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호사카 유지] 일본의 정치문화
지난달 25일 일본 총리가 아베 신조에서 후쿠다 야스오로 교체되었다. 이 교체극에서 한국인들은 일본의 정치문화와 정당이 특이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새 총리 취임은 자민당 내의 총재 교체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정권 교체와 같은 이미지를 내외에 심어주는 역할을 했다. 고이즈미와 아베 전 총리가 우경화 정책을 기조로 한 데 비해 후쿠다 총리는 아시아 중시 외교를 표방하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 있다. 같은 외교노선을 표방해온 제1야당 민주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초 아소 자민당 간사장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파벌들은 후쿠다 옹립으로 급선회했다. 고이즈미 노선을 계승한 아베 노선에 국민적 비판이 집중되고 있는 것을 고려해 다음 총선거를 이기기 위해서는 정반대의 주장을 펴온 후쿠다씨가 적합하다는 공감대가 자민당 내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능력위주 정책을 강조해온 아베 전 총리와는 달리 지방과 도시의 격차를 줄이는 정책을 강조하는 후쿠다 총리는 이 점에서도 민주당과 같은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셈이다.
자민당이 한 시기를 제외하고 50년 이상 집권 여당의 위치를 차지한 것은 이처럼 당내의 파벌들이 번갈아 새로운 총리를 배출함으로써 마치 국민들에게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것처럼 보여주면서 야당의 정책을 거의 다 흡수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다수 일본 국민들은 굳이 야당에 투표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번에도 자민당은 민주당과 구별되지 않는 정책을 가진 후쿠다 총리를 내세워 집권을 연장하겠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정책적으로 전혀 다른 노선의 고이즈미 전 총리마저 후쿠다 옹립에 찬성했다고 하니 자민당의 집권 연장을 위해 정책논쟁마저 중지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번 총리교체는 일본정치가 세습화·귀족정치화해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정치를 독재정치, 귀족정치, 과두정치, 민주정치 등으로 구별했다. 일본은 세습의원들이 많아지고 있다. 국회의원을 직접선거로 뽑는다는 점에서 보면 민주정치임에 틀림없지만 세습화의 가속화와 총리를 간접선거로 뽑는다는 점에서는 귀족정치적 측면이 있다. 아베 전 총리와 아소 전 자민당 간사장은 외할아버지가 총리를 지냈고 후쿠다 총리는 아버지가 총리였다. 그 외에도 나카소네 전 총리, 이시하라 도쿄도지사 등의 아들들도 현재 국회의원으로 중책을 맡아 활약하고 있다.
한편 이번 총리 선출과정에서 두 명의 총리가 선출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때 총리가 두 사람 선출된 것이다. 9월25일 오전에 여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의원에서 후쿠다씨가 총리로 지명되었는데 오후에는 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참의원에서 민주당 당수 오자와씨가 총리로 지명되었다. 일본 역사상 네 번째로 벌어진 일이라고 한다. 양원 대표단의 투표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아 결국 헌법규정에 따라 중의원에서 지명된 후쿠다씨가 총리로 결정됐다. 이 같은 과정은 모두 예상된 일이고 보도를 통해 알려져 있었다. 변수가 많아 뚜껑을 열어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예측불허의 한국 정치문화와 크게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 세종대 교수·일본학