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후쿠다 내각 출범과 동북아 정세
일본에 미묘한 변화의 바람이 예고되고 있다. 고이즈미 내각 이래 점차 세력을 불려오던 자민당 내 강경 보수의 입장에 맞서 합리적 온건 보수의 입장을 대변해 온 후쿠다 야스오가 총리로 임명되었다. 새로 출범한 후쿠다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50% 후반대다. 고이즈미나 아베 내각 출범 시의 지지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예상보다 높은 수치를 보여 비교적 안정적인 출발을 보이고 있다. 일본 국민이 후쿠다 내각에 거는 기대는 아베 내각에 대한 실망의 반등이라고 할 수 있다.
-韓·中과의 관계 개선 기대-
최초의 전후세대 총리로 일본 정치인의 세대교체를 상징하며 등장한 아베는 ‘전후 체제의 타파’와 ‘주장하는 외교’를 내건 바 있다. 이를 위해 교육기본법 및 헌법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법의 추진, 방위청의 성으로의 승격 등 국가주의적 이념지향적 정책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지방경제의 소외와 같은 고이즈미 개혁의 부정적 부산물들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고, 중용된 정치인들의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했다.
후쿠다의 등장은 동북아 정세에 있어 주목할 만하다. 첫째, 한·일 및 중·일 관계의 호전을 전망해 볼 수 있다. 고이즈미 이래 일본의 근린외교는 야스쿠니 참배 문제를 둘러싸고 전후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아베는 총리 취임 직후 한국과 중국을 방문하여 사태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에 대한 신경질적인 대응에서 보인 바 있듯이 역사수정주의의 ‘확신범’으로서 그에 각인된 이미지를 씻어 내리지는 못했다. 한·일, 중·일간 관계개선은 구체적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후쿠다는 자민당 총재지명 선거전을 통해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표명했다. 야스쿠니 신사에 대체할 시설의 건립에 대해서도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어쨌건 당분간은 한·일, 중·일관계가 야스쿠니 문제로 발목이 잡히는 일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북·일관계가 재조정 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아베 내각 이래 일본의 대북 강경 일변도 정책과 북한의 일본 무시 정책으로 양국 관계는 경색국면으로 빠져들었다. 아베가 “납치문제 해결 없이 국교정상화 없다”며 압력을 행사한 반면, 후쿠다는 ‘대화’에 무게를 두며 “납치문제 해결은 국교정상화를 통해서”라는 입장이다. 대북정책에서 아베와 동조했던 아소를 누르고 후쿠다가 자민당 총재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일본의 대북정책이 ‘대화 중시’로 선회할 가능성을 점치게 해 주고 있다.
셋째, 미묘하게 동요하던 미·일 관계는 수복 국면으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작년 이래, 미·일 관계는 미묘한 엇박자를 내기 시작했다. 작년 9월 미하원의 ‘위안부 결의’에 대해 일본정부가 미·일 동맹의 동요를 들먹이며 이를 저지하려는 태도를 보였던 데 대해 미국측의 반응은 싸늘했다.
-외교 난제 풀어야 내각 장수-
2·13 합의 이후 북·미 관계의 재조정을 시도하는 미국에 대해 일본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고, 거꾸로 미국은 일본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의 압승으로 테러대책 특별조치법의 기한연장이 어렵게 됨으로써 미·일 동맹의 일시적인 균열이 예상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후쿠다 총리는 자신의 아시아 중시정책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미·일 관계를 수복하고 유지해야 하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
후쿠다 내각은 잠정내각, 위기관리 내각 등으로 불리며 단명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여러 외교적 난제를 하나씩 풀어가며 일본 국민 사이에 만연한 외교적 고립감을 해소한다면 장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일 국교 ‘정상화’가 장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 국민대 교수·국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