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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린외교’ 후쿠다 VS ‘강경보수’ 아소…대아시아 외교격변 예고-뉴시스(07.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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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선린외교’ 후쿠다 VS ‘강경보수’ 아소…대아시아 외교 격변 예고 
 

<16일 오후 4시58분 출고된 ”선린외교’ 후쿠다 VS ‘강경보수’ 아소…대아시아 외교 격변 예고’ 제목의 기사에서 8번째 단락의 ‘新푸톈독트린’은 ‘新후쿠다독트린’의 잘못이므로 바로잡습니다.>

일본의 차기 총리를 결정할 자민당 총재 선거가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관방장관의 압도적 우위 속에 아소 다로(麻生太郞) 자민당 간사장과의 1대1 대결로 압축된 가운데, 향후 일본의 대외적 향방을 좌우할 두 후보의 외교, 대북정책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15일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총재 선거 출마표명 기자회견에서 후쿠다 전 관방장관과 아소 간사장은 모두 인도양에서의 해상자위대 급유 활동의 연장을 놓고 “민주당과의 논의를 통해 합의를 이뤄낸다”는 공통된 방침을 보였으나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선명한 차이를 드러냈다고 산케이, 지지 등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후쿠다 전 관방장관은 이날 납치 문제와 관련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대북 외교에 대해 “협상하려는 태도가 상대에게 전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대화를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반면 아소 간사장은 “납치는 가장 비인간적인 범죄 행위이며 압력 없이 대화는 이뤄지지 않는다”며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강경 대북 노선을 이어갈 방침임을 시사했다.

후쿠다 전 장관은 또 일본 자위대의 해외활동을 확대하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용인과 관련해서도 “현행 헌법 해석을 포함해 헌법 저촉 여부를 신중하게 고려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답해,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현행 헌법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헌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그의 답변은 ‘강한 일본’을 기치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헌법 개정에 집중했던 아베 총리의 외교 노선과 과감히 차별화를 선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후보의 외교정책은 일·미 관계를 최우선으로 놓는다는 일치점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대북·대중 정책과 관련해서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후쿠다는 아베 정권의 강경 대북 노선에서 “다소 탄력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며 대화를 중시하는 반면, 아베 1기 내각에서 외상으로 활동했던 아소는 납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북한에 대한 강경 태도를 유지해온 아베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대중국 외교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중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한 고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전 총리의 아들로 한국, 중국 등 주변국가와의 우호적 관계 구축에 중점을 보여온 후쿠다 전 장관은 지난해 6월 선친이 주장한 ‘후쿠다독트린’을 발전시킨 ‘新후쿠다독트린’을 발표하며 한˙중˙일 화합과 경제 통합을 주장했다. 후쿠다 전 장관의 아버지인 후쿠다 전 총리는 1977년 군사대국을 추구하지 않고 마음대 마음의 선린외교를 지향한다는 ‘후쿠다 독트린’을 발표해 일본 대아시아 외교에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이로 평가받고 있다.

후쿠다는 또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와 관련해서도 “주변국들이 싫어하는 것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며 관방장관 시절 국립·무종교 추도시설의 설립을 열정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아소 간사장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동아시아-인도-중동 일대의 신흥 민주주의 국가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자유와 번영을 꾀하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으나, 중국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야스쿠니 신사에 있어서 “대체 시설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는 등 아베 총리와 같은 강경파로 분류되고 있다.

아소는 또 지난 2003년 도쿄의 한 강연에서 “창씨개명은 조선인들이 원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발언한데 이어 2006년에는 “일왕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역사 문제와 관련, 거만하고 독선적인 견해를 드러내 아시아 국가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선친의 성향도 후쿠다와 상반된다. 아소 간사장 부친인 아소 다카키치(麻生太賀吉) 전 중의원 의원은 규슈에서 아소 탄광을 운영했는데, 이곳은 일제 강점기 때 한국인 징용자 1만명을 강제 동원해 착취한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 탄광은 후에 아소시멘트로 이름을 바꿨으며 아소는 지난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이 회사를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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