해 학생들에게 나눠주면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권총을 넣었던 상자를 소장하고 있던 일본인이 상자를 한국의 안중근 기념관에 돌려주기로 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그는 또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는 일본인도 많이 있다”면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일본 정치인들이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고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수업은 “일본에 돌아가서도 한국인들의 역사의식을 널리 알리겠다”는 스즈키 교사의 말에 근영중 학생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면서 환호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수업을 들은 최유경(14)양은 “일본 사람들은 과거의 잘못도 모르고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나쁜 사람들 인줄만 알았는데, 스즈키 선생님을 보면서 일본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바꿨다”고 소감을 말했다.
한편 일본 우익세력이 주도가 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후쇼사판 역사교과서는 일본 전국적으로 0.4%의 채택율에 그치고 있으며, 스즈키 교사가 있는 요코하마에서는 후쇼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한 곳도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